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시계를 조선시대로 돌려보자. 정조 곁에는 항상 홍국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객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던 자신을 구해준 그를 정조는 절대 신임하며 개혁을 주도하게 했다. 정조의 후광 속에 홍국영은 글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세도는 오래 가지 못했다. 권력에 취한 나머지 왕을 토끼에 비유하는 망언까지 일삼다 정조에게서 버림을 당한 뒤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정조의 개혁의지도 치명타를 입었다.

시계를 조금만 더 뒤로 돌려보자. 고려 말 신돈이라는 승려는 공민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고 막강권력을 휘두르며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왕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이다 보니 안하무인 격 행동이 잦았다. 자신의 반대파를 가차 없이 제거하는 등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르기도 했다. 그의 세도 역시 오래 가지 않았다. 왕을 시해하려다 발각되어 사지가 찢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공민왕의 개혁 의지 역시 큰 내상을 입었다.

이제 시계를 현대로 되돌려 놓자.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의 세 아들은 각종 게이트에 연루되어 순차 구속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소통령’으로 군림하며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는 각각 대통령의 친형이 각종 로비에 연루됐다. 이들은 고위 공직자의 인사를 주물렀으며, 자신의 인맥을 구축해 국정을 농단했다. 이들은 또 이 같은 청탁과 개입의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챙킨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를 보자. 최순실이라는 ‘비선’의 여인이 박 대통령과의 각별한 관계를 이용해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정황상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의 든든한 신임을 등에 업고 홍국영과 신돈 못지않은 권세를 휘둘렀다고 볼 수 있다. 최순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최순실에 속은 박 대통령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하야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디 우리나라만 그렇겠는가. 얼마 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에 패한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후보에게도 문고리 실세가 있었다. 호마 에버딘(40)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힐러리와 거의 모든 일상과 정보를 공유했고, 이메일을 통해 국가 기밀문서마저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힐러리가 선거 막판 곤욕을 치른 이유도 바로 에버딘과 주고받은 이메일 때문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대의 ‘최순실’은 언제나 존재했다. 따라서 앞으로 어디서든 또 다른 형태의 ‘최순실’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는 더 많은 ‘최순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최순실’은 독버섯처럼 늘 ‘기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거철만 되면 부나방처럼 유력 후보 진영에 몰려든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순실’이 되어 이득을 챙겨보겠다는 심산들이다.

‘최순실’은 정치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계는 물론이고,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문화계 등 각계각층에 깔려 있다. 날마다 터지는 각종 비리 사건들은 당사자 마음속에 ‘최순실’이 자리 잡고 있기에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그 누구도 다른 형태의 ‘최순실’이 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또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디서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최순실’같은 특권을 누리고 싶어질 것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정치인이라면 내가 쓴 책을 상임위 관련 업체를 상대로 ‘강매’ 아닌 ‘강매’를 하고 싶고, 경제인이라면 재벌이라는 ‘빽’을 이용해 하청업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고, 힘 좀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그 이유로 자동차 구입 시 할인혜택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어한다. 의식적으로 그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그런 욕망을 분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학연·지연·혈연관계를 유난히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의 특권의식은 더욱 부정적으로 작동한다. 같은 값이면 고교 또는 대학 후배를 승진시키고 싶고, 같은 값이면 대통령 선거에서 동향 사람을 뽑아주고 싶고, 같은 값이면 친·인척을 좀 더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역으로, 승진하기 위해 유난히 학교 선배를 찾고, 당선되기 위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좀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한다.

특권이란 ‘어떤 신분이나 지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나 이익’으로 국어사전에 쓰여 있지만 ‘자신의 지위와 권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용해 각자가 얻어야 할 몫 이상을 취하는 것’으로 읽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자기 몫 이상의 몫이 공공의 것일 경우 그 특권은 국가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게 된다는 말은 옳아 보인다. 최순실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의 잘못된 특권의식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조기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래의 ‘최순실’들이 몰려들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특히 유력 후보의 당에서는 벌써부터 집권 후 논공행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검사 출신의 자당 의원을 “법무장관”으로, 당의 한 고위 당직자를 “기재부장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어떤 방송인은 현 야당 기초단체장을 “국정원장 직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줄서기 특권의식의 전형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에 ‘최순실’같은 인물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의식적으로라도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 특히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은 미래 ‘최순실’들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은 자신을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수많은 공신들과 외척들을 제거했다. 결과적으로, 그 같은 ‘용단’이 있었기에 아들 세종대왕이 조선 최고의 왕이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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