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 5년 만에 “창업주 정신 실종됐다”

▲ 전인장 삼양식품 사장.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제조업체인 삼양식품이 최근 라면사업은 뒷전으로 한 채 다른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외식업체(면·햄버거)와 식품사업(시리얼·우유) 진출에 나서는가 하면 최근 레저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삼양식품의 ‘영토 확장’에 업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오너 2세가 경영권을 거머쥔 뒤부터 ‘창업주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는 국내에서 라면을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전 창업주는 1960년대 초 서울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다가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 선 것을 보고 ‘국내 식량 자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라면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2010년 삼양식품 명예회장으로 추대될 때까지 현직에서 활약하며 국내 라면 산업의 부흥을 이끌어냈다. 전 창업주는 같은 해 3월 장남인 전인장 당시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면서 경영권 승계를 완료했다.

2세 경영 후 반전
라면 종가 어디로

전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던 당시 삼양식품은 세계 50여 개 나라에 라면을 수출하는 등 한국 라면 종가의 입지를 다졌다.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 실적도 줄곧 오름세였다. 하지만 전인장 회장이 경영권을 거머쥐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전 회장은 라면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사업에 손을 뻗었다. 취임 직후인 2010년 8월 면 요리 전문점 호면당을 인수하는 데 이어 시리얼 시장에도 진출했다. 2011년 9월 제주우유를 사들였고, 2014년엔 크라제버거를 인수해 햄버거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평창에 레저타운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사업 성과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부 사업체는 매년 적자폭이 늘어나고 있다. 호면당의 경우 ▲2013년 순손실 13억 원 ▲2014년 순손실 15억 원 ▲2015년 순손실 21억 원 등을 기록했다. 다른 사업에 한눈파는 사이 삼양식품의 영업이익도 ▲2013년 102억 원 ▲2014년 97억 원 ▲2015년 71억 등 매년 줄고 있다.

시장점유율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2013년 오뚜기에 2위 자리를 뺏긴 삼양식품은, 올해는 팔도에 3위 자리도 내줬다. 한때 1위를 다퉜던 농심과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삼양식품은 총매출에서 라면 비중이 80%가량을 차지한다. 다양한 매출군을 가진 경쟁업체와 달리 라면 점유율이 하락하면 회사 이익규모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제품 투자 없다
내부 볼멘소리

상황이 이렇게 되자 회사 내부에서도 전 회장의 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라면종가’라는 프리미엄이 붙어있는 만큼, 품질과 연구개발에 집중하면 충분히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아쉬움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삼양식품 내부 관계자는 “2세 경영체제 이후 성장에 한계를 느낀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신규사업, 기업인수 말고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다른 내부 관계자도 “신제품을 개발하면 홍보 등을 통해 재빨리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게 식품사업의 관건”이라면서 “그러려면 마케팅 비용에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삼양식품의 지난해 마케팅비용(광고선전비)는 40억 원으로 전년(55억 원)대비 27.3%나 축소됐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전 회장 체제 이후 오너 일가가 재테크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전 회장의 쌍둥이 동생이자 창업주의 차남인 전인성 씨는 최근 삼양식품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대거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전 씨는 지난달 10일부터 14일까지 삼양식품 주식 5만주를 평균 4만4728원에 장내 매각했다. 이를 통해 전 씨는 22억 5167만 원을 손에 쥐었다.

앞서 2011년에도 주가가 급등하자 1주당 평균 5만5420원에 팔아 16억2380만 원을 챙기기도 했다. 반면 형인 전 회장은 주가가 낮은 상황에서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탁월한 재테크 솜씨를 뽐냈다.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2014년 삼양식품은 이마트에 라면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인 라면 수프 제조사 내츄럴삼양을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챙기게 해준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6억 원을 부과 받았다. 최근에는 수년간 지주회사 전환신고를 하지 않고 취득이 금지된 계열사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보유해오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특히 오너 3세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양식품 전 회장 일가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면서 “국민을 위해 애국하는 마음으로 라면을 생산해온 선대의 깊은 뜻을 후손들이 깎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오너의 부도덕성은 내부 직원들의 사기와 애사심 저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직원들이 동요해 핵심 인재들이 이탈하는 사례가 잦아지면 기업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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