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제목인 ‘남쪽으로 튀어’처럼 오키나와는 어딘지 남쪽을 향하고 싶을 때 가장 완벽한 종착점이다. 하늘빛 바다와 바다빛 하늘로 이루어진 공간. 류큐왕국이 전해주는 보물들로 가득 찬 섬. 오키나와로 향하는 것은 우리에게 항상 미련처럼 남아있는 섬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고백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조선 도자의 숨결, 츠보야 도자기 거리
 
츠보야 거리는 오키나와가 자랑하는 도자기인 츠보야 야키가 태동한 발생지이다. 류큐왕국은 300여년 전 규슈에 자리 잡고 있던 조선의 도공을 모셔와 오키나와에 도자기를 전수케 했고 이후 오키나와는 독자적으로 걸어왔던 도자기 문화에 예술을 입혔다.

사실상 중화권과 가까웠던 류큐왕국에서 조선의 도공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우리의 도자문화가 이미 도자기의 원류인 중국을 넘어 정점에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조선 도공이 뿌리를 내린 규슈지역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도자기의 전통 역시 한반도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츠보야 거리로 가기 위해 우선 국제거리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들어갔다. 안내인은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설명해 주었다. 몇 장의 안내서와 지도를 받았고 더불어 내일의 행선지에 대한 계획도 짰다. 츠보야 도자기 거리는 도자기 가게와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인 일종의 특화 거리로, 국제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금은 한국의 인사동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호객을 한다든가 화려한 간판을 내세우는 등의 상업적인 느낌은 확실히 덜하다. 오후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몇몇의 공방과 상점들이 있지만 일부 상점들은 문을 일찍 닫은 모양이었다.

만일 시샤가 보고 싶다면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것이 아닌 순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수 백 종류의 각각 다른 모양의 시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 입구에 있는 도자기 박물관이 나의 아쉬운 걸음을 다시 잡아주었다.

박물관에는 한국어 서비스도 있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무려 6600여 년 전에 가마 없이 그릇을 구운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컬렉션이 다양하진 않았지만 도자기에 관한 번듯한 박물관까지 따로 마련해서 둔 것을 보면 오키나와 사람들이 얼마나 도자기를 조심스럽고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곧 문화로 연결될 것이며 또 자긍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전통이라고 부른다.
섬 속의 섬, 토카시키섬

사람들은 섬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주는 이미지는, 또 마음속에 감춰진 그 감정은 섬을 그저 한낱 땅으로 느끼지 않고 하나의 이상향으로 바라본다. 느림과 낮음 그리고 고독과 때론 회피의 결정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다가서고 싶은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역시 하늘은 맑았다. 그 이야기는 바다 또한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다. 배가 떠나는 토마린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동중국해 끄트머리를 지나면 케라마 제도에 있는 토카시키 섬이 나온다.

일본 본토가 한참 추운 1월,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일찍 벚꽃이 핀 후 바다를 따라 북상해 본토에 벚꽃을 전한다. 벚꽃은 토카시키가 제일 먼저 일본에 보내는 편지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종의 벚꽃 감성에 젖을 겨를도 없이 제일 먼저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로 징병된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이 끌려와 당했던, 차마 입에 담고 글로 쓰지 못할 일을 떠올렸다. 마음속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선착장에 내려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몇 분간 구불구불한 길을 돌더니 이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산 정상에 선 후 다시 해변을 따라 목적지인 아하렌 비치까지 달려갔다. 버스에서 잠시 보이던 바다는, 바다색은 내가 이제껏 알고 지내던 것과는 완전하게 달랐다. ‘남쪽으로 튀어’에서 지로네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보았던 바로 그곳의 바다였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순간 한 쪽으로 쏠려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예전 북인도 시킴 지역을 여행할 때 히말라야 끄트머리의 설산 봉우리를 보고 터져 나왔던 버스 안 사람들의 그것과 같았다. 그 푸르름은 때론 냉정하게 또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섬을 안고 있었다.

비치의 정류장에 도착한 후, 내가 한 일은 물론 바다로 가는 것이었다. 바다 쪽으로 난 샛길을 지나 펼쳐지는 오키나와, 아니 토카시키의 바다, 아하렌 비치. 찰박하게 해변으로 다가서는 물결의 수줍음 그리고 난바다에서부터 흩날리듯 불어와 마치 벚꽃 잎처럼 조용히 모래 위에 가라앉는 바람. 해변에 있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는 어떠한 말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뛰지 않았고 누구도 소리치지 않았다. 토카시키의 해변. 오키나와로 향한 가장 큰 이유. 나는 결국 이곳에 있었다.

<info> 토마린항↔토카시키섬
쾌속선 35분소요, 페리 70분소요. 계절에 따라 운행 시간 변동

제일 먼저 해변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공식 전망대인 구반다키 전망대와는 반대편에 있는 곳으로. 몇몇의 집이 있는 마을을 통과해 수업중인 학교를 지나 어렵지 않게 길을 따라 오르면 언덕 중간 즈음에서 해변의 전체 모습이 가득 들어온다.
 
이것은 분명 신이 아끼고 아끼는 보석의 물을 바다라는 커다란 항아리에 따로 담아둔 것 같았다. 예쁘다, 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곳. 너무 예뻐서, 그래서 다가설 수 없어서 이상한 감정으로 체념하게 되는 곳. 이제야 바다가 주는 커다란 허망함의 또 다른 한 면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바다는 그런 것이다. 나와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닌 바다가 그냥 있는 것. 이곳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다.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편은 네 시.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백사장을 따라 걷고 전망대에 올랐다. 물론 해변을 걸을 때는 맨발이어야 했다.
반대편에서 보는 해변. 이번에는 어떤 안도의 한숨을 몇 번 쉬고 사진을 찍다가 내려왔다. 이제 보았으니 됐다, 라는 마음이 작용했던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순전히 행복하기만은  쉽지 않은데 나는 분명히 행복했다. 후에, 오키나와의 다른 섬들과 그들이 허락할 바다를 몇 번 더 볼 것 같은 예감이 모래 자락에 스친다.
 
땅 위의 선셋 원더힐,
아메리칸 빌리지
섬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절대적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두 가지, 원더힐과 선셋이 있다. 끝없이 넘어 가지만 결국 돌아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원더힐과 선셋. 원더힐은 땅 위의 선셋이고 선셋은 하늘 위의 원더힐이다.

조금 서두른 덕에 겨우 버스를 탔다. 항상 선셋을 볼 때는 유별나게 조급해진다. 절대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내 감정과 맥박은 언제나 최대치로 올라가나 보다. 오키나와는 대중교통편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아 버스 요금은 꽤 비쌌다. 한 소녀가 조용히 버스에 타더니 옆자리 사람에게 앉아도 되냐고 묻고는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갔다. 버스는 서쪽 길을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을 넘게 올라갔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원래 미군시설이 있던 곳이었으나 해안을 따라 있던 비행장이 일본으로 반환되고 1988년 비행장 터 북쪽에 인접한 해안이 매립지로 조성된 후, 도시형 리조트의 아메리칸 빌리지로 재정비됐다. 이름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애초부터 미군 시설들이 있었던 곳이라 어딘가 미국스러운 느낌이 나는 위락 단지이다.

식당과 상점 그리고 거리와 분위기 모두 미국의 어디쯤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히 웨스턴의 느낌이 나는 곳이다. 이곳은 실제로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시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선셋비치가 있다. 오키나와에서라면 어디에서고 멋진 선셋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원더힐이 있기에 이곳에서 오늘의 마지막 태양을 보내기로 했다. 선셋비치에는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관광객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곳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연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정확히 말하자면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오키나와 풍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가녀린 사미센 가락은 마치 바람의 줄기처럼 휘익하고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정말 순수하게 보이던 커다란 하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 서서히 스며들 별들. 그 사이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침묵의 시간에 나도 함께하고 있음을 감사해했다.

이제 땅에 남은 마지막 태양을 볼 시간. 그것은 도시의 별 사이에서 처연하게 빛나는 원더힐이었다. 일본인들처럼 원더힐을 사랑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빛나고 있던 그것은 오래전 영화인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의 마지막 씬처럼, 미얀마의 이야와디강을 건너오다가 본 만달레이의 그것처럼 그리고 뉴욕의 코니아일랜드처럼 오늘도 열심히 땅 위에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자신의 쓸쓸한 추억을 곱씹고 있었다.
 
일본 정원과 중국 문화의 콜라보, 시키나엔
 
오키나와엔 두 개의 유명한 정원이 있다. 하나는 전형적인 중국풍의 후쿠슈엔이고 하나는 시키나엔이다. 지리적으로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 중국과 가까웠기에 오키나와 전역에는 중국 남방의 문화가 건축과 음식, 생활양식에 짙게 배어 있다. 오키나와 사투리를 들으면 확실히 중국 쪽의 억양이 있다.

시키나엔은 왕족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류큐왕국에 방문한 외국 사신을 접대한 장소로 오키나와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세 곳 중 하나다. 전쟁으로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복원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다시 구현했다.

웅장한 가쥬마루반얀트리 나무를 지나면 뜰이 나오고 가지런한 돌담과 정원을 지나 연못으로 이어진다. 시키나엔은 이 연못 주위를 걸으며 산책하는 회유식 정원-걷는 위치에 따라 경관이 달라지는 형태로, 정원 중앙엔 중국식 정자인 육모정과 석회암과 현무암으로 만든 아치형 돌다리가 있어 단순한 정원의 구성에 시각적인 보탬과 균형을 준다.

왕가의 별장으로 쓰였다는 우둔으로 들어가니 정원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우둔이라함은 붉은 기와지붕을 일컫는 것으로 이는 당시 상류층에게만 허용된 격식이라고 한다. 호젓함과 속세를 잠시 비켜서는 간결함. 신혼부부들도 류소오키나와 전통의상를 입고 포토 웨딩 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 명소라고 하는 시키나엔. 오키나와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가장 최적의 장소는 아마 이곳이 아닐까. 아침 일찍 방문한다면 이 공간을 혼자서 독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샤

제주도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오키나와에는 시샤가 있다. 시샤는 해태와 비슷한 상상 속의 동물로 오키나와의 거리를 걷다 보면 집과 상점은 물론 공공장소와 도로변 어디에서도 시샤를 볼 수 있다. 물론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시샤는 수컷,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시샤는 암컷을 상징하는데 수컷은 들어온 행운을 입으로 물고 암컷은 그 행운이 나가지 못하게 꽉 가두어 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샤는 익살맞고 귀여운 모습에서부터 무섭고 희화화된 것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시샤를 지붕에 올려두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물리친다고 해 오키나와에서는 시샤를 부적이나 수호신쯤으로 여긴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오키나와 먹거리
 
소금 아이스크림
커다란 소금 매장과 같이 운영하고 있는 국제거리의 소금 아이스크림 가게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소금과 아이스크림의 조합으로 특이성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충분히 소금간이 되어 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지만 사람들은 호기심에 준비된 소금이 함유된 코코아나 녹차, 와사비나 후추 등을 더 토핑해서 먹곤 한다. 소금은 의외로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좀 더 끌어올려 준다고 한다. 생각보다 짜니 조금은 주의할 것.

소바
오키나와 소바는 좀 특이하다. 단순한 면이지만 의외로 호불호가 있는 음식으로 이 점은 일본 본토인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바는 원래 메밀을 뜻하며 일반적으로는 메밀국수인 소바기리를 일컫는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소바는 메밀가루가 아닌 100% 밀가루로 반죽한 면을 굵직하고 짧게 썰어 끓여내기 때문에 면을 씹는 식감이 뚝뚝 떨어지듯 약하다. 소박한 고명과 돼지뼈로 우려낸 맑은 국물이 특징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는 확실히 싱겁다.
 
고야찬푸르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고야찬푸르는 단언컨대 완벽한 음식이 될 것이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고야는 니가우리 쓴 멜론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에는 ‘여주’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찬푸르는 여러 가지를 섞어서 볶은 요리를 뜻한다. 고야 특유의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두부와 각종 채소 등을 같이 조리하며, 비타민 C가 매우 풍부해 오키나와에서는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꼽힌다. 오키나와가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와모리 소주
길쭉한 타이산 남방미로 만든 증류주인 아와모리는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전통 소주이다. 술을 유독 즐기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축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항상 아와모리와 함께한다. 향이 강한 무색의 백주로 첫 맛은 다소 독하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향이 깊으며 숙취는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다. 아와모리 소주는 보통 백누룩균을 사용하는 일반 소주와 달리 흑누룩균만을 고집하며 일본 소주의 역사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소주로 알려져 있다.
 
오키나와 라면
일본의 라면 전문가들은 오키나와 라면을 규슈 북단 후쿠오카의 하카타와 남단의 나가시마 그리고 삿포로 라면과 더불어 일본 4대 라면으로 꼽곤 한다. 라면 자체가 중국에서 건너와 일본에서 발전한 음식이기에 중국과 가까운 오키나와는 아무래도 라면을 일찍부터 접해왔다. 오키나와 음식이 대체적으로 짜므로 미소 된장이나 쇼유 간장라면보다는 차슈 돼지고기라면을 주문하는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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