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할 때마다 즐겁고 새롭고 어렵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영화 ‘연가시’를 비롯해 ‘숨바꼭질’, 드라마 ‘마마’, ‘달콤살벌 패밀리’ 등 다양한 작품으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는 배우 문정희가 영화 ‘판도라’를 통해 진한 모성애를 드러냈다. 특히 그는 많지 않은 촬영분량에도 불구하고 데뷔시절부터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박정우 감독의 부름에 응답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나타냈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향한 모성애와 가족애에 대한 감정을 온전히 그려낸 문정희의 연기 열정을 만나봤다.

원전이라는 한국사회의 판도라 상자를 연 영화 ‘판도라’가 입소문을 타며 재난영화로서 걸출한 성적을 이어가는 가운데 배우 문정희는 ‘연가시’에 이어 두 번째 재난영화인 ‘판도라’를 통해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그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일요서울]을 만나 최근 근황과 함께 개봉소감을 전했다.

영화 ‘카트’ 이후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는 그는 “원할 때 쉬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안 되더라”며 “개봉 시점에 사회 상황이 어수선해서 걱정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영화에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다”고 솔직함을 드러냈다.

문정희가 이번 작품을 선택하기까지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스스로 느낀 공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세슘이 검출된다고 해서 생선도, 물 건너온 음료도 안 먹고 음식물에 대해 조심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정부차원에서 그런 것들이 불투명하고 선진국이라는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우리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끌렸던 건 안전 불감증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됐다. 비단 원자력 사고뿐만 아니라 삼풍백화점 사고 등 이런 재해들의 실상은 인재다. 그런 인재에 대해 매뉴얼도 없고 안전에 대한 시스템이 없는 등 실제 무방비 상태라는 게 너무 놀라웠다”고 말했다.

문정희는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이 꼭 꼬집는 고발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그는 이번 작품에 기꺼이 출연한 많은 배우들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얻었다. 출연진 모두 평소 소화하던 분량에 상관없이 역할을 맡아서 힘을 모아 주신 것이 멋있었다면서 “저도 파트는 아쉽다. 조금 나오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특별히 없지만 그래도 일조할 수 있다는 것, 결국에는 다 모여서 원자력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유익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문정희는 “우리나라에 원전이 많이 있다. 에너지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을까. 또 그런 안전시스템들, 매뉴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얘기하고 싶었다”며 “그런 면에서 국민들에게 다가서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다”고 참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작을 바람을 가지고 시작한 작품이지만 개봉을 앞두고 요동치는 시국덕분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걱정을 키웠다.

그는 “영화를 시작할 때는 원전에 대한 부분들도 극화돼 있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전에 관한 정보들도 일본 자료를 참고했을 정도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면서도 “막상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지진 등의 사태가 수면위로 드러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할 것 같아 마음 한편에 걱정도 든다”고 염려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 대해 문정희는 “구조가 특이한 가족이다. 각각 사연이 있다. 원전 피폭 피해를 경험했지만 일부러 밝은 분위기에서 극을 시작했다”며 “특히 정혜(문정희 분)는 시어머니와 같은 과부로서의 동질감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피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부간의 갈등과 화해는 짧은 시간 속에서 극대화되는 엄마의 위대한 힘을 드러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더욱이 문정희는 “짧은 시간 안에 담아내기에 템포나 흐름이 쉽지 않았다”면서 “다행스럽게 ‘카트’ 때의 호흡이라고 할까 김영애 선생님이 워낙 잘 하시는 선배님이셔서 짧은 시간 감정표현도 다 계산했던 부분이고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아내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모정으로 화해하기까지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의 힘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꼈다”고 소회했다.

같이 호흡을 맞춘 신인배우 김주현에 대해서도 “처음 하는 긴 호흡작품인데 당차게 잘 해내는 게 기특했다”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항상 맞출려고 하는 게 콤비네이션”이라며 “예전에 비해 잘 진행이 됐고 재난 영화에 대한 여유가 있어서 ‘노하우가 생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문정희는 이번 작품의 진정한 공로자는 보조출연자임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박 감독과의 깊은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문정희는 박 감독의 연출 입봉작인 ‘바람의 전설(2004)’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판도라'까지 모두 네 번째 호흡을 맞춘 끈끈한 사이다.

그는 “다음에 제안을 받을 때는 재난은 아니길 바란다”고 언급하며 “감독님 코드를 좋아한다. 특히 재난 영화에 특화된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전했다.

이 같은 서로의 끈끈한 인연 덕분에 문정희는 만족스럽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재차 짧은 분량이 아쉬웠다면서도 “그것을 욕심낼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전이 가장 중심이 되는 것 같다. 기꺼이 하겠다고 했던 것은 원전에 대한 경각심에서 출발해 극 속 캐릭터들이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고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전작에서 감독님이 아쉬워했던 CG(컴퓨터 그래픽)도 잘 녹이신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고 설명했다.

다만 ‘판도라’를 비롯해 최근 한국영화들에서의 여자배역에 대해 여배우로서의 아쉬움을 전했다.

문정희는 “영화의 만듦새가 좋아질수록 여자 배역에 대한 짜임새가 아쉽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캐릭터로 만들 때 ‘그렇게 할 얘기가 없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배우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캐스팅이 돼야 하고 경쟁을 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불만입니다’라고 한다고 해결되지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더욱이 그는 “관련 콘텐츠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 뿐”이라며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여자배우들이 기능적인 것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좀 더 발전한 모습, 캐릭터로서 풍성함을 지난 역할로 잘 녹아들어 영화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정히 역시 기다리며 도전하고 있다며 “아쉬워도 냉정해야 한다. 다만 많은 관객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남자배우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앞으로 콘텐츠 개발이나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일에 직접 참여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처럼 연기를 통해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픈 열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운명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문정희는 “안하겠다고 해도 만나지는 것처럼 판도라는 운명같이 다가왔다. 앞으로도 그간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좋은 역할이 좋겠지만 그것은 오는 것”이라면서 “제가 가야하는 것은 배우로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시도에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고 남자 주도로 되는 영화에서도 여자 배역들이 존재하는 만큼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 또한 해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여배우로서의 소감을 묻자 막 느껴지지 않는 다는 그는 “옛날에는 조심스러웠다면 지금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요즘엔 일단 저질러 보고 후회가 들 때는 후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 추억이 된다는 생각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아까울 뿐”이라고 달라진 자신을 소개했다.

문정희는 “저한테 이뤄지는 것뿐만 아니라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막 해보고 싶은 게 요즘인 것 같다. 마흔이 되서 그런지는 모르겠고 아무래도 옛날하고 다른 깡이 생긴 것 같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특히 크고 작은 것을 계산하지 않고 양적인 것에 욕심이 난다며 “욕심이 안 없어진다. 연기는 할 때마다 즐겁고 새롭고 어렵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 같다”며 연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을 드러냈다.

이 같은 연기활동을 하는 데는 남편의 이해와 지원이 한몫했다. “제일 공감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 신랑이다. 때로는 냉철하게 평해 얄밉지만 되레 약이 된다. 저는 배우가 어떤 위치에 있거나 권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저 세상사는 사람일 뿐인데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느끼고 있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집중하는 게 제 몫인 것 같다. 작품을 만났을 때 그 면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역할과 작품에 맞게 설정할 수 있는 지성과 감각을 갖춘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특히 문정희는 “그게 배우가 아니라 인간 문정희로서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해 연기로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다음 행보에 대해 그는 “‘7년의 밤’은 이미 찍어놔서 2017년 정도 개봉할 것 같다”며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는 데 아직 결정사항은 아니다. 단지 기회가 되면 안할 수는 없다. 거절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역할에 대한 아쉬움이나 연기에 대한 목마름을 언제나 갖고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오면 거부 못하는 것도 저인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잘 살펴보고 결정하려고 한다”며 환한 미소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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