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겠다는데… ‘균열’된 탄핵 정국, ‘초조’한 親文, ‘눈치’보는 非朴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대통령 본인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야권이 당장 하야 외엔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탄핵’만을 고집한 반면 대통령은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셈이다. 이제 공은 국회에 넘어갔다. 국민들의 시선 역시 국회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국회 내 탄핵파·개헌파의 정치적 균열, 야3당 잠룡들의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경쟁이 심화된 모양새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대통령의 결단에 정치권은 ‘진정성’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非朴 내 기류 변화 감지…“야당 협상 거부하면 탄핵 찬성 어렵다”
- 野 ‘탄핵’ 앞세워 ‘대통령 임기 협상’ 거부하는 속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에 정치권은 즉각 대통령의 퇴진 일정을 놓고 대치전선을 형성했다. ▲여당 주류-‘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야3당-‘협상 없는 탄핵’ ▲여당 비주류-‘선 협상 후 탄핵’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말 탄핵정국이 개헌파와 탄핵파로 세분화된 모양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29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채우지 않고 중간에 퇴진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국회가 답해야 한다”면서 여야 합의를 통한 조기 퇴진 로드맵 구성을 촉구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여야 협상을 촉구하면서 “개헌이 전지전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장의 함성을 통해 반영된 국민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첫걸음은 될 것”이라고 밝혀 개헌을 대통령 임기 단축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국회의 탄핵이 대통령을 강제로 하야시키는 방법이라면 개헌은 국회가 합의하에 ‘제7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현 대통령 임기는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단축하는 내용을 부칙에 집어넣는 방법이다.

반면 여권 비주류 측은 주류 측이 주장하는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은 명분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에게 스스로 사퇴 시한을 내년 4월 말로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이들은 여야의 협상을 지켜본 뒤 불발될 경우 탄핵 절차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질서 있는 퇴진’이냐 ‘탄핵’이냐… 9일이 분수령

이런 상황에서 야권은 입장 변화 없이 여전히 ‘탄핵 단일 대오’를 고수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달 30일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과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이 제안한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에는 응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조건 없는 조속한 하야를 촉구하며,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흔들림 없이 공동으로 추진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야권과 여당 비주류가 탄핵안 처리의 마지노선으로 잡은 다음 달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전까지 정치권의 치열한 ‘수 싸움’이 시작된 모습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이후 세분화된 여야의 구도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일단 야권은 ‘탄핵 강행’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도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조차 주류와 비주류 사이 입장이 다르다. 심지어 개헌이나 거국내각, 총리 인선 등은 말 그대로 동상이몽인 상황이다.

일단 국민의당은 민주당보다 박 대통령의 4월 퇴진론에 유연한 입장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30일 야 3당 대표 회동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우리 당은 사실 탄핵과 퇴진 협상을 병행하자는 입장이지만 야권 공조를 위해 탄핵으로 방향 설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박 대통령이 언제 물러나겠다는 말을 하면 새누리당과의 협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결정적으로 국민의당은 지난 1일 민주당의 탄핵안 발의에 제동을 걸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제3지대 인사들 역시 제1야당이 책임지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 토론회에서 “이제는 박 대통령이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참회하지 않는다고 내치기만 할 일이 아니다. 국회에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내 온도차 감지… 왜?

이 같은 야권의 ‘자중지란’은 결국 정당의 존재 목적인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작전 구상 때문이다. 일단 민주당 내 주류인 친문계는 ‘시간이 금’인 상황에 처했다. 친문계로선 민심이 보수를 떠나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재인 대세론’에 금이 갈까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보수의 재결집도 견제해야 한다.

반대로 이들은 최근 문재인 전 대표의 ‘이미 대통령이 된 듯한 행보’에서도 드러나듯이 ‘문재인 대세론’이 굳건한 작금의 상황이라면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즉각적인 하야는 없다고 못 박은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대선을 치르려면 조속한 탄핵이 유일한 방법이 됐다. 친문계가 탄핵에 유달리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등 ‘제3지대’ 세력은 6월 대선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힘을 빼고 ‘제3지대’를 세력화할 시간을 벌면서 동시에 끓어오른 국민적 분노와 국정 혼란은 유지시켜 보수에 표를 뺏기지 않으려면 6월 대선이 적당하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한편 탄핵안 가결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비주류 측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달 3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 참석자는 “탄핵을 그대로 진행하자고 명시적으로 말한 분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비주류 측 강석호 전 최고위원 역시 의총 직후 “박 대통령이 그만두겠다고 밝혔는데도 무작정 탄핵하겠다고 하면 보수 지지층이 등을 돌리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고 당내 기류변화를 설명했다. 실제로도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무조건 탄핵 찬성’ 입장을 고수하는 새누리당 내 비주류 측 의원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매체가 지난 11월 22일 새누리당 비주류와 중립 성향 의원 61명을 대상으로 ‘탄핵안 찬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찬성 의사를 명확히 밝힌 의원은 29명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담화가 있은 다음날 30일 이들을 대상을 다시 확인한 결과 7~8명이 ‘야당이 협상을 거부한다면 탄핵에 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야권 성향 의원 171명과 무소속 의원이 모두 찬성한다 해도 탄핵 가결선인 200석에 근소하게 못 미치게 된다. 무엇보다 여권 비주류 입장에선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하겠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황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든 안 되든 보수 지지층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현실론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권과 여당 비주류가 박 대통령 탄핵안 의결 정족수 확보를 단언하고 있지만, 부결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질서 있는 퇴진’ 文 전 대표가 먼저 꺼내…

‘탄핵 정국’이 악화일로를 거듭하자 야권은 대통령 담화를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평가절하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한마디로 탄핵을 앞둔 교란책이고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대통령 스스로의 책임이나 퇴진 일정은 밝히지 않고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것은 국회는 여야로 구성됐는바 현재 여당 지도부와 어떤 합의도 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한 퉁치기”라고 했다. 나아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대국민담화가 아니라 새누리당을 향한 탄핵 교란 작전지시”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먼저 꺼낸 얘기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0월 20일 “박 대통령이 먼저 퇴진을 선언하고, 이후 질서 있게 퇴진하는 방안을 국회와 협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8일 돌연 박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제의를 무시하고 탄핵으로 돌아서더니 이젠 조기 퇴진 일정을 정해 달라는 제의마저도 무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한 정치권 인사는 “대통령이 당장 하야한다면 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며 “그렇게 탄생한 정권은 어떨 것 같나? 당장 출발부터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게 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합의를 시도해보지 않고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조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라며 “탄핵은 가결이든 부결이든 그 정당성을 놓고 심각한 국론 분열이 야기될 수 있어 마지막 카드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야권이 대통령의 담화를 두고 ‘꼼수’를 부렸다고 하는데, 대통령의 담화가 ‘꼼수’라 한들 국회가 이를 꼼수가 되지 않도록 풀어 가면 되지 않나”고 주장했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의 퇴진과 ‘조기 대선’은 분명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차기 대통령을 뽑는 정치일정은 어느 것 하나 분명치 않은 실정이다. 오히려 야권은 탄핵 단일대오를 걸으며 한 술 더 떠 헌법재판소에 여론을 이용한 압박마저 가하고 있다. 유력 대권 후보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하는 것은 민심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기각을 하는 헌재에 대해선 국민이 헌법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에 한 정치권 인사는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친노 친문 세력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에는 헌정 중단을 초래해선 안 된다고 기각 결정을 요구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행태는 똑같다”고 비꼬았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야당의 성급한 헌재 압박은 자제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을 이미 범죄자로 단정해서 낙인찍고 있는데 이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검찰의 공범 주장은 박 대통령과 앞으로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여야 한다. 또한 탄핵으로 간다 하더라도 헌재 재판관들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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