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 박 대통령 ‘임기 단축’에 친박은 개헌 공세
- 반기문 ‘권력 분점’ 카드 들고 조기 대선 출마 ‘가닥’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단축’ 배수진은 여권을 수세국면에서 공세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은 여야가 차기 대통령 선거를 개헌과 연계시켜 조기에 치르기로 합의해주든지, 별도의 대선 일정에 합의를 보든지 아니면 탄핵을 강행하든지 모든 결정을 국회에 맡겼다.

박 대통령의 배수진은 야권의 탄핵연대 전열을 흐트러 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임기단축 선언에 맞춰 ‘대통령 4월 사퇴, 6월 조기대선’을 만장일치로 당론으로 채택했다. 탄핵안에 찬성했던 비박계가 ‘질서 있는 퇴진’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탄핵연대에서 이탈 징후를 보이고 있다. ‘탄핵’을 위한 비박계 결집에 나선 김무성 전 대표는 추미애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4월 말 대통령이 퇴임이 결정되면 굳이 탄핵으로 가지 않고 그것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배경이다.

친박 주류에서는 박 대통령이 탄핵 의결 이전에 4차 대국민회담을 통해서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서든 ‘4월 사퇴하겠다’고 대통령이 공식화할 경우 비박계는 탄핵 대열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야권은 크게 한 방을 먹게 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야3당은 ‘1일 탄핵안 발의, 2일 처리’ 일정에 합의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 ‘4월 사퇴’ 공식선언 야권 치명타

야권이 자중지란에 빠진 사이 친박은 ‘탄핵정국’을 ‘개헌정국’으로 돌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친박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은 “우리 당은 야권에서 나오는 개헌주장을 경청하고 가능한 힘을 보태야 한다”며 “대통령이 퇴진 의사를 밝힌 만큼 탄핵 설득력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개헌이 이뤄지면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 이뤄질 수 있다”며 “지지부진한 개헌 논의를 어떤 형태로든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거들었다. 비박계 역시 개헌에 긍정적인 입장이라서 사실상 탄핵보다는 개헌에 방점을 찍을 공산이 높다.

결국 친박 주류가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으로 방향을 잡은 이상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탄핵안을 처리하려던 야권은 셈법이 복잡하게 됐다. 만약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새누리당도 책임을 면치 못하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 역시 후폭풍에 휩싸일 공산이 높다. 당장 추미애 당 대표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공산이 높고 추 대표를 만든 문재인 전 대표 역시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새누리당이 주도하고 있는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1월20일 야3당 원내대표가 만나 국회내 개헌특위를 1월 중 설치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는 집권 여당이 주도하는 개헌은 순수하지 못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의도가 탄핵 정국에서 개헌 정국으로 갈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문 전 대표일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표는 “임기 단축 개헌은 없다”고 못박으면서 “개헌은 차기 대선 후보가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집권여당의 개헌 추진의 핵심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귀국 시점에 맞춰 새누리당, 제3지대에 머물고 있는 범여권 인사등이 연정(이원집정부제 등)을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권력 분점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즉, 박 대통령이 임기단축 발언과 조기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퇴임 시점을 국회에 떠넘기면 친박은 개헌 추진을 통해 야권을 분열시키고 내년 1월에 귀국하는 반 총장의 대권 가도를 순탄하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계산속에 나온 반격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반 총장은 박 대통령 ‘임기단축’ 발언을 한 11월29일 일본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민간인으로 돌아온 후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친구, 한국 사회 지도자들과 논의 하겠다”고 대권 도전의사를 재차 밝혔다. 그러나 반 총장은 국내에 귀국해 바로 새누리당에 입당은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의 한 측근은 “귀국 후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친박계나 새누리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潘 ‘제3 지대’ 선택에 친박계 ‘폐족 선언’?

당장 대권 행보를 보이기보다는 정중동으로 합리적 보수세력과 개혁적 중도 진영과 함께 제3의 길을 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반 총장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친박쪽에서 진작부터 제기한 시나리오로 반 총장이 외치, 내치는 친박 실세 총리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 총장이 새누리당이나 친박계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이상 제3지대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세력과 권력 분점을 매개로 손을 잡을 공산이 높아졌다. 물론 새누리당이 제2창당 수준의 당을 변화시키고 친박계가 집단적으로 ‘폐족’을 선언할 경우에는 반 총장의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다. 하지만 친박계가 ‘2선 후퇴’할 가능성이 요원한 현재로선 반 총장이 제3지대에 머물고 있는 손학규, 정의화, 박형준, 이재오 전 의원 등 개헌에 찬성하는 세력과 함께할 공산이 높다.

여기에 개헌에 적극적인 인사로 김종인 민주당 전 대표가 있다. 김 전 대표는 최근 반 총장 지지세력이 개최한 개헌 세미나에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당장 야권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한 ‘반기문-김종인 연대설’이 흘러나왔다. 앞서 언급한 개헌 세력에 김 전 대표가 합류하고 새누리당 탈당파까지 가세할 경우 제3지대 정치세력은 메가톤급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손학규, 김종인, 정의화, 김무성 등은 외치를 반 총장에게 맡기면서 본인들은 내치를 담당할 ‘실세 총리’를 기대할 수도 있다.

반면 반 총장의 대권 가도가 반드시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에서는 내년 4월까지 반 총장을 위해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와 추미애 당 대표는 ‘즉각 퇴진’ 또는 내년 1월 말 퇴진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추 대표가 김무성 전 대표와 비공개 회동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빠르면 내년 1월 말께 헌재의 결정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늦어도 1월 말까지 대통령 사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꽃길과 가시밭길 사이… 潘·文의 운명

대통령이 1월 말 사퇴가 이뤄지면 3월 대선이 가능한데 반 총장의 귀국 이후 대권 행보가 너무 짧아 문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는 유리한 상황이다.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반 총장이 귀국해 활동 공간이 넓어지면서 문 전 대표에게는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반 총장의 귀국이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반 총장의 핵심 측근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숙 전 유엔대사가 반 총장의 귀국과 대선 준비를 위해 미국에 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반 총장의 최측근인 박원수 유엔 사무총장은 11월 15~20일 한국에 머물면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 국내 정치권 인사들을 만났다. 정 원내대표와 만나 김 차장은 “반 총장이 귀국 후 김대중·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을 뵙고 지난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업무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국립묘지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묘역도 함께 참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조기대선을 의식한 반 총장의 대권 행보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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