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선자금 유용에 대한 수사 고삐를 죄면서 여의도 정가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이미 비리정치인 살생부가 정치권에 회자되면서 관련 정치인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불법으로 조성된 대선자금마저 개인적으로 착복한 정치인을 ‘파렴치범’이라고까지 규정했다. 수사강도를 내비친 말이다. 검찰의 의지만큼 수사 대상 정치인은 총선정국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검찰 ‘살생부’에는 대략 18명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이미 대선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거나 부정 축재한 구체적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 여야 정당들은 공식적으로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검찰이 어떤 단서를 갖고 누구를 수사 대상자로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공식 논평을 할 게 없다.”(한나라당)“당시 사정으로는 따로 빼돌리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열린우리당)애써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불똥이 어떻게 튈 지에 대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거명되는 의원중에는 대선자금 유용외에 개인비리와 관련된 의혹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한나라당. 영남출신인 K의원을 비롯, 또 다른 3명의 K 의원, 다른 지역의 C, Y, H, S 의원 등 8명이 거론된다. 이들 중에는 대선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활약한 재선 의원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는 후문이다. 당 관계자는 “부국팀과 비서실, 기획위원회, 직능위원회, 청년위원회 등 수많은 조직들이 자체 경비를 조달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각 조직의 책임을 맡았던 의원들의 유용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열린우리당과 민주당도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중진 K, J, K의원 등 3명, 열린우리당의 중진 J 의원과 창당핵심 L, A 의원 등 7명이 비리정치인 리스트에 포함됐다.

민주당 인사들은 대선자금 유용과는 별도의 개인비리가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열린우리당의 경우 대선과 창당에서 상당한 기여를 한 인사들이 거론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노무현 후보 선대위와 측근들의 자금 모금 루트가 사실상 분리돼 있어 상당한 액수가 유용된 정황이 포착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당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볼 뿐 대응책이 없다”고 토로했다.이런 가운데 각당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공천을 마무리한 뒤 연루 대상자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유용 내용이 드러날 경우,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당의 이미지까지 타격을 입으면서 총선 최대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 이들이 유용한 돈 액수와 사용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은 또 대선당시 주요당직자 부인이 사용한 수표에 대해 소명을 요구하는 등 수사에 대한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의원들이 유용한 돈의 용처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공천이 다 끝난 뒤 20여명만 검찰에 소환되고 유용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때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것이다. 중진인 K의원의 경우 차명으로 사 둔 집만해도 모두 14채로 파악되고 있고, 또 다른 J의원은 B병원 납품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미국에 빌딩을 산 정치인이 있다’, ‘유학 중인 자녀의 생활비로도 사용했다’, ‘고급 승용차 구입 등에 사용했다’, ‘외상술값을 갚았다’,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는 등 다양한 의혹이 구체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또 일부는 주택이나 자동차, 골프회원권 등을 구입하거나 해외여행 경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대표 및 운영위원 경선때 후보들이 사용한 막대한 자금이 상당부분 대선 잔금일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한 당직자는 “이회창 후보가 자금문제를 딱 틀어쥐고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처에서 유용사태가 벌어졌을 공산이 크다”며 “당에서 나눠준 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의 유용은 물론 특별당비 모금 과정에서 상당한 액수를 당에 전달하지 않고 사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한두건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문수 대외협력인사위원장은 “사실로 확인되면 내년 공천 심사에서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못을 박았다.

노무현 후보캠프의 경우에도 후보선대위와 측근들의 자금모금 루트가 사실상 분리돼 있어 상당한 액수가 유용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한다.민주당 관계자는 “대선자금 명목으로 모은 돈을 한푼도 당에 안내고 전액 개인 호주머니에 넣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당에서 내려온 대선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대선자금 유용 비리정치인 수사는 검찰이 이른바 특별당비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기업과 정치권의 검은돈 수수 사실을 파헤치면서 확대된 측면이 짙다.대선 당시 노무현·이회창 후보 등 두 캠프에서 음성적으로 조성한 특별당비의 규모를 파악하면서 유용 혐의가 드러났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특별당비에 대해 “일반적인 돈 거래의 원칙과는 달리 법적으로 특별한 규정이 없어 영수증 발부를 통한 회계처리가 되지 않고 총액으로 선거비용에 합산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TF팀이 특별당비를 자체 조사한 결과, 유용 혐의자의 경우 대선기간 동안 특별당비를 개인별로 2-3억씩 냈으며 이와 관련, 민주당에 영수증이 처리돼 있다”고 전언, 대선기간 동안 의원이 개별적으로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음을 암시했다. 한나라당도 그동안 4대 기업으로부터 받은 502억원 외에 다른 기업으로부터 받은 불법자금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외형상 검찰 수사에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검찰의 움직임은 구여권과 신여권, 거대야당의 핵심부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대선자금을 털기 위한 정치권 개혁작업이 결국은 여권의 구상이라 해도 여야 모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살생부 파문은 정치권의 반발 역풍으로 무력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표적사정’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여권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견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어쨌든 이번 수사는 이미 멀리 와있다는 게 검찰안팎의 중론이다. 검찰은 대선 정치자금을 유용한 일부 정치인의 신원을 이르면 내년 1월 중순께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수사 대상 정치인들이 대선자금을 어떠한 용도나 개인적 축재에 이용했는지 구정전이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한나라당의 검찰에 대한 대선자금 특검 추진 압박 시점과 맞물려 검찰의 대선자금 유용비리 수사 반격이 어떻게 결말 지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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