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황장엽’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해 8월 탈북 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의 대외 활동이 인상적이다. 국내 입국 후 대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그가 침묵을 깨고 국회의원, 언론과의 만남을 통해 북한을 향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1997년 국내로 망명한 황장엽 비서를 보는 듯하다. 당시 황 비서는 북한의 노동당 비서,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지낸 최고위급 인사였다. 그가 북한에 비판적인 발언과 활동을 시작하자 북한은 황 비서에 대해 무차별적 비난을 퍼부었다. 태 전 공사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북한의 핵 문제를 비롯해 김정은의 가족사 등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던 정보들을 쏟아냈다. [일요서울]에서는 태 전 공사의 발언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알아봤다.

북한 핵무기 개발 의도·전략·기술력 등에 대해 작심 발언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외 활동을 하겠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지난해 12월 19일이다. 당시 태 전 공사는 국가정보원 입회하에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이 간담회에서 태 전 공사는 “김정은 한 사람만 어떻게 하면 무조건 통일이 된다” “걱정되는 것은 엘리트들이 정변이 일어나면 중국으로 갈까 두렵다” 등의 솔직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동안 탈북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고 황장엽 비서를 제외하고는 태 전 공사처럼 북한 실정에 밝은 고위급은 많지 않았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태 전 공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핵 전쟁 일어나면
 구석기로 돌아갈 것“

비공개 간담회 이후 같은 달 27일 태영호 전 대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태 전 공사는 작심한 듯 북한과 관련된 발언을 쏟아냈다. 대부분 북한의 핵에 관한 이야기였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지난 5월 7차 당대회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교란기를 이용해 2017년까지 핵 개발을 완성한다는 정책을 채택하며 핵 질주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는 세계의 평화와 직결되는 지구촌의 관심사다. 많은 국가들이 북한 핵무기 개발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태 전 공사는 이날 북한의 핵 개발 완성 시기를 2017년으로 특정했다. 

그의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주로에 들어섰다”며 사실상 북한이 핵 개발 완료를 눈앞가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정은 손에 핵무기 쥐어지면 우리는 핵 인질이 될 것이며, 핵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로 돌아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태 전 공사는 그동안 우리가 짐작하고 추측했던 북한의 핵에 관한 정보들을 속 시원히 털어놨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안보는 큰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당장 북한이 핵을 쏘아 올리지는 않겠지만 냉정하게 우리의 안보 능력과 대처 능력을 점검해 봐야 한다. 사드 배치 문제 예외가 아니다. 

핵 경제 병진노선은
세계와 주민 기만책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의 핵 경제 병진노선에 대해서도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경제는 세계와 주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은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7차 대회 이후 김정은은 핵 개발을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규정했다”며 “북한은 한국 대통령 선거, 미국 선거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년부터 2017년 말까지를 가장 적기로, 각국의 정치적 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조치를 못 할 거라는 타산이 깔렸다"고 풀이했다. 

태 전 공사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각각 대통령 선거와 새 정권 인수과정을 거치게 되면 북한의 핵 개발 감시와 제재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대북정책, 사드배치 등의 사안에 대한 의견 차가 너무 커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태 전 공사의 말대로 북한의 핵 개발이 완성 단계에 와 있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밖에 없다. 대화정책보다는 제재정책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고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도 대북정책은 후보들 간에 큰 이슈가 될 확률이 높다. 지난 한 해 동안 큰 이슈가 됐던 사드배치 문제 또한 차기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수 있어 자칫 안보 공백이 올 수도 있다.

북한, 한·미 협상서 
우위 차지하려 핵 개발

태영호 전 공사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이유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빨리 핵 개발을 완성해서 새로 집권한 한·미 정부와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의도”라며 “다시 말해 한미 정부의 ‘선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새로 집권하는 한미 정부와 핵 동결, 제재 해제, 한미 합동훈련 중단 등의 요구 사항을 내세우려는 전략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미국정부는 태 전 공사의 말대로 ‘선 비핵화 후 대화’ 전력을 펼쳐왔다. 이를 위해 강력한 경제 제재조치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 개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태 전 공사의 말처럼 ‘핵무기 개발’만이 우리나라, 미국 등과의 협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떠한 유화책을 내놔도 북한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 대선 후보들의 내놓을 대북정책 및 안보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태 전 공사는 “한국에서 북한 주민이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되고,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외 활동을 하겠다”며 공식석상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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