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떼 500마리가 반세기만에 군사분계선 뚫으면서 시작값비싼 경제적 대가 치르고 있지만 통일위한 초석은 분명금강산은 북한의 자랑이자 남북한 모두의 자부심 그 아름다움 세계로 펴져 금강산 육로관광사업은 조국이 분단된 지 반세기만에 관광이란 이름으로 군사분계선을 뚫고 육로를 통해 금강산 관광을 실현함으로써 남북한의 평화를 다지는 청신호를 열고, 통일을 위한 초석을 깔았다. 이 과업은 값비싼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민간인 신분으로서 이루어낸 불후의 업적으로 꼽히고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6월16일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한 낭만주의적인 재벌이 벌이는 기발한 행사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꼭 남북의 분계선을 풀어야 한다”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염원은 금강산 해로관광에 이어 민간인 차원에서 육로로 금강산을 관광하게 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2003년 2월14일 금강산 온정각 문화회관에서 남북한 공동으로 금강산 육로관광 기념식을 연데 이어 한동안 이 사업이 중단상태로 있다가 북한측이 다시 이것을 허용함으로써 9월1일부터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현대아산 측은 연말까지 예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9월21일부터 23일까지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일행 20여명과 함께 금강산 육로 관광길에 올랐다.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을 넘어 중앙분계선을 거쳐 북방한계선을 지날 때 만감이 교차됐다. 관광버스가 오르내리는 길과 그 주변 100m 정도는 철조망이 끊어져 있었다.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끊긴 철조망을 통해 금단의 땅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관광버스는 하루 걸러 500명 이상의 관광객들을 싣고 금강산을 오르내린다. 현대아산측은 연말까지 매일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도록 북한측과 협의하고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격언처럼 평화로 가는 길은 이렇게 열렸다. 금강산은 북한의 자랑이자 남북한 모두의 자부심이다. 그 산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산이 풍기는 서기는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퍼지고 있다. 2박3일 동안 천하에서 빼어난 금강산을 구경하는 일은 비록 제한된 규칙 아래서나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든 관광객들이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금강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에 감탄했다. 금강산 관광은 1박2일 및 2박3일 코스로 나뉜다. 2박3일 코스의 일정은 첫째 날은 숙소에서 일박하는 것으로, 둘째 날은 상팔담과 삼일포를 둘러보는 것으로, 셋째 날은 만물상을 관광하는 것으로 잡혀 있다.금강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위에 여러 가지 구호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 산에 쓰인 4,900여 곳의 바위글씨(북한측은 ‘바위글발’이라 함)는 자연훼손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천하제일 명산 금강산’,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라는 말에서 보이듯 표현의 의미와 자부심 자체에는 일리가 있다. 금강산의 바위에 가장 크게 새겨진 구호는 무엇일까. 그것은 장전항에서 온정리 마을을 향해 돌아서면서 금강산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눈에 뜨이는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명장 김정일 장군이라는 뜻일 것이다. 금강산의 여러 바위에 ‘주체의 향도성 김정일’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칭송하는 글씨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그러한 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비웃다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 감시원들에게 적발되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 현대아산 협력업체에 속하는 안내원들이 “바위에 새겨진 구호나 동네에 적힌 구호들을 가리키면서 비방하면 북측 사람들은 이것을 ‘손가락 총질’이라고 하여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사망한 김일성 주석에 대한 향수도 북한 인민의 마음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다. 외금강의 절경 상팔담 가는 길목의 바위에 적힌 구호는 이렇다. “조선아 자랑하라 5천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시었던 영광을!”온정리 마을 부근의 주체사상탑 모양의 돌탑에 세로로 새겨진 구호는 북한 인민들에게 더욱 친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뿐만 아니라 주체로 변형된 공산주의로 인민을 다그치는 데는 구호의 위력이 클 것이다. 정치 및 이데올로기 구호는 인민들이 오가는 길목이나 눈에 잘 띄는 산의 바위에서 사람들을 맞는다.“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에 북측 감시원들이 끼여 있다. 감시원들은 가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얼굴이 담긴 메달을 차고 있다. 그들은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제복으로 보아서 조선로동당, 군 또는 면 인민위원회, 특수 신분의 군인 등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의 출발지인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마을 주변은 남측 관광객들로 북적대고 있다. 장전항 주위의 일정 공간은 금강산 관광특구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현대아산측이 북측과 합의하여 이룩해놓은 금강산 관광에 필요한 특별한 구역이다. 여기서는 노래방에서 한국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한국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곳은 현대의 왕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북측은 남측 관광객들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온정리 마을 자체를 시멘트 담으로 가려놓았다. 그러나 가끔 담장이 끊어진 사이로 쓰러져 가는 가옥과 휑뎅그레한 내부 공간이 보인다. 주인들이 노동하러 나간 집은 적막강산과 같다. 철조망 너머로 걷는 한 농촌 할머니의 얼굴은 햇볕에 검게 탔으며, 눈이 쑥 들어가 있었다.

북한의 부족한 전력사정은 금강산 일몰 후의 주변 마을을 암흑 천지로 만들고 있다. 100여 가구가 사는 온정리 마을은 밤이면 단 한 가구도 전기를 켜지 못한 채 어둠과 침묵 속에 갇혀 있다. 저 안에서 사는 인민들은 길고 깜깜한 가을과 겨울밤을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이며, 어린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할 그 시각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도 봉화리 마을의 어귀에는 섬뜩한 구호가 아직도 선명하게 적혀 있다.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그리고 들판 곳곳에는 이런 구호들이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속도전` `결사 옹위`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관광객들의 소회는 여러 가지였다. 그것은 북핵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지금 막 평화의 걸음마를 뗀 금강산 육로관광길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이기도 하다. “반도의 허리를 동강낸 군사분계선을 뚫고 올라가 아름다운 금강산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일생 최대의 축복이다.”, “굶주려 핏기 없는 북한 인민들의 표정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말살하는 전쟁은 한반도에서 다시는 없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