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DJ’? ‘포스트 박지원’도 없다! 한탄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 ‘임기 단축’ 발언이후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는 호남 민심은 정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빨라진 ‘대권 시계’지만 호남의 ‘대권 시계’는 제로에 멈춰있는 셈이다. 호남을 제외한 다수의 지역에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 후보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큰 인물을 품고 있었던 호남이지만 ‘포스트 DJ’가 부재한 현실에 자괴감마저 드러내는 모습이다. 정권 재창출의 핵심 동력이자 야당의 뿌리인 호남이 ‘정치의 변방’으로 밀리면서 조기 대선 정국을 맞이해 ‘부동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단축’ 발언 이후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에 떠도는 박 대통령 퇴진 시나리오를 보면 세 가지다. 하나는 이달 초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 권한정지와 함께 180일간의 헌법재판소 심판을 거쳐 탄핵이 결정된다. 이럴 경우 내년 5~6월경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탄핵안이 무산될 경우에는 개헌을 통해 내년 4월 개헌 국민투표를 거쳐 6월경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개헌과 탄핵이 무산된다 해도 ‘질서 있는 퇴진’으로 국회가 추천한 총리가 임명돼 조기 대선이 치러져 조기 대선이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대권 시계가 빨라진 만큼 대권 주자들의 발걸음 역시 빨라질 수밖에 없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안철수, 이재명, 박원순, 손학규, 안희정, 김부겸 등 잠룡군은 대선 경선 체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마땅한 후보가 없는 여권에서는 반기문 조기 귀국설을 흘리면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반 총장의 대안카드로는 남경필, 유승민, 오세훈, 원희룡 등 젊은 정치인들이 대비하고 있다.

단체장 출신 여야 잠룡 9명, 호남은 없다!

특히나 잠룡군 면면을 보면 영남 출신 후보가 다수다. PK출신으로는 문재인(경남 거제) 전 대표, 안철수(부산) 전 대표, 박원순(경남 창녕) 서울시장이 있다. 여권에서는 홍준표 경남지사(경남 창녕)가 성완종 리스트 관련 소송이 무죄로 나올 경우 출마가 확실시되고 있다. 국회의원, 충북지사, 장관을 지낸 정우택 의원은 고향은 부산이지만 충청도와 인연이 깊다. TK지역 출신으로는 이재명(경북 안동) 성남시장과 김부겸 의원(대구)이 있다. 여기에 김관영 경북지사도 대권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 고향 역시 대구다.

반면 손학규 전 고문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각각 경기도 시흥과 수원이 고향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충북 음성)과 안희정 충남지사(충남 논산)는 충청도 출신이다. ‘동반성장’을 설파하고 있는 정운찬 전 총리(충남 공주)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경우 충청도 인물군은 더 넓어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고향은 서울이다. 호남 출신 잠룡은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 후보로 꼽을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호남의 인물 부재는 지난 11월20일 박 대통령 퇴진·탄핵 논의를 위해 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의 모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 모임에 그나마 얼굴을 내민 인사가 바로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다. 하지만 존재감에서나 지지율 면에서 참석자 중 가장 떨어졌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문재인·박원순·안희정·이재명·김부겸 등이 참석했고 정의당에서는 심상정, 국민의당에서는 안철수와 함께 천 전 대표가 참석했다. 호남이 야권에서 차지하는 지분을 감안하면 초라할 정도다.

호남 인물난은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뉴DJ 플랜’은 1992년 DJ가 YS에게 패배한 후 정계를 은퇴하면서 등장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동안 DJ에 비견할 만한 인물은 없었다. 또한 DJ가 서거한 지 7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DJ만 한 인물을 찾기가 힘든 현실이다. 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향후 10년 동안 대권에 도전할 만한 대중성과 비전을 가진 인물이 나올 수 있느냐”에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야권 한 인사는 “그동안 호남 정치인들조차 ‘전국정당’과 ‘탈호남’을 주장했고 선거 때면 다시 ‘호남정치 복원’을 주장하는 등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인물 부재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이라며 “특히 호남 정치가 야권의 중심축 역할을 하기보다는 야권 분열 때마다 정치적 텃밭 내지 볼모로 전락해 정치적 변방으로 몰리게 됐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야권 핵심 관계자는 “지난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호남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진입했지만 신진 국회의원들이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했는데 ‘무늬만 다선’으로 성장해 인물난에 빠지게 됐다”며 “특히 계파를 의식한 양다리 정치와 상향식 공천의 허점인 기득권 강화가 허약한 호남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호남 인물 부재? 야권의 ‘자업자득’

실제로 호남은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패배하고 ‘친노 호남 홀대론’이 일면서 호남 민심은 안철수 전 대표에게 향했다. 결국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만들어준 것 역시 호남의 지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새정치가 지지부진한 사이 민심은 전북 강진에 머물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에게로 분산됐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의 너무 빠른 복귀에 회심의 개헌 카드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묻혀 빛이 바랬다.

최근에 호남은 대통령 탄핵.하야 정국에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향하고 있다. 이 시장은 최근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안철수 전 대표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는데 그 중심에는 호남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이 시장에 대한 호남의 지지에는 현 호남 단체장에 대한 실망감이 그대로 뭍어나고 있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충남지사, 제주지사, 경북지사, 경남지사 등 단체장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이 한결같이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기초단체장인 이재명 시장이 독보적인 활약에 자괴감마저 들 수밖에 없다. 경기도 내 기초단체장이 30여개인데 그중에서 한 곳인 성남 이재명 시장이다. 하지만 야권 내 유력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한 상황이다.

반면 전북 송하진 지사, 전남 이낙연 지사, 광주 윤장현 시장 등은 대선 정국에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세균 사람이다’, ‘손학규 사람이다’ ‘안철수 사람이다’로 분류돼 호남 민심을 대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별로 보면 전북은 정세균 국회의장 입김이 여전히 강하고 전남은 손학규 바람이 여전하다는 게 지역 관계자의 해석이다. 윤 광주시장의 경우  안철수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측근들이 비리로 구속되면서 정치적 코너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호남 민심이 안 전 대표에게도 완전히 가지 못하는 배경이다. 호남지역 국회의원을 후원했던 한 인사는 “진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키우지 않으면 지금으로선 인물이 없다”며 “이 역시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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