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입적한 서옹스님은 많은 수행 일화를 남겼다. 나주 미륵사 주지 원일스님은 “대략 60대 후반이라고 기억한다. 그 때 큰스님은 맹장염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당연히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큰스님은 마취를 거부했다”며 “마취 없이 수술을 하시면서도 큰스님의 표정은 매우 온화하고 평온했다”고 전했다. 서옹스님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희생된 한국인 위령탑 건립에도 앞장섰다. 일본 고려사 주지 태연스님은 “지난 68년 2월이라고 기억한다. 그 때 나는 서옹스님을 모시고 11명의 일행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목적은 세계 2차 대전 때 희생된 한국인 2,329명의 유골을 확인하고 위령탑을 건립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리고 일본 후생성 지하실에 방치된 한국인들의 유골을 보고 비분강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본 주요 사찰과 협의, 일본 고려사에 위령탑을 건립했다”고 밝혔다.

서옹스님은 사람 보는 예지력도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스님이 1979년 대흥사에 주석하고 있을 때의 일. 당시 대흥사에는 광주교육사령관인 윤모씨가 찾아와 스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스님이 “자네 별이 몇 개인가” 묻자 “예, 세 개입니다”했다고. 그리고 대종사는 대뜸 그 사람을 향해 “자네 얼굴 보니 장관하겠네”라고 답했다. 나중에 윤모씨는 서옹 스님의 예언대로 체신부 장관을 했다는 후일담이다. 서옹스님는 입적에 들기 3일전까지도 근검, 절약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고 한다. 스님의 시중을 들었던 호산스님은 “화장실에서도 휴지 3칸을 절단해 꼬깃꼬깃 접어 사용할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뛰어난 분이셨다”며 “세수하실 때에도 한 바가지를 낭비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면 서옹스님은 “수행자는 물 한방울, 휴지 한 장 아껴야 수행자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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