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29일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담화에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국정 정상화 방안이 이제 야당으로 넘어간 셈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촛불시위의 명분은 없어졌다. 언론의 마녀사냥도 멈춰야 한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박 대통령이 민심을 수용해 임기 단축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고뇌에 찬 결단이라 하겠다. 여당은 ‘4월 퇴진-6월 대선’을 당론으로 확정하여 야당에 협상을 제안했으나, 야당은 ‘즉각 하야를 결단하라’며 임기단축 협상에 반대했다. 이것은 정치 포기와 다름없다. 야당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야당이 내건 전제조건인 ‘별도 특별검사와 국정조사,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 철회, 박 대통령의 국정 2선 후퇴와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수용’ 등이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물러나고 싶다고 해도 아무 때나 물러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즉각적으로 퇴진할 경우 국정 공백과 차기 대통령 선거 과정의 혼선과 혼란을 막을 수가 없다. 퇴진도 ‘질서 있는 퇴진’이 되어야 안보와 경제, 그리고 사회 전반에 미칠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 된다.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 각계 원로들이 박 대통령에게 내년 4월까지 질서 있게 퇴진할 것을 권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광장에서 민중을 선동하는 ‘인민재판’식 하야 주장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제는 그만 둬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순이 효순이 교통사고를 미군의 살인사건으로 오도했던 좌파 언론이 그 후 책임진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거짓으로 판명 났지만, 민중을 선동했던 종북 좌파들이 단죄 받은 적이 있는가. 그때 그 시절 촛불을 들었던 수십만 군중들이 지금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퇴진 후 법정에서 끝까지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
이미 국정의 중심이 야당으로 옮겨졌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방안은 우리 헌법상 임기단축을 위한 개헌과 탄핵 등 두 가지밖에 없다. 야당은 이 두 가지 범위 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여야가 탄핵 외길에서 벗어나 연착륙 방안을 찾아낸다면 야당은 국민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며 수권능력을 평가 받게 될 것이다. 먼저 개헌을 추진해 임기단축이 헌법에 위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헌법 개정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집적돼 있기 때문에 여야가 합심하면 내년 4월 보궐선거 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이 눈앞으로 굴러왔다고 여긴 문재인은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 대통령 퇴진에 전념할 시기”라고 규정하고, 다른 대권 주자들의 개헌 주장에 “꿈 깨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자신의 집권을 위해 개헌의 물줄기를 바꾸려는 불순한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국가 기본질서를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개헌은 추진돼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듯이, ‘최순실 사태’를 헌법 개정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개헌이 어렵게 될 경우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야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경우의 국정 혼란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퇴진을 밝혔기 때문에 김무성과 새누리당 비박계는 더 이상 탄핵에 찬성할 명분이 없다. 그들은 야당으로부터는 ‘부역자의 투항’이라 조롱당하고 있으며, 보수로부터는 ‘배신자의 응징’ 대상으로 전락했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비박계가 ‘야권-비박계 간 탄핵 공조’에서 회군(回軍)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제 남은 일은 당도 살리고 정국도 수습할 수 있는 임기단축 협상과 개헌을 주도하는 것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경제 지표는 환란 수준이고 정책은 진공상태다. 그러나 정국 안정을 논의하자는 목소리는 요원하다. 국회는 무능하고 당파적 행위의 파열음만 요란하다. 말과 글과 구호로 무장한 종북 좌파들과 선동 언론들이 무차별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안보와 국가 정체성 수호를 외치는 ‘말없는 다수’는 침묵하고 있다. 마치 패망 직전의 월남과 같이.
이제 분노에서 벗어나 수습책을 내놔야할 시기다. 정국은 ‘수습이냐, 파국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야권은 ‘질서 있는 수습’의 길로 나서야 한다. 정략보다 국익을 앞세워야 한다. 정권쟁취의 소리(小利)보다는 국정공백 해소의 대의(大義)를 생각해야 한다. 12월 9일 직전까지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과 차기 대통령 선거 일정 등 로드맵을 대승적으로 합의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다.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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