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편안하게…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

프리미엄 고속버스 내부 모습.

독립된 개인 공간·TV·테이블 등 다양한 편의서비스 

전국 1만여대 고속버스 중 장애인 탑승 가능 버스 ‘0’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달리는 일등석’이라 불리는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지난달 25일 그 위용을 드러냈다. 안락한 좌석과 널찍한 공간,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출시 이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국토교통부는 이 버스가 현재 운행되고 있는 그 어떤 버스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기자가 직접 타 보니 기존의 일반·우등버스보다 확실히 월등했다.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 본 승객들도 만족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이들은 장애인들도 지역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시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관련 예산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선)에서 본 프리미엄 버스 실제 외관은 기존 버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차량 계단에 올라서자 깔끔한 내부가 시선을 끌었다. 약하게 나오는 에어콘 바람은 쾌적함을 더했다. ‘찰칵찰칵’. 최근 프리미엄 버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차량에 앉은 승객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신 울렸다.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네

프리미엄 고속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명절 귀향길에 부산행 우등버스를 즐겨 탔던 기자는 몸이 뻐근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프리미엄 버스에 타자마자 좌석을 젖혀 누우니(최대 160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편안함을 느끼는 건 기자만은 아닌 듯 출발 10분도 되지 않아 한쪽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프리미엄 버스는 21인승이다. 28인승인 우등버스보다 좌석수가 적은만큼 개인 공간이 넓어졌다. 개별 좌석에는 가림막(커튼)이 있어 이용객의 독립적 공간이 마련됐다. 노트북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도 있고, 전자기기 충전용 USB 단자, 개인용 스탠드, 슬리퍼, 이어폰, 안대 등 각종 편의서비스도 마련돼 있다.

프리미엄 고속버스 내부 좌석에 설치된 모니터.

게다가 전 좌석에 모니터가 설치돼 있어 영화·TV·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시간 버스를 타다 보면 한 번쯤 생리현상이 급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각 모니터 화면 속에는 ‘비상호출’ 버튼이 있다. 이를 누르면 ‘화장실’, ‘승무원 호출’ 2개의 버튼이 있는데 누르면 운전기사에게 각종 ‘민원’을 요청할 수 있다.

프리미엄 버스를 탄 승객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김지환(22)씨는 “누워서 갈 수 있어 편하다. 어제 밤을 세웠는데 쭉 자고 일어나니 서울에 도착했다”며 “피곤한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것 같다. 다음에 탈 기회 있으면 다시 타겠다”고 말했다. 곽승부(65)씨도 “편하게 좀 누울 수도 있고 TV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프리미엄 고속버스 내부 모습.

각종 첨단 안전장치를 설치해 안전성을 높였다는 점도 프리미엄 버스의 큰 특징이다.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차선 이탈 경보장치’, 미끄럼 방지 기능의 ‘차량자세 제어장치’ 등 주행 중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탑재했다. 또 모든 설비에 방염 자재를 사용해 화재 발생 시 피해 확산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운전기사는 사고 경력이 없는 ‘무사고’ 운전사를 배치 했다.

운행 구간은 현재 서울과 부산, 서울과 광주 두 곳이다. 국토교통부는 수요 검증을 거친 후 노선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운행요금은 서울-부산 구간은 4만4400원, 서울-광주는 3만3900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우등버스(3만4200원, 2만6100원)보다 1.3배 비싸고, KTX(5만9800원, 4만7100원)보다는 저렴하다. 다만 밤 10시 이후 운행하는 ‘심야프리’는 10% 할증 요금이 부과된다.

혜택 누릴 수 없는 장애인들

이 같이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훌륭한 ‘스펙’을 갖췄지만 이를 전혀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프리미엄 버스에서 이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프리미엄 버스는 1992년 우등형 버스 도입 이후 정체된 서비스 수준을 제고하고, 상품 다양화를 통한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도입됐지만 정작 이 ‘소비자’에 장애인은 배제됐다. 박철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획국장은 “말은 프리미엄이지만 장애인들은 그 프리미엄을 전혀 누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실 이는 프리미엄 버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연대에 따르면 현재 운행되고 있는 전국 9574대의 광역버스를 비롯, 고속·시외버스 중에는 교통 약자가 탈 수 있는 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장애인연대는 2014년부터 정부에 장애인도 함께 탈 수 있는 편의시설 설치를 촉구해왔다. 이들은 수년간 장애인의 ‘시외이동권’을 위해 버스타기 캠페인을 진행하며 정부가 예산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문애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실장은 “편의시설 설치비용은 일반버스 1대 당 4천만 원이 소요되는데 국토교통부에서는 16억 원을 편성해 기획재정부와 예산결산위원회에 요청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우리의 요구를 외면했다”고 밝혔다.

박철균 기획국장은 또 “그간 예산 없다고 한 기획재정부가 저상버스보다 더 예산이 많이 드는 프리미엄 버스를 내놨다”며 “현재 정부는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고, 운수업자는 수익만 쫓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운수업자 측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솔직히 운수업이란 시간싸움”이라면서 “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도 아닌 데다 관련 시설을 설치하면 시간 문제, 안전 문제, 장비 유지보수 등 여러 제약들이 있다”고 했다.

2017년도 고속버스 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관련 예산은 국토교통부에서 편성,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고 장애인 연대는 전했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상정돼 심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연대 측은 이번에는 꼭 통과되길 기원했다.

문애린 장애인연대 조직실장은 “이동권은 사람의 필수적 권리”라며 “장애 유무와 나이·성별을 불문하고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반인들이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불편함도 한 번 생각해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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