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국제금융의 대가 베리 아이켄그린의 ‘황금족쇄'라는 종전에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각도에서 ‘대공황’의 요인을 심도있게 짚어줬다. 바로 1차대전 이전, 세계경제를 뒷받침했던 통화체제인 ‘금본위제’가 대공황을 일으켰던 주요 원인이라 말한다.

또 1차 대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에서 발생했던 경제문제의 불안정한 요소들은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필연적 결과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대공황의 요인을 미국의 주식시장 폭락에서만 찾았지만 저자는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금본위제'로 대공황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저자는 금본위제는 세계적 범위 고정환율제가 정책적으로 손발을 죄는 족쇄로 작용해 1929년 경제불황이 대공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계속되는 침체로부터 회복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 확장적 경제 정책과 국제적 협력 및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세계사적 관점으로 ‘대공황' 역사를 다시 쓰는 저자는 1차 대전 이전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는 통화체제인 금본위제의 문제점을 되짚어 책에서 대공황을 발생, 증폭시킨 과정을 생생히 그려냈다.

저자는 “1930년대에 금본위제 포기로 가능해진 환율 절하가 금본위제 이탈 국가들의 상황을 개선시키지도 못한 채 남은 국가들의 불황만 악화시켰다는 일반적 인식은 실제 증거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금본위제에서 이탈한 나라들에서 물가는 안정되었고 산출, 고용, 투자, 수출은 금 평가를 고수한 나라들보다 더 신속히 회복했다. 이는 통화 절하 덕분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확정적 조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금 태환을 방어하기 위해 국내 신용을 축소할 필요가 더 이상 없었고, 더 이상 공공 지출을 줄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은 느리게 진행됐는데, 이는 통화 절하 자체가 아니라 더 확장적인 정책을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중과 정책 결정자들 모두에게 금본위제의 포기가 인플레이션의 위협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금본위제의 소멸이 대공황에서 회복하는 전제조건이었음을 명시했다.

또 저자는 “1차 대전 이전의 국제통화체제는 런던의 헤게모니적 지배체제가 아니라 선도적 국제 금융 중심지인 런던과 라이벌인 파리, 베를린이 함께 이끄는 ‘분산된 다국 체제’였다. 평온한 시기에는 잉글랜드은행이 국제적 최종 대부자 기능을 하면서 국제 통화체제를 이끌었지만, 1890년과 1907년처럼 세계 신용 상황이 심하게 위축된 시기에는,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들이 명시적이고 의식적인 협력을 함으로써 위기를 막았다. 어음을 할인하거나 금을 빌려주는 식으로 다른 금본위제 국가의 자원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잉글랜드은행이 국제적 최종 대부자가 아니라 국제적 최종 차입자가 되어 프랑스, 독일 등의 지원에 의존했다"고 말하며 전전 금본위제의 위태로운 시기마다 국제 협력이 위기를 막았음을 명시했다.

저자 배리 아이켄그린은 <포린폴리시>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명’에 선정된 바 있으며 한국은행의 자문 교수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글로벌라이징 캐피털>, <달러 제국의 몰락>, <글로벌 불균형>등이 있으며, 현재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포린어페어스>, <신디케이트프로젝트>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김정아 기자  jakk364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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