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때문에…아시아금융허브 목표 헛구호 될라

▲ 여의도 증권가 야경.

국내에 진출한 외국은행(외은)들이 유럽계를 중심으로 지점·사무소를 폐쇄하는 ‘탈(脫) 한국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모(母)기업의 자본확충 부담이 표면적인 원인으로 꼽히지만, 국내 금융사정을 들여다보면 다른 문제점들도 부각된다. 특히 각종 규제로 인한 경영여건 개선의 어려움이 예상돼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한국을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목표로 외은지점 규제 완화를 단행했지만, 여전히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경쟁국들보다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5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낸 ‘국내 외은 지점의 이탈 원인과 시사점’에 따르면 최근 스페인 내 자산 1위인 산탄데르은행이 서울 사무소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 2009년 금융위원회에 사무소 신설 인가를 신청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산탄데르은행은 서울 사무소 인력을 홍콩으로 흡수하고, 아시아 지역 영업을 홍콩에서 총괄할 방침이다.

같은 스페인계 은행인 BBVA도 지난 10월 서울 지점을 폐쇄하기로 했다. ▲1월 영국 바클레이즈 ▲2월 미국 골드만삭스 ▲4월 스위스 UBS 등도 차례로 서울을 떠났다.

이에 앞서 HSBC는 소매금융 사업을 접고 10개 지점을 폐쇄했으며 현지법인 형태인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도 캐피탈 등 자회사 매각, 펀드 사업 철수 등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10월 말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현지법인 제외) 수는 42개이며, 이중 지점과 사무소는 각각 47개, 17개로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수익성 악화
외은 이탈 불러와

국내 외은지점의 총 자산은 273조 원(6월 말 기준)이다. 국내 은행의 자산과 비교할 때 12.2%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씨티은행이나 SC은행과 같은 현지법인을 포함해도 비중이 17.2%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지역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타 국가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전통적인 금융강국인 영국은 외은지점의 자산 비중이 2014년을 기준으로 해도 30% 정도이며, 아시아 금융허브를 놓고 경쟁하는 홍콩도 2015년 말 현재 36.3%에 달한다.

외은들의 이탈은 국내 경기 부진, 은행 간 경쟁심화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본격화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외은지점의 당기순이익은 9563억1900만 원으로 1조 원대를 넘지 못했다. 지난해 상반기(1조2693억3900만 원)보다 24.7%나 감소한 수치다. 총자산이익률(ROA)은 시중은행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2009년 0.83%에서 2016년 상반기 0.32%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선 곧 바젤 Ⅲ의 시행으로 파생상품 거래 규제가 강화돼 모 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 부담이 커지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유럽은 파생상품거래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앙청산소(CCP)를 통한 청산 유도, 거래정보저장소(TR) 보고 의무화, 증거금 규제 등 장외파생상품시장에 대한 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국내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외은 지점들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빠르게 철수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해석이다.

앞서의 보고서는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외화 거래 규제완화가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발표로 외은지점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가 150%에서 200%로 상향 됐지만, 아직도 자기자본을 고려한 선물환 거래 부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외은지점 자본금과 관련, 아직 본점의 자본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점별로 갑기금은 30억 원 이상, 을기금은 총자본의 2배 이내 등으로 자본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본점 자본금을 인정하는 미국과 업무별로 인가를 별도로 실시하는 영국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불합리한 규제 완화
영업환경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외은 지점에 관련된 불합리한 규제를 완화해 외국계 은행들도 국내에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외은 지점의 업무범위는 국내 은행과 같지만, 자본금은 본점 자본금을 인정하지 않아 자본금 산정 범위의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허브를 차치하고라도 외화 공급원으로서 외은지점의 역할이 커 외화 자금 운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시아 금융 중심지를 두고 경쟁하는 홍콩, 상해, 도쿄 등에 비교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글로벌 금융회사의 국내 진입을 유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외환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진입 목적에 적합한 영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 금융시장은 국내은행들만의 리그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금융권에서는 국내금융시장의 성장과 위상을 올리기 위해 불합리한 규제 개선 및 완화, 각종 세제 혜택 등 외국계 금융회사를 적극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인 지원을 통해 글로벌 금융중심지로의 위상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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