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투자로 속여 범죄수익금만 7억5천만 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초기 창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 지원금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양인철)는 엔젤투자매칭펀드 자금 수억 원을 허위로 지원받아 가로챈 벤처기업 대표 한모(40)씨 등 15명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12월 25일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규정 강화로 골머리를 앓던 선의의 엔젤투자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한 엔젤투자자는 “엔젤투자자 검증 강화를 담은 변경 규정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면서 엔젤투자자들 사이에 매칭펀드 신청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고, 절차적 까다로움뿐만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는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일까지 겹쳐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벤처기업 불법 지원 첩보 많아”…대대적 수사 진행
 관련자 19명 적발, 4명 구속…자금 회수 10%가량 미미

 

‘엔젤투자매칭펀드’는 벤처투자의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8개 공공기관의 출자로 조성됐다.

제 3의 외부투자자, 즉 엔젤투자자가 초기 창업기업에 투자를 하면 동시에 정부가 같은 규모에서 많게는 2배에 이르는 자금을 펀드를 통해 지원하는 제도로,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위탁 운용·관리되고 있다.

2011년 11월부터 12월 현재까지 360개 업체에 펀드자금 583억 원을 지급됐다. 그야말로 창업투자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지원이다.
그런데 이를 악용한 사례가 등장해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동종업계끼리도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선한 의도 엔젤투자까지
‘도둑’취급 불편해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국가재정·조세범죄 중점수사팀(팀장 형사5부장 양인철)은 외부투자를 유치한 것처럼 가장해 한국벤처투자㈜로부터 그 투자금에 상응하는 엔젤투자매칭펀드 자금 합계 29억 원을 편취한 벤처기업 대표들과 범행 방법을 알려주고 대가를 수수한 브로커 등 총 19명(4명구속)을 인지해 기소하고 범죄수익 7억5000만 원을 환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 등 벤처 기업가들은 엔젤투자자 모임인 ‘엔젤클럽’에서 투자를 받을 경우 엔젤투자매칭펀드 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이들은 미리 섭외한 가짜 투자자를 엔젤투자자로 꾸며 ‘엔젤클럽’에 가입시킨 뒤, 이들에게 차명 계좌로 돈을 건네 다시 벤처기업에 투자하도록 하는 수법을 썼다.

구체적으로 A씨 등은 2013년 통장을 위조해 엔젤투자금이 입금된 것처럼 속여 2억 원을 지원받고 다른 사람 명의로 투자금을 돌려 3억 원을 지원받는 등 엔젤투자매칭펀드 자금 5억 원을 부당하게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B씨 등은 2012년 9월부터 창업 초기 기업 투자자 집단인 엔젤클럽을 운영하면서 벤처업체 대표들과의 사전 공모를 통해 엔젤투자매칭펀드 자금을 불법 지원받거나, 허위 투자를 돕는 대가로 금품 또는 주식을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 등은 2012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엔젤투자가 이뤄진 것처럼 속여 모두 21억 원 규모의 공적 자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B씨 등이 관여한 엔젤클럽 3곳에서 이뤄졌던 투자의 약 40%는 엔젤투자매칭펀드 자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검찰청 관계자는 “국가재정·조세범죄 중점수사팀은 일부 벤처기업이 엔젤투자 유치를 가장해 위 펀드 자금을 불법적으로 교부받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해 7월경부터 수사에 착수, 관련자들을 구속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수사를 통해 벤처기업 대표들이 브로커와 결탁해 공적자금을 불법적으로 가로챈 비리를 확인하고 이를 엄단했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국가재정 비리에 대하여 계속 엄정하게 수사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악용사례 막으려 노력,
결국엔…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진 직후 창업벤처기업인들의 푸념도 늘어났다.
지난 6월부터 투자금 출처 공개는 물론 매칭펀드 신청자격 강화, 교육의무화 등 대폭 강화된 관련 규정의 시행으로 힘든 상황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곳간이 더 견고해지고 이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불가피해졌다.

한 벤처기업인은 “최순실 사태로 창업이란 소리만 들려도 예산이 깎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금마저 사기 치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허탈하다”며 “일부 불미스러운 일로 창업벤처인 모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 도래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중소기업청도 정부자금 악용을 막기 위한 방안을 더욱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청 벤처투자 관계자는 “제도를 악용하는 블랙엔젤투자자가 정부자금을 빼돌리는 사건이 수차례 일어났다”며 “불미스러운 사건이 또 발생하면 엔젤투자 세제 혜택 등이 축소될 우려가 있어 이를 막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엔젤투자자 심정은 이해하지만 금융기관 계좌거래내역조회서 제출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엔젤투자자가 엔젤투자매칭펀드 투자금을 신청할 때 투자자 명의로 된 금융기관 계좌거래 내역조회서를 한국벤처투자에 제출하는 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규정 변경 전까지는 피투자 기업 법인 통장 입출금 내역만 살폈지만, 현재는 투자받는 기업과 엔젤투자자 자금 흐름을 모두 조사한다.

이 외에도 ▲엔젤클럽 가입 후 180일이 지나야 공동투자 건에 매칭펀드 신청 자격 부여 ▲지역관리기관이 추천한 엔젤투자자도 투자교육 의무적 이수 ▲재창업 기업 조건 중 폐업 후 5년 이내 재창업 기업 설립 조건 등이 포함됐다.
일부 엔젤투자자들의 매칭펀드 악용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반응이다.

한편 검찰은 앞으로도 국민의 실생활과 국가재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국가재정·보조금 비리’를 중점 수사해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국가의 재정·보조금이 꼭 필요한 곳에 지급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관련 비리를 수사해 나갈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소위 고학력 엘리트로 인식되는 벤처 기업가들의 도덕적 해이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벤처업계의 숨은 비리를 확인해 이를 엄단한 것으로, 법을 준수하는 건실한 청년사업가들의 창업의지를 저해시키는 벤처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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