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지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 무명 10여 년 끝에 첫 스크린 주연을 꿰찬 배우 한성천의 이미지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소시민’의 주인공 ‘구재필’은 피곤한 나날이지만 늘 성실히 살려는 평범한 소시민(小市民)이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보내는 목숨 건 출근길을 그려냈다. 영화는 가장 평범한 서민의 애환을 담아 공감과 위로, 나아가 현대 사회를 향해 예리한 비판까지 선사한다. 주인공 ‘한성천’을 [일요서울]이 만났다.

지난 9일 오후 5시 경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한성천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 풍겼다.

그가 연기한 '소시민'의 주인공 '구재필'은 우리네 삶과 닮아 그런지 한성천에게 꼭 맞는 옷처럼 메소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을 맡겠다고 결정한 까닭에 대해 한성천은 “제가 주연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감독님께 알려지지 않은 나를 왜 주연으로 선택하셨느냐 물어보니 제 전작들을 지켜보니 그렇게 억울해 보이는 캐릭터는 없었다고 말하더라. 들어온 배역이 주연이라는 이야기에 바로 승낙했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는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편이다. ‘터널’의 드론 기술자, ‘용서받지 못한 자’의 상병 역할 이 밖에도 ‘베테랑’, ‘두 남자’, ‘악의 연대기’, ‘더 테러 라이브’, ‘범죄와의 전쟁’, ‘이웃사람’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흥행한 영화들에 얼굴을 비췄다.

언제나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일까. 주연을 꿰차기 직전 그는 슬럼프 기간을 겪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내게 손 내밀어 주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같다. 내게 ‘절실함’이 보였다는 것이다. 스크린에 설 수 있는 배우들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어찌 보면 잘생긴 것도 그렇다고 캐릭터가 강한 인상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점을 장점으로 생각했다”며 “중간에서 못하는 게 없는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영화든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보고 있다”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언급했다.

걸출한 발자취에도 그는 “대한민국의 영화 장르상 가볍고 코믹한 것이 영향력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며 “꼭 이런 가볍지 않은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선택을 받은 역할들이 그러했고 운 좋게 필모그래피가 그런 식으로 쌓여왔다”는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소시민인지 소심한 인간인지 모를 ‘구재필’은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짓눌린 줄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다. 의욕적인 듯하다가도 아주 수동적인 ‘평범한 샐러리맨’을 기가 막히게 연기한 한성천에게 직장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물론 예술고등학교를 나와 연극 영화과에 들어가고 영화계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직장 경험은 없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그런 모습이 있다고 생각 한다. 영화판도 똑같다. 회사도 정치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하물며 대학교에서도 누구를 따라야 하고…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보고 평가해 주는 사람들의 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혹여 어긋나서 생활했다면 언젠가 들통이 나는 곳은 이 곳이다. 그래도 진심이 그나마 통할 수 있는 곳은 여기지 않나”라며 연예계라는 직장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드러냈다.

구재필에 대해 한성천은 “대본 분석을 하고 캐릭터를 디자인해가면서 우유부단하고 줏대도 없는 구재필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또 “자기 의견을 ‘을’의 입장에서 내놓을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지’가 사라져가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하고 있는 수동적인 사람. 이게 내가 파악한 구재필이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가장이라는 안타까운 현실만큼 영화 속에서 그는 조금씩 변모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입체적 캐릭터다”라고 전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고. 한성천은 “영화 자체에 관심이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지금까지 8,9편의 시나리오를 적어봤다. 장르는 공포, 호러 빼고는 다 있다. 역사물, 스릴러, 로맨틱코미디부터 드라마까지…. 그 안에 물론 내가 연기하고 싶은 역할을 넣는다. 글을 쓸 때마다 5번째 배역에서 한 칸씩 앞으로 당겨지고 있다. 이번에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서 내가 맡고 싶은 배역은 3번째다”라며 웃어 보였다.

시나리오에도 관심이 많은 그라면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을 것. 그는 “사이코패스 같은 ‘악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나름대로 다르게 표현해 보고 싶다. 사람들은 악역은 ‘무섭고 세다’고 보편적으로 한다면 나는 진짜 선한 사람이 반전으로 악역이었을 경우 그 소름 돋는 반전을 가진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소시민’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묻자 그는 “현대인들이 종종 그저 살아가야 하니까 재필이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나. ‘내가 왜 이러나’ 돌아볼 새도 없이. 돌아보면서 나도 ‘내 꿈은 뭐였지?’ 과감하게 뭘 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고 조금이라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년 그의 목표를 묻자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쉴 수 있나요’ 재필이 대사다. 평생 배우를 할 생각이니 또 오디션을 보고 ‘배우 한성천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며 “대학시절 어떤 역할이던 잘한다는 자만이 당시 나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지금은 연기에 대한 갈망과 결핍이 나를 채찍질하고 동기 부여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다”며 의지를 다졌다.

<사진=홀리가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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