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朴의 딜레마… ‘탄핵’ 하자니 겁나고, ‘개헌’ 하자니 약 오르고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여권 내 계파 지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은 지난 1일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 로드맵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잠시 가라앉는 듯했던 개헌 논의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비박계의 ‘탄핵 대오’는 분열됐고 개헌 변수로 인해 구심점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더욱이 비박계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현 정국을 주도하는 것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비박계가 당권 등 소위 '잿밥'에 관심을 두다가 후퇴도 전진도 어려워진 상황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여권 내 야권’의 역할을 했던 비박계의 속내와 향후 대선 정국에서 이들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 들여다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親文’ 고립되는 ‘개헌 정국’… 非朴의 선택은?
- 탄핵 읍소… ‘낙동강 오리 알’ 신세된 남경필 경기지사

모든 것을 국회에 맡기겠다는 청와대 발 역 제안에 ‘현직 국회의원 200명 충족’이라는 일차방정식에 매몰돼 있던 비박계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떠안게 됐다. 야당 주도의 탄핵 추진에 동조하던 비박계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서서히 작동하고 있어 비박계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 양상이다.

‘탄핵’ 가결 될까? 비박 분열... 9일 탄핵도 위태

탄핵 가결의 캐스팅보트를 쥔 비박계가 입장을 바꾼 것은 김무성 전 대표가 1일 청와대와 친박계가 제안한 ‘4월 퇴진, 6월 대선’ 프레임을 수용하면서다. ‘탄핵 불가피론’을 가장 먼저 불 지핀 비박계 좌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격 회동을 갖고 “4월 말 박 대통령의 퇴임이 결정되면 굳이 탄핵을 하지 않고 그것으로 우리가 합의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대통령의 조기 퇴진 시점을 놓고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비박계의 한 재선 의원 역시 “내부적으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가 생기고 있다”며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몇몇 의원들이 이탈하며 의견을 모으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비박계로선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탄핵을 강행을 하게 되면 보수층으로부터의 외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반면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보다 개헌을 통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게 된다면 길 잃은 보수층에 호소할 명분이 생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곧 자퇴하겠다는 학생에 대해 굳이 퇴학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무엇보다 현 상태로 대선이 치러진다면 보수의 필패가 자명한 상황에서 개헌론을 통한 국면전환 기회는 비박계가 놓치기 아쉬운 카드다. 여기에 정계 구도가 헌법 개정 찬반으로 바뀔 경우 고립되는 정치세력은 친문계로 뒤바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헌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비박계를 포함한 여권 전체는 87년 체제를 끝낸 ‘개헌 주도’ 세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보수층 재결집 또한 이루어 낼 수 있다.

이에 정 원내대표 등 여당 내 상당수 의원들은 대통령 하야 절차와 별도로 국회 개헌특위를 통한 개헌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의총에서 “대통령 사퇴 일정이 협의되면 강력하게 개헌을 주장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새누리당의 4월 하야 제안은 개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새누리당 출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 역시 “넉 달이면 개헌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4월 국회의원 재·보선이 치러지는 시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與 ‘개헌 통한 임기 단축’으로 기류 변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가 타게 된 것은 ‘선도 탈당’ 그룹이다. 지난달 22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11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선 시간이 없다. 시간은 금”이라며 “국회는 계획대로 12월 9일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해야 한다”고 여야 정치권을 향해 계획대로 탄핵을 추진해달라 읍소(?)했다.

당초 여권 내에선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의결되기 전에 당적을 정리하겠다고 공언한 비박계 의원이 적지 않았다. 김재경 의원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상황에서 탄핵안에 찬성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탄핵 투표를 해야 한다면, 탈당한 뒤 찬성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박계 좌장 김무성 전 대표 역시 탄핵안이 표결에 들어갈 경우 탈당을 하고 본격적인 신당 창당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에 남 지사 본인 역시 탈당 당시엔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추진되면 자연스레 후속 탈당이 잇따르게 되고 그 결과 새누리당이 분당, 나아가 해체까지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보수 신당에 합류해 신분 세탁(?)하려는 계획도 세워 놨을 것이다. 그러나 남 지사의 이 같은 ‘책략’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권 내 기류는 이미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으로 변한 상황이다. 남 지사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다.

한편 친박계는 이 같은 비주류의 회군(回軍)을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치켜세웠다. 탄핵 방어와 함께 분당 사태도 일단 모면했다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친박계는 개헌 논의가 재점화되면 개헌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를 당내에 붙잡아 두면서 오월동주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친박계 요구에 맞춰 4월 퇴진을 공식화해 탄핵 흐름에 쐐기를 박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퇴진 시기 명시를 요청해온 비박계의 추가 탈당은 더 이상 없게 된다. 대신 야권은 촛불 민심의 거센 비난에 시달리고 ‘무능한 야당’ 프레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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