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지만 의미 있게’ 변화·혁신 강조

최소 임원 참여, 가장 간소하게 진행
현 시국 위기로 인식, 혁신 도약 강조

[일요서울 | 남동희]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 국내 소비 침체 및 글로벌 저성장 및 경쟁 심화, 미국 트럼프체제의 신보호무역주의 대비,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 등 어지러운 정국 속에 재계는 정유년(丁酉年)을 맞았다.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건물. <뉴시스>

국내 10대기업 수장들은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된 시무식에서 국내외 악재에 대비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되자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경기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2017년 시무식을 가졌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사장단 및 임직원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전 해까지 계열사를 돌아다니며 시무식에 참석했지만 올해는 불참했다.

이날 시무식에서 권 부회장은 “지난해 치른 값비싼 경험을 교훈삼아 올해 완벽한 쇄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제품 경쟁력에서 품질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품질 면에서는 사소한 문제도 그냥 넘어가선 안 될 것”을 말했다.

권 부회장은 철저한 반성과 함께 미래 대책도 주문했다. 그는 경쟁 기업들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신 기술 방면 과감한 투자를 언급하며 “빈틈없는 준비로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사업 고도화를 이뤄 경쟁사와의 격차를 확대할 것”을 당부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 2일 서울 양재 본사에서 시무식을 가졌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시무식에는 불참하고 내부 통신망에 신년인사글을 게재했다.
시무식에서 정 회장을 대신한 윤여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신모델로 시장 침체 돌파구 마련’ ‘미래 자동차 기술력 강화’ 등을 올해 강력히 추진할 것을 부탁했다. 특히 윤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2017년은 현대 창립 50주년, ‘제2의 도약의 해’임을 강조했다.

정 회장 역시 통신망에 올린 신년사에서 회사가 매년 제시해 온 목표치 중 가장 높은 글로벌 판매 목표인 825만대를 요구하며 힘찬 도약을 강조했다.

SK그룹은 변화를 강조했다. SK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주도하에 같은 날 오전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주요 관계사 CEO와 임원 500여 명이 참석한 신년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딥 체인지(깊은 변화)’를 강조하며 경영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 회장은 이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패기로 무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SK 본사 건물. <일요서울 정대웅 기자>

삼성, 위기도 우리 몫 현대차, 최대목표 설정

LG그룹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 창업정신을 되새길 것을 다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각 계열사 CEO 및 경영진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새해모임을 가졌다.

구 회장은 “LG 창립 70년을 맞는 올해 창업정신 되새길 것”을 주문했다. 이어 구 회장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잡고 위기를 넘어 영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구 회장은 “정도경영을 통해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될 것”을 강조했다.

올해 내내 검찰 수사를 받은 롯데는 준법기업으로의 도약을 강조하며 간소한 시무식을 진행했다. 지난 2일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대회의실에서 주요 간부만 참석한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 창립 50주년을 맞아 존경받는 준법 기업이 될 것을 요구했다.

신 회장은 “준법경영위원회 등 도덕성 확보와 준법 경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을 더욱 노력하자”며 “임직원 개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자율적 행동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화그룹은 한화방산계열사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애국시무식’과 함께 서울 장교동 본사에서 정식 시무식도 진행했다.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정식 시무식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사업 발굴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밖에서 불어오는 위기의 바람을 우리가 더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소프트파워 혁명의 시대에 대비해 10년 뒤의 신기술, 신사업, 신시장을 개척하자”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신년사는 전국 각 계열사 사무실과 사업장에서도 사내방송을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GS그룹의 시무식도 지난해에 비해 간소한 규모로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열렸다. GS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시무식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비장함이 드러났다. 허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신사업 발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허 회장은 이를 위해 날카로운 통찰력과, 유연한 사고, 강력한 실행력 등 세 가지를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어 허 회장은 ‘남이 한 번에 성공할 때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을 하면 나는 천 번을 하겠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고어를 인용하며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과감해져야 함을 강조했다.

SK, 딥 체인지 요구 롯데, 준법기업 변화

한진그룹도 같은 날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시무식을 가졌다. 특히 시무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연말 두정물산 자제 임 씨의 기내난동을 수습한 직원들에게 표창을 수여하며 이번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안전저해행위는 단호하게 대처해 달라”며 “서비스는 충분한 경험과 반복훈련을 통해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 회장은 항공여객산업에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한 사람이 더 많은 승객의 불편을 초래한다면 이를 서비스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CJ그룹은 간단한 내부차원의 시무식만 진행하고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신년사로 시무식을 대체했다. 손 회장은 신년사에서 자체성장과 적극적M&A를 강조했다.

손 회장은 “적극적인 M&A를 통해 각 계열사의 주력 사업에 대한 성장 발판을 공고히 구축할 것”이라 말했다. 또 손 회장은 문화와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포스코는 지난 2일 경북 포항 본사 대회의장에서 시무식을 진행했다. 시무식에 참가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올해는 세계 최고의 철강 수익력을 공고히 하자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권 회장은 “혁신포스코(IP) 2.0에서 계획한 구조조정을 완성함과 동시에 미래 성장기반을 다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 회장은 ‘마부정제(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를 명심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다음 50년의 도약을 준비하자고 덧붙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정세 악화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지 못한 기업들이 대 부분이었다”며 “주요 기업들의 신년사와 시무식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기본·본업으로의 회귀 등을 다짐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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