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권력은 ‘광장정치’에 있다. ‘헌법보다 무서운 촛불’ 사회가 돼 버렸다. 촛불은 진실을 담지 못 한다. 법치와 이성을 파괴하는 대중광기이자 ‘폭민(暴民)정치’일 뿐이다. 자칫 대한민국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 정치 검찰은 광장에 굴복했다. 선동 언론은 마녀사냥에 몰입하고 있다.

촛불을 헌정중단과 민중혁명으로 연결시키려는 선동 정치인이 있다. 문재인이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 선동했다. 가소롭다. 헌재에 대한 사전 협박이다. 아마도 문재인은 ‘프랑스혁명(1789)’을 염두에 두고 발언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무지하거나 역사에 대한 착오다. 프랑스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본질은 자유라는 미명 하에 정적(政敵)을 제거한 ‘부정(否定)의 정치’다. 저항과 붕괴, 인민재판과 단두대라는 부정적 유산만 남겼다.

프랑스혁명을 진두지휘한 ‘로베스피에르’는 “부르주아층과 중소 지식인들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라도 국왕(루이 16세)과 그의 사치스러운 왕비(마리 앙투아네트)는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백주대낮에 펼쳐지는 살육극의 막을 올렸던 장본인.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수립한 방식 그대로 재판 받고 단두대의 제물로 사라졌다.

역사상 성공한 혁명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혁명은 맹목적 전복과 해체가 아니다. 기존 가치나 질서와의 단절은 더욱 아니다. 진정한 혁명은 더 나은 통치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위대한 전통의 복원이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전임 이승만 대통령의 네이션빌딩 원리인 반공자유주의, 한미동맹, 교육입국 정책 등을 그대로 승계했다. 그 바탕 위에 수출입국,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건립 같은 조국근대화를 위한 국가개조 과업들을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밀고 나갔다. 이런 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광장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없다. 분노는 대안을 만들 수 없다. 광장의 폭정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대신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촛불세력 뒤에서 웃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반(反)대한민국 세력과 김정은 아닐까. 잘못은 끌어내리기와 정치보복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헌법 개정을 위시한 점진적인 제도개혁으로 풀어내야 한다. 이제 광장정치를 끝장내야 한다. 증오를 거두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과 법치에 의한 통치’가 회복돼야 한다.

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생산적 경쟁을 해야 발전한다. 보수와 진보는 적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생 보완해줘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보수는 있지만 개혁이 부족하고, 진보는 아예 없다. 산업화-민주화 과정까지는 그런대로 진보가 존재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 진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좌파와 종북이 차지했다. 진보는 사라지고 진보를 가장한 종북좌파만 득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놈의 헌법”하며 헌법을 폄훼했던 노무현은 좌파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종북좌파는 ‘타도, 투쟁, 복수, 퇴진, 점령’ 등 듣기만 해도 섬뜩한 구호를 뿜어낸다. 헌법의 가치나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의 국가정체성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

문재인은 “거대한 촛불로 보수를 불태워 버리자” “국가 대청소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정통성-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보수가 불타면 안 된다. 그런데 뭉쳐도 모자랄 보수가 분열하고 있다. 세월호 선장처럼 자신만 살겠다는 ‘패주(敗走)의 정치’, 자당(自黨)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적대 세력(야당)에게 넘겨주는 ‘배덕(背德)의 정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정치’는 종식돼야 한다. 당의 혜택을 받아 대표와 원내대표의 특권을 누렸던 김무성과 유승민. 이들이야말로 보수를 분열시키고 있는 ‘가짜보수’다. 비박 후보가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했으면 비박은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 당내에서 ‘신보수 개혁’의 깃발을 들고 경쟁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책임 있는 자세다. 경선 불복은 정치인의 죽음이다.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함의는 특혜를 받는 지도층은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목숨을 버리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배려와 양보와 헌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국가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있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는 화랑과 지도층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책임과 의무의 정신이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도 독립 애국지사들과 건국의 선각자들, 그리고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들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역사의 동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온다. 침묵하는 보수는 역사를 만들 수 없고, 행동하는 보수만이 ‘역사의 반동(反動)’을 막을 수 있다. 미증유의 국가혼란을 종식하고 선진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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