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외국의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동서양의 문화가 사이좋게 혼재하는 곳. 동시에 원폭이 투하되어 많은 아픔을 받아낸 곳. 하지만 과거의 영화와 굴욕은 잊고 이제는 평화가 밀물처럼 스며드는 곳 나가사키. 나가사키는 때때로 안식이란, 이런 곳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알렝 레네의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 사이에서 흐르던 짧은 무언의 사랑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내 종결되지 못한 채 유폐돼 쓸쓸히 떠돌았다.
나가사키라고 히로시마와 다를까. 전쟁이라는 시대의 굴곡을 함께 온몸으로 받아낸 나가사키였으니 이 북규슈 땅 서쪽 끝에서 바라보는 나가사키의 모습은 히로시마와 다르지 않거나 다른 여행지와는 환기지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가사키 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환기를 걷어간 후 나지막하게 이런 글씨를 남겼다. 평화, 그것이 바로 나가사키의 원래 이름이었다.
기도의 성전, 오우라 천주당
나가사키의 외세 문호개방은 꽤 이르다. 1571년 처음 포르투갈과 무역을 시작했고 뒤이어 기독교가 들어옴으로써 일찌감치 외국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나가사키에서 오우라 천주당이 의미하는 바는 일본 전체의 개방 역사와 연결된다.
유달리 강력한 토착신이 많은 일본에서 새롭게 외국의 신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그리스도의 증거가 언덕 위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다. 정식 명칭이 ‘일본 26인 성인 순교자 천주당’인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 오우라 천주당은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교토에서 체포당해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26명의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프랑스 선교사가 지었다.
건물 외관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돼 있으며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지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국보 가운데 유일한 서양식 건물이면서 일본 내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다. 천주당 안에는 약 100년 전에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돼 햇빛이 스며드는 시간에는 엄숙하고 동시에 환상적인 내부를 연출한다. 그리고 성당 앞의 마리아상은 1865년 프랑스에서 직접 가져와 경건함을 더했다.
뒤뜰에는 역대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교황으로 알려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흉상과 신도발견 기념비가 있으며 천주당 앞에 신도들이 일반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빨간 벽돌과 초록 지붕 첨탑이 인상적인 오우라 성당이 있다. 핍박받던 일본의 천주교는 오랜 세월 버티고 버텨 이렇게 나가사키에 평화로운 성전을 일구어 놓았다.
<tip>
원칙적으로는 성당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으나 며칠 전에 관리자의 허락을 미리 받는다면 촬영이 가능하다. 무분별한 촬영은 절대 금물. 오우라 천주당은 종교 시설이지만 국보인 관계로 입장료 600엔을 받는다.
잔잔한 산책, 글로버 공원
나가사키는 1858년 일본의 막부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5개국과 공식적으로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요코하마와 하코다테와 더불어 개항한 세 곳 중 한 곳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고 그들의 생활 풍습과 가옥들이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천주당에서 나와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면 나타나는 글로버 공원은 당시 이곳에 거주했던 스코틀랜드 부호 토마스 글로버의 저택으로 외국 문물의 흔적이 깊게 남아있는 곳이다. 정상까지는 길게 이어진 스카이 워크를 타고 가니 힘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현재는 파티나 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에도 이용되고 있으며 일본 최초의 아스팔트 도로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마츠가에 국제부두와 해협 건너 반대편 나가사키 남부가 보인다. 그 속을 천천히 산책하며 걷는 시간, 더없이 어우러지는 잔잔하고 소소한 일본식 감정이 밀려온다.

리틀 차이나타운, 중화거리

글로버 공원에서 내려오면 나가사키 차이나타운과 만난다. 요코하마와 고베, 도쿄 이케부쿠로와 더불어 일본 내 4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은 16세기 중반 명나라 멸망 후 유민들이 건너온 경우와 19세기 중반 중국 국공내전에서 패퇴한 국민당 측 인사들이 건너온 경우 등 다양한 이유와 연고를 가진 중국인들이 세운 역사 깊은 그들의 작은 터전이었다.

과거에는 현재보다 부지도 크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나 현재는 전통을 유지하며 명맥을 잇는 방식으로 보존되고 있다. 서양의 외국 문물로 가득찬 나가사키에서 색다른 동양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 양옆으로 중국풍의 음식점과 상점들이 빼곡하며 이곳의 명물이자 이제는 어느덧 고유명사가 된 나가사키 짬뽕을 먹어보는 것은 나가사키에 온 이상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나가사키 세렝게티,
펭귄 수족관

일본의 수족관 역사는 상당히 길고 또 규모와 개수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많다. 섬나라의 환경적 특성을 제대로 살림과 동시에 관광지로 스토리텔링을 꾸민 일본의 아이디어는 놀랍기만 하다.

일본 내 10대 수족관으로 뽑히는 나가사키 펭귄 수족관에서는 전 세계에 서식하는 18종의 펭귄 중 9종류의 펭귄을 보호하고 있으며 가장 작은 펭귄으로 알려진 조그맣고 귀여운 쇠푸른 펭귄도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다.

관람객들은 직접 펭귄과 만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과의 교감을 먼저 배운다. 수족관의 하이라이트는 펭귄들이 조련사의 박수 소리에 맞춰 바다로 나가는 장면. 많은 사람들 앞에 선 펭귄들은 잠시 주저하지만 모래사장을 뒤뚱거리며 걷고는 바다의 냄새에 이끌리는지 물가로 향한 후 일제히 바닷속으로 몸을 담근다.

그 짧지만 위대한 여정에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물소 떼 이동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감동의 울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작지만 벅찬 감동을 나가사키 수족관에서 보여준다.
과일 버스 정류장,
고나가이 마을

나가사키에서 동북쪽으로 30여 분. 207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커다란 멜론 모양을 한 형체가 보인다. 아리아케해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형 과일, 바로 고나가이 과일 정류장 마을이다.

조금은 한적한 국도에 갑자기 나타난 멜론은 마치 작은 우주선이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처럼 이질적이었지만 그 이질적이란 느낌 안에는 귀여움이라는 느낌이 가장 많았다. 과일 정류장이 생겨난 이유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6년이나 나이를 먹은 과일들치곤 아직도 충분히 탐스럽다.

1990년에 나가사키 박람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마을 정비사업 이야기가 나왔고 고나가이 마을 사람들이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 이런 앙증맞은 길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모티브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호박 마차. 마을에서 출하되는 특산품인 딸기, 멜론, 귤, 수박 그리고 토마토 등 5종류의 과일들이 16개 정류장으로 나뉘어 꾸며졌고 그래서 이 마을에 알록달록 색을 입히며 명물이 됐다. 바다를 배경으로 넘어가는 석양빛에 물든 멜론, 어쨌거나 선셋과 과일의 믹스는 전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JR열차를 타고 가도 보인다.
나가사키식 인사, 안경다리

안경다리 메가네바시, 물에 다리가 비쳐 그림자를 드리우면 다리 아래의 둥그런 모양이 물에 비친 반영과 합쳐져 안경모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34년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돌다리로 나카시마강 다리 주변의 돌담 외벽에는 하트 모양을 한 돌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이 돌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해 많은 연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나가사키에는 세 개의 하트 모양 돌이 있는데 글로버 공원에 두 곳이 있고 안경다리에 나머지 한 곳이 있다. 돌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 곳 이 자연스럽게 돌이 있는 곳이기 때문, 저녁이 되면 다리 밑으로 석양빛이 드리우고 다리에도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도 동그란 안경이 맺힌다.

동그란 안경은 ‘나가사키를 잘 보고 가주세요’ 라는 일종의 나가사키식 인사처럼 느껴진다.

<info> 테후테후
나가사키에서만 나는 재료로 만든 화장품 숍 마치야 코스메 테후테후. 안경다리에서 한 블록 안쪽 스와마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포장된 화장용품과 비누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

밤의 공중 산책,
나가사키 야경

2012년 홍콩, 모나코와 함께 세계 신 3대 야경으로 뽑힌 나가사키 야경. 2015년 삿포로와 고베와 더불어 일본 내 3대 야경으로도 뽑힌 나가사키의 밤 풍경은 이곳에 온 이상 놓치고 갈 수 없는 극적인 광경이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이나사야마 정상, 바람이 세차게 부는 산의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스모 여울과 다치바나만의 바다 그리고 나가사키의 시내까지 360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물론 사계절 내내 24시간 동안이다.
이오섬과 멀리 다카시마를 넘어가는 선셋이 지나가면 드디어 나가사키의 야경 극장 오픈. 시야 가득히 점점이 불이 밝혀지면 블랙의 배경에 하나씩 하나씩 하얗고 노랗게, 마치 반딧불이가 유영하듯 밤꽃이 핀다.
아직 터지지 않은 폭죽처럼, 혹은 터지고 난후 내리 는 수억 개의 불꽃처럼, 사람들의 눈동자에 그 빛이 되돌아와 맺히고 밤의 나가사키는 그렇게 오로지 빛으로만 말을 건네며 하루를 이곳에서 닫는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이곤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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