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살리라고 했더니 되레 감사인에 ‘혼쭐’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박창민 대우건설 사장이 취임 100일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외부인사 논란을 일으킨 박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낙하산 지우기’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지만, 대내외 악재로 사실상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거센 반발 속에 지휘봉을 잡은 만큼 내부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안이한 대처로 자신의 막중한 임무인 주가 부양에 사실상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안팎의 여러 악재로 신음하고 있는 박 사장의 고민을 따라가 봤다.

박 사장은 2012년부터 4년간 한국주택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박 사장이 대우건설 사장에 내정되자 내부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대우건설은 그간 내부인사가 사장으로 승진 발탁돼 왔는데, 회사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사에 회사를 맡기는 건 부당하다는 게 이유다. 해외시장 경험과 노하우 부족도 부정적 의견에 힘을 실었다. 특히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정치권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을 받자 거부반응은 더욱 격렬하게 일었다.

하지만 대우건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내부인사가 하지 못하는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박창민 당시 내정자를 사장 자리에 앉혔다. 우여곡절 끝에 대우건설을 이끌게 된 박 사장은 안정적인 구조조정과 매각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주가부양과 부패척결, 해외부실 등도 처리해야 한다.

다만 업계에선 박 사장이 처리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낙하산 꼬리표 떼기’를 꼽았다. 박 사장이 아직 대우건설 내부에서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리더로서 자질을 갖췄다는 걸 보여주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든 정부 인사를 고위직에 앉힐 경우 내부 반발은 피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경영능력을 빠른 시간 안에 입증한다면 이런 논란을 잠재울 여지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사장의 경우 단기간에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로부터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마다 반대 의견에 부딪힐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감사인 의견거절 대우건설 흔들어

꼬리표를 제거하기 위해선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누구나 사장으로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인정을 받는 게 낙하산 지우기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감사인의 의견거절 제시와 공매도 의혹 등이 불거져 조기에 능력을 보여주기는 요원한 상황이 됐다. 지난 14일 대우건설은 외부감사인인 딜로이트 안진으로부터 3분기 보고서에 대한 의견거절을 받았다. 외부감사 의견은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으로 나뉘는데, 안진은 실적 검증을 위해 제대로 된 자료를 받아야 함에도 회사 측에서 이를 어겼다는 취지로 의견거절을 제시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기업이 의견거절을 받았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대우건설이 지난해 분식회계 문제로 징계를 받은 바 있어 회계 감사가 더 강화될 것임을 예측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앞서 대우건설은 지난해 8월 감리위원회로부터 38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점이 인정돼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그간 발목을 잡아온 분식회계 논란이 다시 한번 걸림돌이 된 셈이다.

특히 이 정보가 유출돼 공매도까지 급증했다는 의혹이 더해지면서, 대우건설 주가는 지난 14일(종가 기준) 6730원에서 24일 5310원으로 무려 21% 이상 증발했다. 이 때문에 내년 매각을 앞두고 주가부양의 임무를 맡은 박 사장은 패닉에 빠졌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1주당 1만5000원, 유상증자를 통해 1주당 1만8000원 등 총 3조2000억 원을 투입해 지분 50.75%를 매입했다. 현재 시가총액은 2조2070억 원(24일 종가 기준)으로 이 시세로 매각이 이뤄진다면 1조 원가량을 받는 데 그친다. 매입 당시보다 2조 원가량 밑지고 파는 셈이다. 가뜩이나 헐값 매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마당에 지분가치가 계속 떨어진다면 매각 시점에서 더 낮은 가격에 넘겨야 한다.

박 사장 취임 후부터 주가는 최근까지 6000원대를 오르내렸다. 뚜렷한 오름세는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지난 11일 장중 7600원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박 사장의 노력에 따른 결과물이 아닌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와의 인연이 알려진 영향이 컸다.

구조조정 등 해결과제 산적 

물론 앞으로 경영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박 사장에게 남아 있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이다. 조직슬림화로 예비인수자들로부터 인수매력을 느끼게 해야 한다. 박 사장은 몸집을 줄여 불필요한 지출을 막고, 남거나 부족한 부분에 인력을 재배치하는 식으로 조직을 슬림화하기로 했다. 또 부실해진 해외사업 부문을 축소하는 한편 국내사업 비중을 확대해 주택사업에서 대우건설이 갖고 있는 강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박 사장은 해외사업과 달리 주택 부문에선 노하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인력이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대규모 비정규 직원의 희생이 따라야한다. 대우건설은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대기업 중에 하나로,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인력이 짐을 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현장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던 정규 직원들이 생소한 국내 주택 부문에 투입돼 이질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도 숙제다.

앞서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구조조정에 실패한다면 박 사장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대우건설의 운명이 외부감사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올해 사업보고서까지 감사의견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대우건설은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다만 업계는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안진이 경고 차원에서 준 일회성 의견으로 본다”면서 “매출 10조 원이 넘는 대기업인 만큼 주주들의 피해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사업보고서에서는 적정 의견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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