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봐도 최순실, 저길 봐도 최순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사람 때문에 시끄럽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선정적인 제목과 출처 불명의 내용들로 독자들을 선동하고 있다. 종편을 포함한 일부 방송 매체들은 거의 온종일 최순실 비리를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시켜 보도하고 있고, 신문 매체들 역시 연일 경쟁적으로 마녀 사냥식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정치권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때는 이 때다” 싶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최순실 파문이라는 미증유의 호재를 잡은 야권 인사들은 현 정부를 식물정부로 몰아놓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국정 혼란과 공백을 막아내기 위한 초당적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현 사태를 내년 대선 때까지 끌고 가 정권교체의 발판을 삼기에 여념이 없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비겁하다 못해 한심스럽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태 수습의 의지를 보여야 함에도, 서로 누가 백로이고 누가 까마귀인지만 따지며 볼썽사나운 집안싸움만 하고 있다. 특히 정권의 실세로 군림하며 누릴 것은 다 누린 지도자급 인사들은 대통령의 힘이 빠지자 현 정권에 온갖 저주를 퍼붓고 있다. 가장(家長)의 시혜를 가장 많이 받은 자식들이 뜻하지 않게 곤경에 빠진 가장에게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자기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며 집에서 쫓아내려는 모양새다. “살려 달라”며 손 내밀 때는 언제고, 이제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매몰차게 주군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가 따로 없다.

좋다. 정치판이라는 게 원래 그런 곳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저렇게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대권 쟁취에 함몰되어 ‘광장정치(廣場政治)’를 하고 있는 인물들이 과연 대통령 ‘깜’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깜’은커녕 ‘쨉’도 안 되고 ‘택’도 없어 보인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현실 정치개혁을 통해 국민 대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저들은 지금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은 혁명을 꾀하고 있다.

잠시 옛날로 돌아가자. 다윗은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이다. 구약에 따르면,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왕을 두 차례나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끝내 죽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다윗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굳이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사울왕은 제거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당장의 민심은 사울왕의 제거였으나, 민심은 언제고 변할 수 있음을 다윗은 알고 있었다. 사울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오명을 덮어쓸 수 있는 상황을 다윗은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역적이었던 정몽주가 충신이 되고, 일등공신 정도전이 천하의 간신이 되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참으로 지혜롭고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정치 9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작금의 우리나라 대권주자들은 어떤가? 서로 자기 손에 피를 묻히겠다고 아우성들이다. 자기네끼리 선명성 경쟁까지 하고 있다. “나를 따르라”며 대통령의 퇴진 서명운동을 이끌고 있는 ‘정치 2단’이 있는가 하면, 여론몰이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대권주자도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흉내 내며 현직 대통령을 ‘매국노’ ‘악질 범죄자’로 몰아부치고 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국무회의에서 안하무인 식 정치적 발언만 하고 나가버린 인물도 있다. 선거 기간 내내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표를 구걸해 당선되더니 이제는 그 대통령이 ‘구시대의 망령’이라며 탄핵하겠다는 주자도 있다. 참 못났다.

민심은 변덕스럽게 수시로 변한다. 마키아벨리는 “백성은 위험이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재물은 물론 자식들까지 군주에게 바칠 것처럼 행동하나, 위험이 박두하면 이내 등을 돌린다”고 했다. 작금의 민심이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깜’은 커녕 ‘쨉’도 안 되고 ‘택’도 없는 대선주자들은 그런 민심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최순실 파문 전이나 지금이나 저들의 지지율을 보라. 반사이익과 ‘집토끼’들의 이동을 제외하면 크게 변한 게 없지 않은가.

국민들은 목소리만 크고 콘텐츠가 없는 사람을, 여론몰이나 하고 초헌법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을, 한국판 트럼프가 되겠다는 사람을, 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을 대통령 ‘깜’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주군을 배신하고 자기만 살겠다며 예수를 세 번이나 부정하고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 같은 사람을 지지할 리 만무하다. 국민들은 사소한 일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콘텐츠가 있는 사람을, 법 테두리 내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을, 여론정치나 막말의 선동정치보다는 타협의 정치를 하는 사람을, 태도가 겸손하고 온화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 ‘깜’으로 지지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고 진심과 뚝심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을 국민들은 지지한다. 현 시점에서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

장성훈 편집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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