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한 자연과 함께 고요한 정취가 내려앉아 있는 성북동에는 예로부터 걸출한 인물들이 모여들어 담담하게 그들의 이야기들을 남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가로이 성북동의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길마다 남아 있는 잔잔한 이야기들과 조우하게 된다.
북한산과 서울 성곽의 품에 안겨 있는 성북동. 그 이름은 도성의 북쪽에 있다 해서 붙었다. 서울의 중심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이곳의 시간은 서울의 다른 곳에 비해 분명히 느리게 흐르고 있다.
오랜 세월 서로 어깨를 맞대고 촘촘히 자리한 집들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 긴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것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여유로움이 성북동의 길 위에 머물러 있고, 성북동을 다녀간 많은 인물들의 자취는 이곳의 공기에 은은한 향기를 더한다. 볕 좋은 어느 겨울날, 성북동을 찾았다.

<info> 성북동 도보여행코스
길상사 (도보 10분) 우리옛돌 박물관 (도보 15분) 심우장 (도보 2분) 북정마을 (도보 8분) 수연산방 (도보 3분) 이종석 별장 (도보 6분) 간송 미술관 (도보 8분) 방우산장-조지훈 집터 (도보 2분) 최순우 옛집 (도보 8분) 성북예술창작터-장승업 집터
백석의 사랑 그리고 법정스님, 길상사
도보여행의 시작점인 길상사 정류장에 내렸다. 이 고즈넉한 산사에 숨어 있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시인으로 등단한 백석은 함흥에서 만난 기생 김영한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집안의 강요로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렀고, 김영한은 백석 몰래 짐을 꾸려 경성으로 떠난다.
그녀를 잊지 못한 백석은 수소문 끝에 김영한과 재회하고 함흥으로 돌아가기 전, 그녀에게 내민 시가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경성에서의 짧은 동거 뒤 백석은 집안의 강요로 두 번째 결혼을 했고, 한국전쟁의 발발로 김영한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훗날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에 감명을 받아 당시 가격으로 천억 원 상당의 고급 요정 대원각을 시주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길상사다.

어마어마한 부(富)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공허함은 채울 수 없는 것일까. 김영한이 남긴 “천억 원이라는 돈이 그 사람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라는 말에서 긴 세월에도 무뎌지지 않은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산사의 한편에 다소곳이 자리한 김영한 보살의 법전 앞마당, 불어오는 바람에 굴러다니는 나뭇잎이 어딘지 모를 쓸쓸함을 전한다. 본디 요정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돌아본 길상사의 풍경은 한적하고 또한 수려하다.

숲 속에 아늑하게 안겨 있는 선방을 지나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진영각에 닿았다. 법정 스님은 2010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입적했지만 진영각에는 스님의 글과 말씀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고한 기운이 흐르는 법당 내부에는 스님의 유품과 서적 등이 마련돼 있어 그 자취를 짚어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진영각의 처마 아래에는 스님이 평소 사용했던 투박한 나무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방명록 노트에 안부를 묻는 짧은 서신을 띄워본다. 서울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Info> 시인 백석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이며, 백석은 그의 아호이자 필명이다. 1936년 시집 <사슴>으로 등단, 당시 어느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모더니즘의 시류 속에서도 향토적인 서정의 세계를 사투리로 형상화한 그의 시적 성취는 문단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남북 분단 후, 백석은 고향에 머무르며 집필과 교육활동을 이어갔으며 1996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석을 만나기 전 김영한

함흥 출신의 김영한은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집안의 가난으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등진 뒤,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집을 떠나 기생이 된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김영한은 일본 유학을 떠나지만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함흥으로 급히 돌아온다. 그렇게 함흥에 머물던 어 느 날 백석을 만나게 된다.

돌조각이 품은 이야기들,
우리옛돌박물관

2015년 11월에 개관한 젊은 박물관을 찾았다. 옛 돌조각들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이 박물관은 우리옛돌문화재단의 이사장이 40여 년간 제자리를 떠나 흩어져 있던 돌조각들을 한데 모아놓은 공간이다.
일본에서 환수한 문화재를 모은 환수 유물관을 시작으로 문인석관, 장군석관, 동자석관, 벅수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장승을 이르는 이름관을 차례로 살펴본다.
옛 돌조각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운데 개인적으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져 역신이나 잡귀를 막았던 벅수들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지만 그 생김새가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수더분하고 익살스러워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과 해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한편에 마련된 전통 자수 공예품 전시관과 근현대작가의 회화작품들도 박물관의 차분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며 볼거리를 더하는 모습.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양쪽으로 돌조각들이 늘어선 산책로가 이어진다.
어느 돌 하나 의미 없이 놓아진 것이 없어 그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높은 곳에 위치한 덕분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은 박물관에 색다른 매력을 더한다. 서울시 성북구 대사관로 13길 66.
<Info> 한국 가구 박물관
한국의 전통 목가구를 중심으로 옹기·유기 등의 전통 살림살이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소장품을 종류별, 재료별, 지역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소장 자료는 목가구류, 유기류, 옹기류, 목기 소품 등 총 2000여 점이다. 또한 특별전과 국제 교환 전시회를 열고 관련출판물을 발간하는 등 우리나라의 전통 생활가구를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모든 관람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된다. 서울시 성북구 대사관로 121.
만해의 자취, 심우장

박물관을 나와서 담장 높은 저택들 사이를 지나 시인이자 불교개혁가인 만해 한용운이 거처했던 심우장으로 향한다.
불교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가 있다. 그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라는 뜻의 심우(尋牛)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길 앞, 만해 선생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님의 침묵의 시구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굳게 다문 입과 또렷한 눈매에서 그의 강직한 심성이 느껴진다.

만해 선생이 독립을 염원하며 남긴 글귀와 말귀들이 이어지고 작은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선다. 한창 해가 들어올 시간이지만 마당에는 오히려 그늘이 져있다.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으로 지어진 점이 특이한데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지 않으려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 터를 선택했던 것이다.
일제에 저항으로 일관하며 독립을 누구보다 갈망했던 만해 선생은 안타깝게도 조국의 광복을 일 년 남짓 남겨두고 1944년 심우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쓰던 방에 그대로 보존돼 있는 글씨, 연구 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에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달과 가까운 동네, 북정마을
성북동에는 두 가지 얼굴이 공존한다. 서울에서 내로라 하는 부촌이면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살아온 터전이기도 하다. 성북동의 성곽길 아래에 30년 전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북정마을이 있다.

서울의 중심에서 이토록 가까운 곳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 장작으로 불을 때는 난로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그 풍경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떠오른다. 색 바랜 담장, 구불구불 이어진 좁디좁은 시멘트 골목길, 시들어버린 덩굴 벽 앞에 덩그러니 놓인 등나무 소파, 때가 탄 오래된 기와. 낡고 허름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운치가 골목골목에 배어 있다.
이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에 반한 예술가들이 만들어놓은 작고 투박한 갤러리와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한 작업실이 멈춰버린 북정마을의 시간에 소소한 생기를 더한다.
차향 가득한 소설가의 옛집, 수연산방

작은 대문을 지나자 아늑한 정취가 머물러 있는 한옥과 마당이 나타난다. ‘산속에 문인들이 모이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옛집, 수연산방(壽硯山房)이다. 이태준은 월북하기 전, 성북동에 살면서 <달밤>, <돌다리>, <왕자 호동>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수연산방 한편에 마련된 이태준의 서적들과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낡은 서랍과 흑백 가족사진 등 오래된 소설가의 유품에서 고택이 품은 세월이 느껴진다.
안방 앞에 사랑방 역할을 하는 누마루를 둔 것이 특이한데 아담한 규모의 집에서는 보기 드물게 섬세하게 꾸며진 모습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마음에 들어 잠시 머물러 가기로 한다. 누마루에 앉아 안뜰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 곳을 드나들었을 문인들이 손을 흔들며 대문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집주인도 초대받은 이도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을 것 같 은 고즈넉한 분위기. 작가가 고민을 거듭하며 작품을 써 내려갔을 수연산방에 차향이 가득하다. 전통찻집이 된 소설가의 옛집. 그 한적한 정취 속에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6길.
<Info> 간송 미술관
수연산방과 최순우 옛집 사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 미술관이 있다. 설립자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를 위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되고 말살돼가던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유물들을 연구하고 보존했다. 성북동에 자리한 간송 미술관은 현재 보존 공사를 위해 휴관 중으로 소장품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간송 문화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사진제공=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옛집
전 국립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한국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혜곡 최순우의 옛집. 대문으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아기자기한 ‘ㅁ’자 형태의 조그만 정원에서 그의 안목과 멋이 느껴진다.

혜곡의 정성이 구석구석 담겨 있는 집을 둘러보며 지인의 집을 방문한 것 같은 한옥이 주는 편안함에 빠져본다. 혜곡이 친필로 쓴 ‘문을 닫으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다’라는 뜻의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현판 아래의 유리창 너머로 단출하면서 정갈한 사랑방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혜곡은 이곳에서 그의 대표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책들을 집필했다.
그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평생에 걸쳐 6백여 편의 글을 남겼다. 짙은 고동색의 툇마루에 앉아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그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친 그의 시선을 그려본다. A 성북구 성북로15길 9
시인이 머문 자리, 방우산장
조지훈 시인은 자신이 살던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의 글 <방우산장기>에서 그는 방우산장이라는 말을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가 있는 자리’라고 풀어내고 있다.

최순우 옛집을 나와 큰길로 나서니 맞은편 거리에 조지훈 기념 건축 조형물 ‘시인의 방-방우산장’이 보인다. 격자무늬 문틀과 마루를 상징하는 건축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 놓인 작은 나무의자는 생각의 공간임을 나타낸다.

격자무늬 문이 열린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니 조지훈의 집터 였음을 나타내는 작은 표지석이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그 위에 인간의 번뇌를 승무를 통해 서정적으로 표현한 그의 대표 시 <승무>가 적혀 있어 시인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박건우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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