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1. 부모와 함께 촛불집회에 나온듯한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어린이가 수첩(휴대폰인 것 같기도 함)에 적힌 글을 아무 표정 없이 읽어 내려갔다. 본인이 쓴 것인지 부모가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른 뺨치는 수준의 글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낭창하게 글을 읽던 이 어린이는 "박근혜는 퇴진하라!"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순간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 자기 판단력이 부족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이를 내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고 합리화하려는 어른들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2. 이 어린이의 말을 듣고 있던 방송인 김제동 씨는 어린이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지금 이 시간부로 8세가 되면, 아이들에게 대통령 투표권을 주자고 제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청중들은 더 큰 박수와 환호로 김 씨의 말에 동조했다.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김 씨는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반드시 교육감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술 더 떴다. 말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김 씨는 왜 가는 곳 마다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있을까? 투표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개그처럼 다루는 그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3.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서 한 고등학생이 연단에 올라가 "박근혜 파쇼정부를 타도하자"라고 외쳤다. '파쇼'가 무엇인줄이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질문에 학생은 "독재정부"라고 했다. 그럼 '독재정부'에 "대통령 물러가라"라고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보느냐고 다시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저씨 경찰이에요?"였다. 십대들은 파시즘은커녕, 이 땅에서의 독재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 무거운 주제 앞에서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는 학생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4. 한 칼럼리스트는 최순실 국정 농단에 침묵하고 있는 우리나라 스포츠 스타들을 나무랐다. 특히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은 사회적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의식이 없고 오직 '성공'에만 관심이 있다고 질타하며, 영혼이 없는 신체의 향연에서 벗어나려면 가수 이승환처럼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애국자’이고, 가지 않는 사람은 ‘매국노’란 말인가. 말 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침묵할 자유도 있는 법. 남의 정신세계를 함부로 재단하는 그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5. 일부 사회단체들은 촛불집회에서 이적행위로 수감된 이석기와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주장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는 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지 2년째를 맞아 “(통진당 해산이) 헌재와 청와대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떡하든 최순실 국정 농단 정국에 편승해보자는 속셈이 아닐 수 없다. 촛불집회가 이석기, 통진당 해산, 그리고 한상균 전 위원장의 구속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촛불집회의 본질은 파악하지 않고 집회의 현상만을 쫒아보려는 이들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6. 이번 촛불집회는 사실상 "좌파 386 또는 486 세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은 군사 독재 경험을 했고, 이른바 우익 정권을 퇴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대학에서 맑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실험했다. 그 결과 이들은 권위에 반하는 원한과 분노를 품기 시작했다. 좌파 이데올로기와 독선으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들은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그 어떤 일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촛불집회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 채 ‘군중심리’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고 있는 시민들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7. 촛불집회가 점점 신격화되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나오는 구호만이 최고의 선(善)이고 나머지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이 성립되고 있는 모양새다. 촛불집회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느니 광장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고 일부 언론들은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2008년 촛불집회의 불안정성을 경험한 바 있다. 광우병 선동에 대중들은 최소한의 이성을 촛불집회에 헌납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국회를 통한 대의정치도 부정하는 등 초헌법적 반 헌법적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작금의 광장 촛불집회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

촛불집회의 본질은 100만 명, 200만 명이 모였다는 게 아니다. 숫자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강남의 한 ‘아줌마’가 대통령의 비선으로 있으면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본질이다. 거기에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도 포함되어 있다. 순수한 의사표시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질이 일부 불순분자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회의 자유는 계속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신 차리자. 촛불집회를 정략적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도처에 깔려있음을 시민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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