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넣은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은 처음 있는 불행이 아니다. 초대 이승만에서 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68년동안 빠짐없이 대통령 권력에 기생했다. 이기붕, 차지철, 전경환, 박철언, 김현철, 김홍업·홍일·홍걸 3형제, 노건평, 이상득, 최순실 등 그 밖에도 많다. 

역대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행이 터져 나올 때마다 온 나라는 분노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며 엄히 처단했고 법적 제도적 보완책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측근들의 국정 농단은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그동안 아첨과 맹종적인 예스맨에 의존하는 대통령과 국민 의식이 전혀 바뀌지 않은 탓이다. ‘한국 권력의 병’이다.

첫째, 대통령이 각료나 참모 보좌진으로 능력보다는 아첨과 맹종적인 예스맨을 뽑는다는데 연유한다. 대통령이 아첨과 예스맨에 의존한다면 쓴소리를 들을 수 없고 최순실·김현철 같은 사람이 국정을 농단해도 막아설 사람은 없다.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괘씸죄로 몰릴까 두려워 입을 다문다. 지난 3년 반 동안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에 대해 대통령에게 간언(諫言) 한 참모는 하나도 없었다. 다음 대통령도 아첨과 예스맨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2의 최순실은 또 설친다. 

둘째,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은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면서 법과 제도에 따른 참모진을 믿지 못하고 비선상의 개인에게 치우친다는 데 기인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주변 참모를 제쳐놓고 고종사촌 동생 박철언 장관에게 의존했다. 박 장관은 ‘황태자’로 군림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오로지 둘째 아들 김현철 씨만 믿었다. 김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행세했고 권력이 몰리는 곳에 국정 농단은 필연적으로 판칠 수 밖에 없다. ‘소통령’과 ‘황태자’ 모두는 쇠고랑을 찼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 참모진과 각료들보다는 비선상의 최순실만을 신뢰함으로써 권력이 최 씨에게 몰리게 했고 국정농단과 탄핵 함성을 자초했다. 다음 대통령도 법·제도에 따른 참모진을 벗어나 비선상의 개인에게 쏠릴 때 ‘소통령’ ‘황태자’ ‘최순실’ 농단은 막을 수 없다. 

셋째, 국정농단 예방을 위해서는 대통령과 측근들이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해선 아니 된다. 공권력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이 행사되어야 한다.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권력으로 4000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각기 거둬들인 것도 권력의 사유화이다. 그밖에도 기업체·언론사·시민단체·노조·종교단체·문화예술단체 등의 종사자가 조직의 위세를 개인 사익을 위해 이용한다면 그것도 권력의 사유화이다. 공(公)과 사(私)를 구분치 않는 데 기인한다. 제2의 최순실을 막기 위해선 대통령은 물론 모든 국민이 권력의 사유화를 거부해야 한다. 권력의 사유화는 꿀처럼 달지만 조직체를 썩게 하고 형무소로 직행하는 지름길이다. 

넷째,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을 예방키 위해서는 지도자의 사고체계가 감성에 휘둘리지 말고 냉철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게 국정 농단의 기회를 열어준 것도 최 씨 아버지 최태민 씨와 그의 딸 최순실 씨와의 오랜 인연에 흔들린 탓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럴 때일수록 냉철하고 합리적인 이성에 입각, 최 씨와의 인연 고리를 끊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은 인연의 저주 고리를 끊지 못하고 도리어 묶였다.

역대 대통령 측근의 권력농단을 키운 병은 최고 권력자의 아첨과 예스맨 의존, 법·제도를 벗어난 비선상의 개인 의존, 권력 사유화, 냉정을 잃은 감성지배 등에 근원한다. 이 네 가지 ‘한국 권력의 병’이 말끔히 치유되지 않는 한 대통령 탄핵만으로는 제2, 제3의 최순실 국정 농단을 피할 수 없다. “한국 권력의 병”을 키운 병든 국민의식 부터 근원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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