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보다 2등? 文-安 ‘동상이몽’ 속내 들여다보니…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개헌론에 이어 결선투표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헌법 개정 사안이냐, 법률 개정 사안이냐’의 법적 논쟁은 물론, ‘판 흔들기’를 위한 후발 주자들의 정치적 셈법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에 야권 내에선 결선투표제가 친문 세력과 비문 세력을 가르는 또 다른 기준점이 된 모양새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대다수의 야권 잠룡들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마지못해 ‘일단 찬성’했지만 속으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실정으로 관망된다. 

선두주자인 문 전 대표 입장에서는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결선투표제 도입이 반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추격조’인 후발 주자들은 막판 뒤집기가 가능한 결선투표제가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이에 정치권은 만약 결선투표 도입이 현실화된다면 중도와 보수를 끌어안을 수 있는 후보가 ‘확장성’이 부족한 문 전 대표를 상대로 ‘이변’을 연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확장성 부족’ 文, 결선제 도입 속으론 ‘결사반대’
- 정당성 확보, 명분 없는 단일화, 사표 방지책 될 것

정치권이 ‘룰 전쟁’에 빠진 모양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6일 야권 대선주자로 이뤄진 ‘8인 정치회의’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비박계의 탈당, 개헌 이슈 등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파장은 예상보다 더 컸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심 대표와의 회동에서 “여러 당이 존재하는 가운데 적어도 50%가 넘는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뽑아야 대한민국이 처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며 지난해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에 치르는 선거는 사상 최고의 네거티브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결선투표제가 시행된다면 네거티브 선거는 힘들게 된다”며 군소 후보의 난립과 합종연횡의 전략이 정책 실종이라는 속 빈 강정을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했다.

결선투표제(決選投票制)는 당선 조건으로 ‘일정한 득표율 이상을 획득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해당 조건에 충족한 후보가 없을 시, 득표수 순으로 상위 후보 소수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여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회투표제라고도 한다. 결선투표제를 통해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면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한 후보가 당선되기 때문에 정당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국가 가운데 프랑스·오스트리아·브라질·페루 등은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미국·대만·필리핀 등은 한 차례 선거의 최다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겉으론 ‘일단 찬성’ 속으론 ‘결사 반대’

이 같은 안 전 대표의 결선투표 도입 주장에 야권 비주류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이재명 시장은 “결선투표를 도입하는 것이 국민 의사가 대선에 제대로 반영되게 하는 정도”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개헌이 필요한지, 선거법 개정만으로 가능한지 논의해야 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야권 주류 측은 결선투표제 도입이 영 달갑지 않은 모양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는 어쩔 수 없이 ‘나도 찬성’이라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실제 도입되기라도 한다면 대권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한 속내를 숨기진 못하는 모습이다. 친문계 인사로 평가되는 민주당 백재현 의원이 “결선투표 도입 논란을 정치권에서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이 같은 문 전 대표의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문 전 대표 입장에선 대선을 불과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굳이 결선투표제 도입에 발을 담그며 판을 흔들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결선 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위와 2위를 놓고 한 번 더 투표를 하게 돼 선두주자보다는 후발주자에게 비교적 유리한 방식이다.

이는 결선투표에만 오른다면 후발주자라도 세력 집결 및 반대표 흡수를 통해 역전을 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상대가 지지층만큼이나 안티 세력도 많은 문 전 대표라면 반대표 흡수는 더욱 용이할 것이라고 정치권은 해석한다.

1대 1 구도, 예상 밖 결과 나올 수도…

예를 들어 안 전 대표가 문 전 대표와의 1대 1 구도에서 기존의 국민의당 지지층과 함께 문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높은 보수층의 표를 모은다면 친문계를 제외하고 중도 ‘확장성’이 부족한 문 전 대표는 또다시 골인 직전 고배를 마실 수도 있다.

게다가 결선투표제 도입은 야권 잠룡들로 하여금 선거 과정에서 시도되는 인위적 단일화를 거부할 명분도 챙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수정당은 그동안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따라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한 채 중도에 사퇴하는 일이 빈번했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안 전 대표는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세력으로부터 거센 단일화를 종용받았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에 진보진영에선 선거 때마다 반복된 ‘묻지마식 단일화’와 ‘사표 논쟁’의 근절, 나아가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결선 투표제 도입 당위성이 늘 제기돼 왔다.

이번 대선 역시 야권 잠룡 후보에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문 전 대표 측으로부터 거센 단일화 종용이 있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정치권은 말한다. 결선투표제는 문 전 대표의 이 같은 단일화 공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안인 셈이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과반 미만 득표로 탄생한 대통령의 정당성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결선투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상황도 이들에겐 호재다. 실제 87년 체제 이후 실시된 13대(1987) 대선을 비롯해 17대(2007) 대선까지 과반 이상을 득표한 후보는 없었다. 비록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51.6%를 득표했지만 이는 문 전 대표와의 양자 구도 탓에 범야권 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대거사퇴했기 때문이다.

설사 결선에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잠룡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드러난 자신의 지분을 통해 ‘캐스팅 보트’를 손에 쥘 수도 있다. 결국 결선투표에만 오른다면 누구와 붙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에서 문 전 대표를 제외한 야권 잠룡들이 2위를 목표로 결선투표제를 주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 전 대표를 제외한 야권은 일제히 ‘문재인 때리기’에 나섰다. 지난 26일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의 지난 대선공약이었던 개헌과 결선투표제를 안 된다고 한다”면서 “개헌도 안 되고 결선투표제도 안 된다는 문 전 대표가 도대체 뭘 바꾸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역시 같은 날 “(결선투표제 도입에) 난색을 표하는 것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개헌에 찬성했고, 문 전 대표 자신도 찬성했는데 왜 지금은 반대하는가”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또 다른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겉으로는 찬성하는 척하면서 백재현 의원을 시켜 국회 입법 조사처에 자문을 구하게 하고, 입법 조사처에서 유추해석에 입각해 개헌 필요성이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어 놓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다자 구도 고집하다가는 87년과 같은 결과 나올 것”

실제로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리자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했던 바있다.  그러므로 현재 정략적인 이유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만약 문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를 끝까지 반대하고 대선 다자 구도를 고집한다면 김영삼-김대중 후보로 야권표가 분열되면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1987년 대선과 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며 문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 도입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만 여당인 새누리당이 현실적으로 결선투표제를 논의할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점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이 집단 탈당을 감행해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공식 선언하는 등 보수 진영이 내홍을 겪는 상황이어서 결선투표제 논의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정부터 안정시켜 놓고 대통령 뽑을 생각을 해야지 지금 이 상황에서 룰 경쟁을 벌이는 것은 국민에게 도리가 아니다”라며 “국민이 불안해하고 정치가 지탄받고 있는데 대권 욕심 때문에 룰 갖고 싸우면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결선투표 도입을 위해 개헌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6일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는 참고사항일 뿐 선거방법은 법률로 정하면 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헌법 제67조 2항은 대통령 선거에 대해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항은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선투표제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헌법 제67조 2항이 ‘상대 다수대표제’ 원칙을 전제로 한 만큼, 개헌 없이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결선투표제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헌법 제67조 5항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을 들어 절대다수대표제를 선택할지, 아니면 상대다수대표제를 선택할지는 하위법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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