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4500억 원 손실...삼성 합병 뇌물 의혹 정조준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구치소에 수감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은 국민연금이 삼성의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 전 이사장을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 구속 1호다.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출국금지 조치됐다. 일각에선 문 전 이사장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축내 삼성을 도운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벌써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각종 소송도 진행 중이다.

참여연대 “삼성, 3조 원대 부당이득 몰수·추징” 특검에 촉구
국민 노후자금 사적 용도 활용 비난 이어져, 손실액 어떡해

문 전 이사장은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미심쩍은 찬성 의결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합병 결정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각각 5만5000원, 16만3000원이었으나 합병 후 삼성물산 주가는 12만5000원으로 떨어졌다. 덩달아 국민연금의 지분가치도 2조300억 원에서 1조5800억 원으로 줄었다. 국민의 노후자금이 4500억 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문 전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국민연금 측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 전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7일 특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될 때까지만 해도 국민연금에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도 (윗선의)어떤 외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한 관계자들로부터 당시 보건복지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이 잇달아 나오자 혐의를 인정했다. 최근 들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부정청탁 드러날까
檢 예의주시

이에 따라 특검은 삼성 수뇌부의 소환조사에서 삼성이 박 대통령에게 국민연금의 합병을 지지해달라는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 일가에 지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부회장의 소환조사 여부도 관심사다.

삼성은 최 씨의 사금고로 지목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기업 중 최대인 204억 원을 출연했다. 또 최 씨 모녀의 회사인 독일 현지 법인 코레스포츠와 220억 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이 가운데 35억 원을 송금했으며, 최 씨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하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 원을 후원했다.

그동안 삼성 측은 최 씨에 대한 지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특검팀은 이 과정에서 대가성이 드러날 경우 최 씨 등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잎서 김광수(국민의당·전주갑)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는 지난해 12월 30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의 노후자금과 같은 국민연금을 ‘삼성의 사금고’로 전락시킨 문 이사장을 즉각 해임할 것”을 정부에 강력 촉구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은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입은 반면 삼성 이재용 일가는 7400억 원대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며 “문 이사장과 동조한 관계자들도 함께 책임져야한다”며 연대 책임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혜를 누린 삼성은 국정 농단 사건의 주역인 최순실 모녀에게 수백억 원의 대가를 치른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참여연대도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통령이 가진 공권력을 매수해 국민연금공단의 손해를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지위 등을 비춰볼 때 사실관계 조작도 가능하다며 혐의가 충분하다면 구속 수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총수일가가 뇌물공여행위로 얻은 이익 액이 3조에 이르고 있고 합병으로 얻은 이익을 뇌물죄에 따른 범죄 수익으로 보고 몰수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관련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할 예정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 정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입자 2179만 명의
안전한 노후 어떡해

한편 국민연금은 2016년 10월 말 기준 기금 규모가 546조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기관투자가다. 기관투자가는 수익률로 운용 성과를 평가받는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처음 생긴 이래 국민연금의 누적 운용 수익금은 250조 원으로 연평균 수익률은 5.7% 수준이다.

이 돈을 굴려 가입자 2179만 명의 안전한 노후를 준비하는 게 국민연금의 역할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투자는 국민의 노후가 아닌 윗선의 입김에 좌지우지됐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은 “국민 노후를 위해 마련된 국민연금이 불합리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약 4900억 원의 손실을 봤다”면서 “결국 국민연금으로 삼성의 경영권 편법 승계를 도와주고 정유라의 말과 최순실의 호텔을 사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기금 운영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은 “기금운용위원회 안에 주주권행사위원회를 설치해 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주권 행사를 위한 기준과 방법, 절차, 사전 승인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위원회가 공시하는 주주권 행사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하도록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단은 총 3018건의 의결권 관련 안 건 중 783건(배당, 정관변경, 임원 선임 및 해임 등)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의결권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친 안건은 전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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