<뉴시스>

56년 미8군 비밀보고서, 군부패·기강해이·정치개입 등 분석

군실세 변화 주목… 수뇌부 대미성향 파악 부심

미국은 1956년 김창룡 피살 사건을 계기로 한국군의 부패, 기강 해이 및 정치 개입 움직임에 관한 특별 비밀 보고서를 내는 등 당시 한국군의 동요를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또 이승만 대통령이 3선(選)이 된 그 해 5월의 선거를 전후해 이뤄진 군 수뇌부의 재편 과정과 실세들의 성향을 파악하는데도 부심했던 것으로 비밀 해제된 미국 문서들이 밝혔다.

한국군에 관한 56년 특별 보고서에는 이 대통령이 군 수뇌부에 북침 계획을 마무리 짓도록 계속 압력을 넣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있다. 보고서는 비밀 표시와 함께 각장마다 “특별 취급 요망. 외국인 열람 금지. 절대 예외 없음”이라고 덧붙여 철저한 보안을 요구하고 있다.

56년 1월 30일 발생한 김창룡 육군특무대장 암살 사건을 미국은 주로 한국군의 부패란 측면에서 파악했다. 미 8군이 56년 12월 20일자로 낸 ‘56년 한국군 동향에 관한 특별 보고서’란 제목의 비밀 분석에 이렇게 언급된다.

“피살된 특무대장은 한국군의 부패와 관련해 군 고위 인사 몇 명을 내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암살 사건 조사를 통해 한국군의 부패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일권 합참총장도 연루될 것이란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가 공개적으로 사건에 말려들도록 이 대통령이 방치할 것 같지 않다…”

김 특무대장은 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기화로 군내 명령 계통을 무시하는 등 월권을 일삼다 반대파에게 제거된 것으로 알려져왔다.

특별 보고서는 “이번 사건의 센세이셔널한 성격과 군 고위 인사들이 개입된 것 때문에 군 전체에 상당한 동요가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당시 한국군의 부패가 고질적이어서 고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대목은 이렇다.

“군의 부패는 기본적으로 고급 장교들이 봉급으로 살기 어렵다는 데에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준(準)합법적인 방법으로 생기는 부수입이 있음에도 이들은 떳떳치 못한 행동에 빠져든다… 따라서 군내 경쟁 세력 간에도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는 김창룡 사건이 언급된다.

보고서는 이어 “이형근 육군참모총장이 부패 장교를 제거하고 군 식량 배급도 좀 더 철저히 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면서 “그러나 박봉과 탐욕, 그리고 지휘관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부패에 빠져들 수 있는 현실 등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한국군의 기강 문제에도 신경을 썼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특히 탈영과 징집 기피자가 많다는 점을 주목했다.

“탈영병과 징집 기피자가 1만 9천-2만 5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이같은 군 기피 현상은 부실한 급식, 호된 훈련, 불공평한 휴가와 병역 관리, 그리고 최근 선거와 관련한 (군내) 압력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 대통령의 3선에 따른 군 수뇌부 재편도 미국에게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보고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이형근 육참총장이 (56년) 6월 27일 전격 임명된 것을 계기로 한국군 내에 파벌 다툼이 치열하다. 육참총장이 바뀐 후 장군 보직의 3분의 2 이상이 조정됐다…”

미국의 관심은 특히 당시 정일권, 이형근, 백선엽 세사람 간의 세력 판도가 어떻게 바뀌는지였다. 이와 관련한 미 8군 보고서의 분석이다.

“현재의 판도 변화는 이렇게 요약된다. 즉 정일권계 장군들이 밀려나고 대신 백선엽 또는 이형근을 지지하는 인물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으며 백선엽과 그 추종자들이 군 지도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또 이형근에 비해 백선엽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도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면서 “이형근이 비록 요즘에는 (미국에 대해) 친절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가 과거에 보인 반미 성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덧붙인다.

군 수뇌부의 판도 변화에 대한 당시 미국의 판단은 옳았다. 이 대통령이 57년 5월 단행한 군 인사에서 백선엽이 이형근을 밀어내고 육참총장에 앉고 미국이 이형근로 본 유재흥이 정일권 대신 합참총장이 된 것이다.

당시 군 인사를 평가한 57년 5월 21일자 미 합참 대외비 문서도 흥미롭다. 핵심직에 오른 인사들의 행적 일부와 대미 성향 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서는 백선엽이 “56년 선거 때 예하 부대에 집권 자유당을 지지토록 지시한 미국에 ‘잘 적응’된 인물”이며 유재흥 역시 “미국인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평가했다.

백선엽의 선거 개입 관련 문제는 미 8군 특별 보고서에도 당시 한국군의 정치 개입 움직임 본격화란 관점에서 언급돼 있다.

미(美) 합참 문서는 이어 제1야전군사령관이 된 송요찬 장군의 경우 “탁월한 지휘관 중 한 명으로 미국에 호의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당시 유임된 김용우 국방장관은 “미국에 호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나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에 비판적인 인물”로 평가됐다. 김용우는 57년 7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미8군 보고서는 또 이 대통령이 군수뇌부에 북침 계획을 마무리 짓도록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이 회의적인 반응를 보이고는 있으나 이같은 정치적 압력이 계속될 경우 군 수뇌부에 동요가 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미 8군 보고서는 한국군의 이같은 문제점들이 “그들의 전투 태세에 차질을 빚게 해 미 극동군에 영향을 주고 미국의 이익을 해치면서 한미 관계에도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당시 어떤 대응책을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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