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게릴라극장에서 2월 5일까지 공연되는 <갈매기>는 관객을 비도덕주의로 이끈다. 극에 대한 인상은 생각하는 만큼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말과 표정으로 상징과 암시로 굴욕과 애원으로 어떤 심오함으로 조급하게 하고 비극의 양을 넘치게 한다. 개인적으로 느끼고 간파한 것에 대해 그게 정말 혼자만의 것인지 질문하고 착각하게 한다. 관객을 들뜬 기분으로 돌아가게 하며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극 중 인물들처럼 모처럼 모순에 사로잡혀 감정적인 감상에 몰두하게 한다.

‘연희단거리패’가 연기하는 비도덕의 세계는 기묘한 균형을 이룬다.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는 연극의 경우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각각 살아있다. <갈매기>는 이에 더해 자기도취적이고 히스테리적인 대사와 비현실적 몸짓이 이야기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이야기가 약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침울한 분위기를 풍기기도하고 집착과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으로부터 빠져나와 혼자 놀기도 한다. 시간을 벗어나 멈춰있을 때도 있지만 결국 시간(행동과 선택)의 도움 없이 뻗지 못하고 인물과 배경 사이에서 예술적으로 인간적으로 맴돈다. 이야기를 돕는 대사와 이야기(현실)와 분리된 대사의 공존은 역으로 대사를 뱉는 주체를 복잡하게 비추어 인물의 욕망과 혼란을 살아있게 한다. 관객들은 뭔가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자꾸 밀려드는 것들이 혼란스러워 뭔가가 이해를 잠깐씩 끊어놓는다는 인상도 받는다.

<갈매기>의 ‘코믹성’은 비도덕주의를 구축하는 데 보탬이 된다. 극 중간의 유머는 예상보다 깊숙이 치고 들어가 관객을 웃겼다가 돌아온다. 유머는 둘 사이에서 또는 비극 자체에서 빠져나왔다가 기다리고 있는 상대방에게로, 기다리는 있는 혼돈으로 돌아온다. 유머는 이질적으로 본래 이야기에 씌워진다.

주인공 트레블레프를 비롯해 그의 어머니 아르까디나, 트레블레프가 사랑하는 소녀 니나는 모두 타인을 상처 입히려는 본능과 상처를 돌려받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돌발적이고 피 흘리며 박제된 세계 밑으로 쓰러지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혹독한 시간과 그 냉기를 비도덕적으로 견디는 인물이 있다.

등단한 트레블레프가 스탠드 앞에 앉아 독백하는 장면이나 아르까디나, 트리고린, 마샤 등이 식탁에서 로또를 하는 후반 장면은 강렬했다. <갈매기>가 이런 연극이었다면 <갈매기>를 본 적 없는 것 같다. (연극이 낯설고 이상했던 시절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공연이 <갈매기>였는지 <벚꽃 동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트레블레프의 자의식이나 트리고린의 이중성은 이번 <갈매기>가 좋았던 첫 번째 이유지만 감상을 옮기지 못했다. 둘 사이 연결고리는 생각하는 만큼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길 잃는 동안 답답하고 회의적이었고 비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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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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