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에 성공하면 제조업 성장 주춤한 한국경제에 돌파구 돼
한국, KTX 운용 통해 쌓은 자체 기술로 중·일 등 강자와 대결

나지브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와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나라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해 12월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의 총리 관저에서 콸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고속철도(HSR) 건설 협정을 맺었다. 이로써 동남아시아 최초의 국가 간 고속철도 사업이 본격화됐다. HSR는 총 350㎞ 구간으로 말레이시아 구간이 335㎞, 싱가포르 구간이 15㎞다. 양국은 HSR를 2026년 12월 말까지 개통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데, 2021년 중 착공하면 예정대로 운행을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전문가들이 HSR 건설이 순조로울 것으로 낙관하는 데에는 HSR 건설 과정에 대만이나 일본이 겪었던 것처럼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 재해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근거다. 최고 속도가 시속 350㎞인 HSR가 완공되면 현재 일반 열차로 6시간 이상 걸리는 두 도시 간 여행 시간이 90분으로 단축된다. 전체 공사구간 가운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의 조호르 해협 구간은 해수면으로부터 25m 높이의 교량이 건설된다. 애초 구상 단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처럼 해저 터널을 뚫는 계획이 제시된 바 있다. 복선으로 건설될 HSR의 종착역은 말레이시아 외곽의 뉴타운 반다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주롱 이스트에 각각 설치된다. 또 말레이시아 구간에 푸트라자야, 세렘반, 아이르 커로, 무아르, 바투 파핫, 이스칸다 푸트리의 6개 역이 들어선다.

HSR에 한국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제 고속철도 건설시장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검증받을 계기로 HSR를 주시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HSR 수주에 성공한다면 고속철도 기술 수출이 제조업 성장세가 주춤한 한국 경제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어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이 점을 외신이 먼저 주목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통적인 굴뚝산업의 성장 정체를 상쇄할 새 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한국이 2017년 4분기로 입찰 시기가 잡혀 있는 HSR 사업에 주목하면서 일본과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 고속철도 시장을 넘보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1세대 고속열차에 프랑스 시스템을 채택한 한국은 경쟁이 극심한 고속철도 시장에서 후발주자이지만 자체적으로 구축한 고속철도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수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국은 2010년 국산 고속열차를 내놓았으며 이제 고속열차 기술에서 프랑스·독일·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한국은 150억 달러 규모의 HSR 공사 계약을 따내려 기술이전 약속을 제시하는 등 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박진호 국토교통부 철도정책과 서기관은 “그것은 제조 노하우와 최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고성장 분야”라며 한국은 “비록 금융 제공 면에서 그들 나라에 뒤지고 있지만 이제 기술에서 일본 및 중국과 대등하다”고 FT에 말했다. 박 서기관은 한국이 “해외 시장 업적이 없지만, 이들 신흥국에 필요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매력적인 기술 이전 조건을 제시해 그것을 벌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FT가 인용한 분석가들은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더 나은 조건으로 기술을 이전할 수 있는 반면, 일본과 중국은 더 나은 금융 제공 패키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FT가 보기에 한국의 고속철도인 KTX는 요금이 싼데도 불구하고 매우 수익성이 높다. 최고 시속 300km를 자랑하는 KTX는 하루 승객 17만6000명을 유치하며 2015년 매출 2조원에 약 700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해외에서 고속철도 공사를 따낸 경험이 없다. 그렇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동남아와 라틴아메리카 신흥국들을 고속철도 사업 진출 대상국으로 꼽고 있다. 미국·터키·브라질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국 유일의 철도차량 제조업체 현대로템은 전통적인 열차와 지하철 객차를 36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해외 수주는 지난 2년에 걸쳐 4배 늘어 약 2조 원에 이르렀다. HSR 공사 수주를 목표로 하는 한국 측 컨소시엄에는 현대로템과 한국철도공사가 포함돼 있다. FT는 한국이 이 고속철 수주전에서 일본, 중국, 유럽 경쟁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리라 예상되며, 분석가들은 한국의 강점과 국제입찰에서의 승리 확률에 대해 정부보다 덜 낙관적이라고 전했다.

세계 최대 고속철도망을 갖춘 중국은 공격적인 응찰자가 되었으며 많은 국가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땄다. 중국이 120억 달러짜리 ‘동해안 철도’를 포함해 대규모 말레이시아 정부 프로젝트들에 엄청나게 투자한 상태에서 중국은 다가올 HSR 공사 입찰과 관련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속열차를 50년 넘게 운행해오고 있는 일본 또한 자국의 신칸센 기술 수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오는 2020년까지 인프라 수출을 3배 많은 302조 엔(2610억 달러)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캐나다 봄바르디에와 프랑스 알스톰, 그리고 독일의 지멘스도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고속철도 사업을 주시하고 있다고 FT는 소개했다. 이종윤 한국철도시설공단 해외사업본부 해외사업3처 TF 처장은 HSR 공사 수주 노력과 관련해 “우리는 그 거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바라건대 우리가 하는 최초의 해외 고속열차 사업이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것은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고 FT에 말했다. 사공명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중국은 원가 측면에서 강점이 있으며 일본은 고급 기술을 갖고 있다”며 “한국은 그 중간에서 이웃 나라들의 방대한 융자 제공에 대적할 방안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FT에 말했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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