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은 눈만 뜨면 ‘개헌’ 타령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촛불시위로 몰락 위기에 처하자 개헌만이 최순실 국정농단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1987년 제정된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은 수명을 다 했다고 한다.
특히 87년 헌법은 대통령 간선제를 5년 단임 직전세로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권력구조상의 문제를 수반하게 되었다고 한다. 5년 단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믿고 야당 위에 군림하고 야당은 그에 맞서 사사건건 대통령에게 맞서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여야관계는 극한적으로 대립돼 국정을 마비시켰다고 비판한다. 국회는 ‘동물 국회’ 아니면 ‘식물 국회’로 전락될 수 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정치권은 모든 정치문제의 적폐를 87 헌법에 떠넘긴다. 심지어 최순실 국정농단도 87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 탓이라고 몰아댄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헌법 탓만 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4류 정치’부터 먼저 반성하고 바로 서야 한다. 개헌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개헌을 열 번 한다 해도 정치권의 ‘4류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동물 국회’ ‘식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음을 간과해선 아니 된다.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한국의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하였다. 그 후 2류 경제는 1류로 우뚝 섰다. 3류 행정도 거의 1류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4류 정치’만은 아직도 4류 그대로다. 20여년 전 보다 후퇴한 감도 없지 않다. ‘4류 정치’를 그대로 둔 채 헌법만 뜯어고친다고 해서 갑자기 대한민국 정치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지는 않는다. 정치 선진화를 위해선 헌법 개정에 앞서 ‘4류 정치’ 의식이 먼저 선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권은 개헌 명분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를 내세운다. 하지만 미국의 헌법도 대통령 중심제이며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은 1789년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이래 한 번도 ‘동물 국회’ ‘식물 국회’로 전락된 적 없다. 그 이유는 미국 정치권의 정치문화의식이 4류가 아니고 1류 라는 데 기인한다.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도 정치권의 정치의식이 1류로 바로 섰었다면 미국처럼 멋진 의회정치를 구현하고도 남았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헌법 개정 보다는 한국의 ‘4류 정치’의식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미국은 건국 이래 228년 동안 헌법을 부분 수정했을 뿐 전체를 개정한 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건국 66년밖에 안 되었는데도 9 차례나 개헌 했다. 그러나 ‘4류 정치’는 그대로다. 개헌 보다 후진적 정치의식 개혁이 더 시급함을 실증한다.
‘4류 정치’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설사 헌법을 내각책임제로 개정한다 해도 새 총리는 ‘제왕적 대통령’처럼 야당을 무시하게 되고 야당은 그에 맞서서 국정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탈리아와 같이 총리를 1년에 몇 번씩 갈아치우는 등 국정 혼란을 빚어낼 수도 있다. 그 밖에 4년 대통령 중임제로 개헌한다 해도 새 대통령은 이승만처럼 독재로 치달을 수도 있다.
우리의 후진적 ‘4류 정치’는 상대편을 타협과 협치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 극한 대결로 간다. ‘4류 정치’는 정치권력을 개인 사익을 위해 사유화(私有化)하며 사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한다. 뿐만 아니라 ‘4류 정치’속에선 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책무가 장외투쟁과 극한투쟁에 있다고 착각 한다. 여기에 한국 정치는 의회정치의 기본인 협치를 거부하고 망국적 극한 대결로 마비될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은 개헌 타령만 할 게 아니라 먼저 의회정치의 독(毒)인 ‘4류 정치’의식부터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개헌보다 더 시급한 시대적 과제는 ‘4류 정치’ 청산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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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석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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