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사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민주당이 최근 단행된 당직 인선을 둘러싸고 또 다시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와 추미애 상임중앙위원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고 중도파도 나름대로 불만을 표출하는 등 후유증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민주당이 22일 당직개편을 단행했다. 공석중이던 정책위의장에 정통모임 출신 장성원 의원을 임명한 것이 골자다. 그러나 민주당내 ‘동교동계’로 지칭되는 기존 주도권 세력인 정통모임 구파와 신규영입세력 및 비주류등의 통합모임 중도파간 해묵은 갈등이 재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의 유용태(구파)-설훈(중도파) 대결에 이은 2라운드가 예고된 셈이다.당장 당직인선에 불만을 품고 상임중앙위원회와 의원총회에 불참하는 등 이틀간 당무를 거부했던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은 지난 24일 당무에 복귀하자마자 당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추 의원이 ‘호남 대규모 물갈이’주장으로 해석되는 ‘호남 공천 혁명론’을 들고 나온 것.이날 추 위원은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상임중앙위에서 합의된 인선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번복됐다”면서 “인선 과정에서 국민 기대는 뒤로 하고 화합의 원칙만 강조했다”고 비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 “사심을 버리고 공천 혁명을 일으키자”며 “호남에서 솔선수범하고 비호남에서도 경선을 흔쾌히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 호남권과 중진 의원들은 “위험한 발언”이라고 ‘경고’하고 나섰고, 수도권 의원들과 신진 정치인들은 “적절한 얘기”라며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벌써부터 내부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호남물갈이론’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호남권의 중진 의원들은 아직까지는 말을 아끼며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당직자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호남물갈이론이 일정한 수위를 넘을 경우 공세적인 태도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이 문제는 당의 총선전략과 맞물려 있는데다 일부 영입인사들이 ‘당선에 유리한 호남지역구’를 선호하고 있는 등 의원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여서 공천 작업이 진행될수록 더욱 뜨거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미 다선 중진에 대한 용퇴론과 호남지역 세대 교체론이 급격히 확산된 상태였다.‘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통하던 호남지역의 오랜 총선 풍토를 바꾸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젊은 신진인사 등을 영입, 출마시켜야 서울 등 수도권에서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호남지역물갈이론’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호남지역에서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집권과 집권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88년 총선 이후 4차례의 국회의원 선거 후보공천이 마치 임명제처럼 치러져왔다”며 “이제는 후보선택권을 호남 유권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조순형 대표는 지난 25일 추미애 상임중앙위원 등의 ‘호남물갈이’ 주장에 대해 “특정인을 향해 물갈이를 주장하는 것은 안된다”며 “불만이 있어도 바깥에다 지나친 말을 하면 되느냐”고 말해, 추 의원에 대한 언짢은 감정을 드러냈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강운태 사무총장도 “특정인을 찍어서 교체하는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다”고 밝히는 등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을 대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결국 침묵을 깨고 내던진 추 위원의 호남 물갈이 발언으로, 내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은 또 다시 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이와 관련 민주당 한 관계자는 “어쩌면 호남 물갈이가 내년 총선 성공의 전제 조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3, 4선인 호남 중진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이고, 당 지도부도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아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라며 추이를 주시했다.그러나 분란의 불씨는 ‘호남물갈이론’ 하나가 아니다.

중도파는 장성민 전의원이 중하위 당직인 청년위원장으로 낙착된 데도 실망하는 눈치다. 장 전의원을 상임중앙위원 멤버인 청년대표로 밀어왔기 때문이다. 또 중도파는 정통모임 출신인 장성원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지명하는 데 반대해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결국 이같은 중도파의 불만은 정통모임 중심 구파와 통합모임 중심 중도파간 해묵은 갈등이 재연할 우려를 낳고 있다.조 대표는 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중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만큼 당내를 추스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추미애 후보와 함께 당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다만 자체적 계보가 없는 만큼, 옛 정통모임 출신 등 구파에 휘말리지 않고 강력한 개혁작업을 밀고 나갈 수 있을지가 조 대표에게는 던져진 숙제거리였다.

당직 인선이나 조직책 추가선정 과정에서 구파의 독주가 계속될 경우 개혁·중도파의 반발이 표면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던 것. 결국 조 대표가 이번 당직개편의 결과와 관련 당내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불만들을 어떻게 추슬러 나갈지가 관심거리다. 당의 안정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에 대해 민주당 한 당직자는 “원래 인사라는 것이 물 흐르듯 흐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불만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며 “조 대표가 어떻게 이들의 불만을 어루만지고 추스르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한편 지난 22일 단행된 당직개편은 조순형 대표 중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대표 특별보좌역이 확충됐다.김옥두 의원이 특보단장을 맡았고, 박주선(정무)·박병윤(경제)·배기운(조직)·박인상(노동)·조성준(사회)·정철기(농어민) 의원이 특보단을 구성하게 됐다. 상임고문으로는 김상현·김중권·박상천·이만섭·이종찬·장태완·정균환·최명헌·한화갑 등 전현직 대표와 당 원로들이 임명됐다. 21세기국정자문위원장에 이협, 기조위원장에 이낙연, 지방자치위원장에 조한천 의원이 기용됐다. 또 재정위원장에는 구종태 의원이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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