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개사 퇴출 대상 “‘당근과 채찍’ 필요” 지적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중소기업 업계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지난 6일 금융감독원은 채권은행들이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 원 미만 기업(중소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 평가를 완료하고 176개사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들 기업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 일각에선 구조조정 대상 발표가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건전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C, D등급 구조조정행
금융권 "경기 침체에다 채권은행 평가 엄격해져"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 176개사가 부실기업으로 분류됐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5개가 퇴출 대상이다. 2014년에 비해 40% 늘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 만에 최대 규모다. 2009년 512개에서 그 후 2년 연속 줄었지만 그 뒤 다시 늘어 올해까지 계속 증가세다. 실제 2011년 77개로 낮아진 뒤 2012년 97개, 2013년 112개, 2014년 125개, 2015년 175개로 확대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조선, 철강 등 국내 주력 업종들의 부진 여파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로 분석했다. 실제 조선, 건설, 철강, 해운, 석유화학 등 5대 경기민감 업종 기업은 26개사로 전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14.8%를 차지했다.

이는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와 자동차 내수 및 수출 부진 등으로 관련 업종 중소기업의 타격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8월 발표된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도 전자업종 5개 대기업이 퇴출 대상으로 선정됐다. 아울러 경기 위축으로 비제조업체 중 유통업 8개, 골프장업 4개 등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됐다.

예상보다 적었다 안도
장기불황에 울상

업계는 당초 예상보다는 적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장기 불황에 따른 양극화 심화 등 ‘부실 경보’가 중소기업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는 내년 이후 중소업체들이 중대 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 상황의 중기 규모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올해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이 세부평가 대상으로 삼은 중소기업 수는 2035개다. 지난해보다 101개나 증가한 수치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금감원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연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이거나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회사, 자본이 완전 잠식된 회사 등을 대상으로 신용위험 세부평가를 한다. 그 대상이 2000개가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세부 평가 대상 업체가 많았던 건 지난번보다 평가에 포함시켜야 하는 기준 자체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번 세부 평가 포함 기준에는 자산 건전성 평가에서 완전 자본잠식으로 분류된 경우까지 새로 더해졌다. 이 관계자는 “채권은행에서 중소기업들의 특성상 개인 대주주가 많은 점 등 재무제표 이외 다른 요소도 감안해 평가를 내린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살생부 발표 이후 중소기업계는 동조와 우려 등 양반된 반응을 보였다. 구조조정 대상 선정에 찬성하는 한 관계자는 “명확한 구조조정 원칙을 통해 회생 가능한 기업, 신성장 기업에 한정된 금융자금이 더욱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용위험평가가 단발성 구조조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큰 그림에서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 개선까지 이끌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현 산업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신성장동력 확보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중앙회 관계자는 “영업실적 하락으로 중소기업의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국내 시장금리가 상승압력을 받게 되면 향후 중소기업의 부채비율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신용평가 대상 기업이 늘고, 채권은행들이 신용평가를 엄격하게 실시하게 되면 지난해보다 몇 배나 많은 중소기업들이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할 금융지원 방안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금감원의 발표는 금융시스템 안정,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한계기업을 정리한다는 취지로, 마땅한 작업”이라며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도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다만 구조조정만 강조하면 중소기업 자금순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전한 기업들의 자금 선순환을 위한 정책도 함께 펼칠 필요가 있다”며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엄격한 잣대로
지속적인 지도·검토 예정

한편 금감원은 C등급에 선정된 71개사에 워크아웃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D등급을 받은 105개 기업은 회생 절차를 거쳐 부실을 정리하게 한다. 이를 신청하지 않는 기업에는 주채권은행이 신규 여신 중단이나 만기 시 여신 회수, 여신 한도나 금리 변경 등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금감원은 이달 중 신용평가사와 공동으로 사후관리 등이 적정한지 현장점검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협력업체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 간 대출 상환 유예를 독려할 예정이다.

장복섭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늘어난 것은 국내 경기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제적, 적극적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 엄정하게 평가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정기평가 이후에도 기업 재무상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엄정한 옥석가리기를 상시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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