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에 털어놓는 인생사, 스타의 취중진담 토크쇼가 대세

잦은 음주 장면 노출이 ‘술 권하는 문화’ 부추긴다는 우려도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지난해를 풍미했던 식도락 예능 프로그램인 이른바 ‘먹방’(먹는 방송)에 이어 올해는 ‘술방’(술 마시는 방송)이 뜨고 있다. 방송가는 허름한 술집에 둘러앉은 연예인들의 허심탄회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술 권하는 문화’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자칫 과음을 유발하는 잘못된 음주 습관을 모방할 가능성이 높아 적절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힘든 일상을 꿋꿋이 버티기 위해서다. 누군가와 잔을 나누기에도 버거운 하루. 쉽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주문과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혼술을 한다”

지난해 방영된 박하선, 하석진 주연의 tvN 드라마 ‘혼술남녀’ 중 시청자에게 명대사로 꼽힌 대사다. 한 시청자는 “요즘 트렌드를 잘 나타내주는 듯 내 맘에 콕 와 닿았던 대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드라마는 그 시대상을 잘 표현한다는 말이 있다. 드라마 ‘혼술남녀’에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혼술’(혼자 술을 마시는 것)하는 노량진 강사들과 공시생들의 ‘홈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문화를 다루며 시청자들의 격한 공감을 얻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리얼 음주 방송’이 뜬다

이처럼 ‘혼술’, ‘홈술’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하자 최근에는 출연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tvN ‘인생술집’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좁은 골목에 진짜 술집 같은 세트장을 차렸다. 장사만 하지 않을 뿐 간판부터 내부까지 영락없는 술집 모양을 갖춰 방송의 몰입도를 높인다. 술잔을 기울이며 연예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소탈한 콘셉트를 내세운 ‘인생술집’의 오원택 PD는 “‘술집’보다는 ‘인생’에 무게중심이 있다”면서 “술자리의 따뜻함, 진솔함을 전달하고 싶다”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인생술집’과 함께 SBS 모비딕에서도 모바일 콘텐츠 ‘3차 가는 길’이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이 밖에도 가수들이 실제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며 노래를 부르는 ‘이슬라이브’, 언론사 뉴스타파가 진행하는 정치인과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시사토크 콘텐츠인 ‘뉴스포차’ 등 각종 술 마시는 토크쇼가 생겨나는 추세다.

‘술방’ 보다 ‘안방’도 취할라

먹방이 음식을 먹으며 시청자들의 식욕을 돋워 대리만족감을 주는 데 집중했다면 술방은 허름한 술집에 둘러 앉아 자기 속내를 털어 놓는 연예인과 독대하는 기분을 준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이 자칫 음주를 미화하고 과한 음주 문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폐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큰 흡연과 달리 음주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술 마시는 프로그램’은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SBS ‘3차 가는길’은 제목 그대로 자리를 옮기며 술을 마시고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우는 자유로운 모습들을 그대로 담아냈다. 술자리의 편안함을 빌어 스타들의 의외의 면을 발견한다지만 본격 풍류를 즐긴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술 게임, 술 제조법까지 공개한다.

앞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가수 김건모가 소주병 300여 개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에 ‘크리술마스’, ‘멋있다’라는 자막이 붙었다. 또 MBC ‘나 혼자 산다’에는 혼자 사는 스타가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가볍게 술자리를 즐기는 장면이 예사로 등장하고 있다. 리얼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음주는 ‘실제 상황’이라 시청자의 몰입을 강하게 이끌고 그만큼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특히 혼술 장면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단 지적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제재할 사람 없이 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환경에 쉽사리 노출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대한보건협회 방형애 기획실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찰형 예능에서 보이는 스타들의 소박한 술자리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나와 다르지 않다’는 친근함을 느끼게 해 동질화가 많이 생긴다”며 “어린이나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서도 행동을 모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방 실장은 “나아가 스타의 음주 습관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음주 습관을 정당화하게 돼 과음을 유발하거나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능력인 것처럼 잘못 인식할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흡연의 경우 그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있지만 음주는 아직까지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 않아 자율적인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최근 음주 장면이 방송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어 한층 더 주의 깊게 모니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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