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경찰 4명  포함된 범인들 살해 후 몸값 받아 내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필리핀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매년 100만 명씩 방문하는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일반 관광객은 기본이고 어학연수를 떠나는 청년들과 노후를 보내려는 장년층도 많이 찾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2013년 12명, 2014년 10명, 2015년 11명 등 매년 10명 이상씩 꾸준히 발생해 왔다. 사업가들은 대상으로 한 범죄는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최근 밝혀진 사업가 A씨 살해 사건도 현지 경찰이 포함됐을 만큼 치밀하게 준비돼 충격을 안겨줬다.  

‘범죄 천국’ 필리핀, 범죄자 도피처 ‘인기’
한국인 피살자 매년 10명 이상 ‘좋은 먹잇감’

최근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필리핀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됐던 50대 한국인 사업가 A씨가 피살됐다고 밝혔다.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은 A씨 살해 사건에 필리핀 전·현직 경찰들이 연루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살해 장소도 경찰서로 알려져 필리핀 현지는 물론 국내에 큰 파장이 일었다. 

지난 17일 외교부 당국자는 “A씨가 지난해 10월 필리핀 자택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했으며 납치 당일 목 졸려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은 A씨를 살해하고 전직 경찰관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화장장에서 시신을 소각해 증거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마약 관련 혐의로
체포한 뒤 살해

사업가 A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인력송출업을 하고 있었다. A씨는 10월 18일 관광도시인 앙헬레스 자택에서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앙헬레스는 필리핀 내 한인이 가장 많이 체류하는 지역으로, 필리핀 내 한인 9만여 명 중 1만1천여 명이 체류하고 있다.

하지만 19일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발표에 따르면 A씨는 범죄에 가담한 경찰들에 의해 마약 혐의로 연행됐다. A씨를 납치한 범인들은 총 8명으로 이중 3명은 현직 경찰관, 1명은 퇴직 경찰관이었다. 이들은 A씨를 경찰청 내 마약단속국 건물 옆 주차장으로 끌고 갔고 차 안에서 A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A씨는 범인들에 의해 사건 당일 사망했지만 범인들은 A씨 가족들에게 납치 2주후 몸값을 요구했다. 이들이 당초 요구한 몸값은 800만 페소로 한화로 계산하면 약 1억 9천만 원이다. 하지만 범인들은 A씨 가족들에게 500만 페소(약 1억 2천만 원)만 받았다.

용의자 7명중 1명 자수
필리핀 경찰 “유감”

A씨를 납치해 살해한 범인들 8명 중 필리핀 경찰이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용의자는 1명이다. 이 용의자는 제한적 유치 상태였으나 지난해 12월 말 영내를 무단 이탈했다가 필리핀 국가수사국에 자수해 신병이 확보됐다. ‘제한적 유치’란 형사상 소추를 당하고 있는 경찰관에게 취할 수 있는 조치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나머지 7명의 용의자 중 전직 경찰 한 명은 1월 초 캐나다로 출국한 상태이며 나머지 인원은 필리핀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며 “필리핀 검찰은 그간의 수사결과를 토대로 17일 상기 8명의 용의자 전원에 대해 체포 영장 발부를 청구했다"고 말했다. 

또 “현직 경찰이 연루된 사건으로 피해자 가족이 필리핀 정부를 대상으로 국가 배상 청구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현지 경찰 측도 유감을 표명했다. 경찰이 사건에 연루된 만큼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코리아데스크 운영
예산 지원 검토 ‘글쎄’

현재 우리나라는 필리핀 현지에 코리아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당초 파견경찰이 2명이었으나 6명으로 늘렸고 사건사고 지원반도 2명에서 8명으로 늘린 상태다. 코리아데스크의 활약은 크지만 필리핀 내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막을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김완중 재외동포영사국장은 “정부 차원에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KOICA)를 통해 필리핀 경찰청의 수사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3년에 걸쳐 660만달러(약 75억원) 지원을 검토 중”이라며 “한일 밀집지역에서는 방범단을 구성해 현지 경찰과 공동 순찰을 실시하고 CC(폐쇄회로)TV를 설치하는 등 치안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범죄가 얼마나 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100만 원이면
청부 살인도 가능

필리핀은 관광지로 유명한 나라다. 우리나라 관광객 외에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하지만 치안은 안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총기 소지 허가 자유국은 아니지만 필리핀 현지서 총기 살인은 흔하다. 제대로 된 관리와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마약, 카지노, 유흥시설이 많아 다양한 범죄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청부 살인도 일상화 돼 있다. 한국 돈으로 100만 원 정도면 청부 살인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필리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범죄자들도 많다. 외국인에 대한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으로 위장해 입국하는 범죄자도 많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하는 범죄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렇게 도주한 범죄자들이 필리핀 현지에서 2차, 3차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이다. 생계가 어렵다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한인들을 상대로 납치를 하거나 사기를 치고 살인을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범죄 대상은 제한이 없다. 여행을 온 청년들부터 은퇴 이민을 온 장년층 모두가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