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조선 세종 8년, 조말생이 뇌물 780관을 수수한 혐의로 ‘뇌물 80관 이상은 교형’이라는 법정형대로 사형(死刑)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세종은 그가 인재(人才)라는 이유로 사형 대신 유형(流刑)을 선고하고 장물 780관을 몰수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2년 후 조말생은 세종의 전격적 사면으로 유형에서 풀려났다. 직첩도 돌려받는다. 이에 반대하는 신하들의 상소를 세종은 권도(權道)로 꺾었다. 기세등등한 조말생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뇌물사건의 재조사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세종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를 두고 어떤 검사는 세종을 실리적 법치주의자라고 평했다.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실리를 추구하는 한편 조말생의 죄 없음도 끝내 인정하지 않은 법치주의자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인식 WBC 감독이 원정 도박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오승환을 마침내 대표 팀에 합류시켰다. 한국 야구를 구할 인재이기 때문이란다. 반대하는 여론이 빗발치는데도 김 감독은 일종의 권도(權道)를 써서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팀에서 감독은 왕이다.

조말생은 다행히 구제된 후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세종의 면을 세워주었다. 세종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사가(史家)들은 그래서 세종을 ‘지인지감 하나는 탁월했던 왕’이라고 평가한다.

오승환은 어떨까? 과연 김 감독의 부응대로 WBC에서 맹활약할 수 있을까? 김 감독의 면을 세워줄 수 있을까? 김 감독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까? 그래서 훗날 야구인들이 김 감독을 ‘지인지감 하나는 탁월했던 감독’이라고 평가할까?

왕조시대 때야 권도(權道)라는 게 있어서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지금은 음주운전하고, 도박하고, 성적(性的) 물의를 일으켜도 노래 잘 하고 연기만 잘 하면 용서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음주운전하고, 도박하고, 승부조작하고, 성적(性的) 물의를 일으켜도 야구만 잘 하면 용서가 되는 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김 감독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장성훈 편집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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