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입적한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선승’이자, ‘현대 한국불교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다는 평가다. 1912년 논산에서 태어난 서옹스님은 부모를 여의면서 혼자 생각에 잠기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스님은 인생과 우주의 진리에 대해 더욱 고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는 일제치하. 청년 상순은 인생과 우주의 진리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문제까지 고뇌했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은 불교서적을 탐독하다 점차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각황사(조계사 전신)를 찾게 됐고, 그곳에서 중앙포교사로 있던 김대은 스님을 만나 인생과 우주의 진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러다 김대은 스님의 소개로 1932년 평생의 은사 만암스님을 만나 득도 수계했다. 득도와 함께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해 불교에 대한 공부를 심화시켰다.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과 함께 백양사 영어 외전 강사로 있다, 1937년부터 2년간 오대산 한암선사에서 참선 정진에 몰두하기도 했다. 스님은 또 일본 유학시절, <‘진실자기(眞實自己)’>라는 논문을 통해 당시 일본 불교학계를 주름잡던 니시타 기타로, 다나베 하지메 등 교토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학설을 비판, 일본 불교학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진실자기’란 논문은 일본 각 대학이 교재로 채택, 일본 불교학계에 널리 읽혀졌다. 귀국 후, 해방공간과 정화운동의 시기를 수행으로 극복한 스님은 1962년 동국대학교 대학선원장 겸 조실로 추대되며, 대중교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지난 74년 조계종 제5대 종정으로 추대됐다. “조선시대 500년과 일제를 거치며 피폐해진 승풍을 진작하고, 화합으로 교단을 이끌 분은 서옹스님 뿐”이라는 종도들의 요구를 스님은 외면하지 못하고 종정직을 수락했다.

평소 “닭 벼슬보다 못한 것이 승직”이라며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종도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을 스님은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종단 직책에서 물러나 철저한 구도자의 길을 걷던 서옹스님은 은사인 만암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96년 백양사를 총림으로 승격시키고, 방장에 취임했다. 방장에 추대된 스님은 1998년 8월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백양사에서 무차선회를 80여년 만에 복원·개최, 물질문명에 사로잡힌 인류에 새로운 구원의 사상적 씨앗을 뿌리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2000년에는 백양사에서 무차선회를 열어 문명과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법어를 통해 내리기도 했다. 평생 동안 선풍진작과 후학양성, 인류구원의 새로운 사상적 대안으로 선사상을 제창해온 서옹스님은 세수 92세, 법랍 72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저서로 <선과 현대문명> <절대 현재의 참 사람> 등이 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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