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설 이후 기존 정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여의도에는 각종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며 새누리당 탈당파가 만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입당이 그럴 듯하게 회자되고 있다. 또한 가능성은 낮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  핵심 인사들의 탈당을 전제로 한 새누리당행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반 전 총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대선판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특히 충청도 출신의 반 전 총장이 영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으로 갈 경우 영충 연대가 완성되고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 입당할 경우 호충연대로 각각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 반기문의 선택지에 따른 유불리를 따져봤다.

- 영남 보수 집토끼냐 호남 진보 산토끼냐
- 대통령 친박 탈당 시 새누리당행도 ‘솔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1월 16일 “종국적으로 어느 쪽이든 정당과 함께하겠다”며 “지금까지 대통령이 된 사람 중에 당이 없었던 사람이 없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입당 결정을 할 경우 “설 이후 입당 여부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도 말했다. 입당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로 반 전 총장은 ‘금전적인 문제’를 들었다. 그는 “현재는 당이 없다 보니 다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반 전 총장은 입국 당시 ‘기존 정당에 입당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당분간 제3지대에서 ‘연합정권’을 내세워 대통령 후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입장이 바뀐 셈이다. 특히 반 전 총장이 언급했듯 현실적인 자금 문제뿐만 아니라 거세지는 네거티브 공세에 대통령 탄핵 심판결정이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조기 입당’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 전 총장이 정당을 선택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대권 지형뿐만 아니라 범여권 발 정계개편론까지 겹쳐 정치판은 재차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범여권 후보로 분류돼온 반 전 총장인 만큼 새누리당 탈당파가 만든 바른정당행이 가장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개혁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바른 정당은 친이명박계가 다수인 점을 감안할 때 영남(PK지역)과 충청연대를 의미한다.

또한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을 선택할 경우 새누리당 내 친반기문 의원들의 추가 탈당도 이끌어 낼 수 있다. 현재는 의석수 30석으로 기호가 4번이지만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을 제치고 2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반 전 총장이 입당할 경우 자금과 조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바른정당 하에서 경선을 치러야 하지만 대선 출마하는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3인은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반 전 총장에게 안 돼 입당 장애가 되지 않는다.

바른정당 경선은 쉬운데…본선은 ‘글쎄…’

걸림돌은 다른 데 있다. 후보 경선은 무난하지만 본선이 만만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뿐만 아니라 야권에서는 반 전 총장의 바른정당행은 정권교체라기보다는 정권 연장으로 보고 있다. 보수 정권 10년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어느 때보다 높고 바른정당 인적 구성을 보면 이명박 정권에서 복무한 인사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이 범여권을 선택할 경우 “박근혜 정권 연장이자 이명박 정권의 부활”이라고 공격하는 배경이다.

또한 바른정당은 박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선 세력으로 반박세력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해온 반 전 총장으로서 바른정당행은 ‘샤이박’(숨어있는 박 대통령 지지층)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나 박 대통령 탄핵 이후 바른정당 내 반박근혜 정서가 거세질수록 반 전 총장으로선 대구/경북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이에 새누리당행 카드도 완전히 버린 카드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반 전 총장 측근들은 “새누리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16일 기자간담회장에서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이 쪼개지지 않고 멀쩡했으면 들어가서 경선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분당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친박 핵심들을 다 내보내고 박 대통령이 자진 탈당을 하든, 당에서 당원권 정지나 출당을 시키면 반 전 총장이 새누리당에 안 올 이유도 없다”며 “TK 지역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근거로 반 전 총장이 ‘충청 대망론’으로 충청권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충북 음성 출신으로 대전·충남에서 ‘안희정 지지세’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한 PK 지역의 경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와 지지율에서 다소 떨어지지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고향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경우 부산에서 5명 경남에서 3명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보수의 상징인 TK 지역을 잡기 위해서 새누리당행을 선택할 것이라는 그럴 듯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기대감과 달리 현실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박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기 전에 자진 탈당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친박계 핵심들의 버티기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반 전 총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순간 본인이 주장한 ‘정치교체’구호가 무색해지고 ‘정권연장’이라는 공세는 더 높아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세력과 함께한다는 비판도 아픈 대목이다. 나아가 지역적으로도 ‘TK포위론’에 휩싸일 공산이 높고 이념적으로 정통 보수를 제외한 중도층과 무당층의 이탈현상이 가속화돼 ‘득’보다 ‘실’이 크다.

국민의당 입당… ‘가장 이상적이긴 한데…’

한편 또 다른 선택지로 안철수 전 대표가 있는 국민의당에 입당하는 경우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전혀 배제할 수도 없다. 반 전 총장 입장에서는 충청과 호남을 아우르는 ‘호충연대’로 차기대권 고지를 잡는 데 가장 유리하다. 정치교체뿐만 아니라 정권교체 구호도 내세울 수 있다. 무엇보다 외연 확대라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다.

‘갈 데 없는 집토끼(보수표)’를 묶어놓고 ‘산토끼’(진보표)를 잡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안 전 대표를 비롯해 손학규 전 대표 등과 함께 세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차기 대권을 잡는 데 강점이다.

문제는 정체성과 이념적인 차이다. 당초 국민의당은 반 전 총장 영입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고 있다. ‘뉴DJP’ 연대라는 점을 들며 가장 영입에 공을 들였던 박지원 당 대표는 18일 반 전 총장의 입당 가능성에 대해 “거의 문을 닫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실패한 정권의 사람들이 주위에 함께하는 것도 실망스럽고 귀국해서 일련의 언행이 마치 박근혜 정권을 이어받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우리로서는 정치적 이념과 정체성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 입장에서는 본선만큼 치열한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안철수, 손학규 등과 당내 경선을 치르고 다시 문재인 전 대표와 본선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안철수 세력이 주류로 조직 없이 ‘혈혈단신’으로 들어갈 경우 ‘불쏘시개’로 전락할 수 있다. 반 전 총장이 선뜻 국민의당행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반 전 총장 측은 입당과 관련해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자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반 전 총장의 이도운 대변인은 17일 “기자들과의 ‘치맥’자리에서 반 전 총장은 본인 입으로 입당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입당할지 어디로 할지 등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부 매체에서 ‘반기문 바른정당행’에 대해서 바른정당 정병국 창당추진위원장은 “공식적인 협의는 없었다”고 한 발 빼는 모습을 연출했다.

“입당? 원점에서 재검토” 설 민심 떠보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권 일각에서는 국내 최대의 명절을 앞두고 ‘설 식탁에 반기문 입당 관련 이슈를 올리기 위해 여론전을 펼친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명절에다 신년을 맞이해 각종 언론 매체에서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민심 파악에 들어가기 때문에 입당과 관련해 전국적인 민심을 살펴본 이후 ‘제3지대’에 남아 있을지 ‘입당’할지를 결정하겠다는 전략적 발언이라는 비판이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영호남 심장부를 오가며 대통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6일에는 경남과 부산 방문을 시작으로 17일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호남으로 이동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팽목항 등을 둘러봤다. 또한 18일에는 영·호남의 교두보인 광주와 대구를 잇따라 방문했다.

광주 조선대  강연에서 그는 “광장의 민심으로 대표되는 국민의 좌절과 분노는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층 인사들이 다 책임져야 한다”며 “특히 국가를 경영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은 더 포용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반 전 총장은 “호남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시발점”이라며 “광주와 호남은 민주주의 원산”이라고 적극 구애전략을 펼쳤다. 또한 최근 화재가 발생한 전남 여수 교동 수산시장과 지난달 화재 피해를 입은 대구 서문시장을 잇따라 방문, 상인들을 위로하는 등 민생 행보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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