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가 열림에 따라 가뜩이나 허약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어 당선됐다. “먼저 미국부터 경제 체력을 추스르고 난 다음 외국을 배려하든지 말든지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선거공약의 핵심이었다.
이제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속도감 있게 자신의 경제 정책, 즉 트럼프노믹스 이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노믹스 집행 과정에서 가장 즉각적이고도 크게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다. 최종 득표수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300만 표 뒤진 트럼프는 미시간을 비롯해 펜실베니아·위스콘신·오하이오·인디애나·아이오와 주 등 선거인단이 많이 걸린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북부 공업지역)’에서 승리를 거머쥐어 백악관 주인이 됐다.

러스트벨트 지역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에게 트럼프가 보냈던 메시지는 “1990년대 초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결과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리오그란데 강(江)을 건너 멕시코로 대거 이동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NAFTA를 재협상할 것이며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면 아예 NAFTA에서 탈퇴하겠다”였다.
그는 또 일부 멕시코 산 제품에 3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뿐만 아니라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을 색출해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는데, 그 1100만 명 가운데 약 500만 명이 멕시코 사람이다. 만약 이런 공약들이 전면 이행되면 멕시코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과의 교역이 둔화되고,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며,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발하고, 송환된 노동자들이 멕시코 노동시장에 추가돼 부담을 주게 된다. 트럼프노믹스로 고통을 겪을 중미(中美) 국가는 또 있다. 영국계 투자관리회사 M&G 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불법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테말라 5.6%, 엘살바도르 8%, 온두라스 13.2%다.
중국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손보겠다고 선거 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힌 나라다. 트럼프는 재무장관에게 지시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명케 할 것이며, 중국을 걸어 여러 무역 관련 사안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것이고,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45% 관세를 매기는 것을 검토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 전체 수출품의 20%가 도착하는 중국의 최대 시장이다.
미국이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구사하면 중국의 성장에 뚜렷한 둔화가 초래될 수 있고 중국의 제조업 일자리에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중국이 그런 가능성에 대비하는 방안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이 부드럽게 나가면서 미국 경제 재건을 지원하는 방식의 하나로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늘리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공격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인데, 이것이 더 유력하리라 보는 전문가가 많다. 중국에도 경제 무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얻은 흑자를 사용하여 근년에 미국 국채를 엄청나게 사 모았다. 중국은 트럼프가 계속 협박하면 미국 국채를 한꺼번에 매각해 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 국채 시세가 폭락해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아니면 트럼프처럼 미국산 수출품에 중국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 간에 본격적으로 무역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여타 아시아 지역도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차대전 이후 전통적으로 유럽으로 향했던 미국 외교정책의 초점을 ‘아시아 중심(Pivot to Asia)’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정책 변화에는 공산국가 소련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浮上)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아시아 중심’은 군사·외교·경제 측면에서 구현됐다. 오바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일본, 브루나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중국의 영향권에서 분리하는 장치로 파악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수출 주도형 성장모델을 갖고 있는데, 오바마의 계획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무산될 운명에 처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TPP는 없을 것임을 트럼프 본인이 누차 공언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같은 국가들도 예외 없이 멕시코와 중국처럼 똑같이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구속될 판이다.
이는 수출과 투자가 약화되면서 아시아 전역에 걸쳐 성장 둔화를 초래할 것이다. 25년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데다 여전히 디플레이션 위험에 시달리는 일본이 트럼프노믹스가 초래할 위기에 가장 크게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때, 미국이 무역에서 강경하게 나가면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해 이 지역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이들 국가를 미국 시장에 덜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그리고 트럼프가 불을 붙인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은 유럽의 장래를 마구 흔들고 있다. 만약 영국에 이어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EU에서 나가겠다고 나서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 당장 EU 탈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경제난이 심각한 이탈리아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에서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부결되고 마테오 렌치 총리가 물러나는 등 정치 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주요 은행들이 금융위기에 빠지는 등 경제적 혼란까지 가중돼 EU를 포함한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이탈리아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오는 4월 프랑스 대선과 10월 독일 총선 등 유럽에서 주요한 투표가 예정된 가운데 ‘유럽판 트럼프’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도 향후 유럽의 정세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특히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4연임 도전 성공 여부는 포퓰리즘 저지선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의 한복판에 있는 한국에서도 포퓰리즘이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낙마의 계기를 제공한 포퓰리즘이 한국까지 덮쳤다”고 분석했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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