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2월 1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복수’를 위해 몸 던지는 사랑과 신의, 희생과 인내를 보여준다. 복수가 인간의 중요한 가치던 시절을 담는다. 호탕하고 순수한 인물을 통해 150분 동안 선 굵은 고전적 재미와 연극적 재미를 준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이야기가 강한 연극이다. 인물이 존재하는 이유와 사라지는 이유는 정직한데 그 정직함이 감동적이고 때로는 압도적이다. 어떤 인물은 잠깐으로도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을 달리게 한다. 중간중간의 독백마저도 여전히 다른 인물과 대화 하고 있는 듯하며 이야기는 쉬지 않고 간다. 인물의 독백으로 이야기 이상의 철학을 전달하는 여타 고전극과는 차이가 있다. 연극은 다량의 언어로 구성되기 때문에 집중하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전개는 몰입도 높은 영화처럼 관객을 긴장하게 한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권선징악 적 비극이다. 어쩌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요소로 통쾌함과 먹먹함을 함께 안긴다. 복수를 위한 고통은 무대 위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구도 복수심을 버리지 못한다. 복수는 인간의 불변 가치들을 먹으면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가 결국 그 위에 섰을 때 다시 떨어진다. 복수가 실현되는 순간 비극은 다시 인지되고 다시 확인된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그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 권선징악이라는 기대감을 끝까지 간직한다. 주제의 표면적 힘을 커튼콜까지 이어가며 권선징악의 기쁨은 극 후반의 외로움, 허무함 따위와 균형을 이룬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는 고선웅 연출의 유머가 있다. 연극 <홍도>에서 처음 접한 고선웅 연출의 유머는 작품의 통속성 또는 비극성에 자유로움을 가미하는 역할을 한다. 유머는 비극을 모순적으로 부각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수하게 관객을 웃기기에는 강도도 약하다) 대신 이 유머코드는 지나친 비장 지나친 통속을 종종 은근히 견제한다. 비극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별로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연극은 벌거벗겨진 언어를 통해 그리고 배우와 배경이라는 매개를 통해 시간적 공간적 구분이 생길 수 있다. 감정이입에 따라 장면은 뚝뚝 끊어지고 강렬하게 체험된다. 순간의 감정으로 슬픔,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는 그럴 기회가 많다. 그리고 유머는 그 옆에서 별것 아닌 듯 자리해 극을 좀 더 자유롭게 한다. ‘암전 후 이곳은 다른 시간 다른 곳이다’, ‘소품의 등장으로 이곳은 다른 시간 다른 곳이다’와 같은 선언을 한다. 이 거짓말(유머)은 관객의 감정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훈련시킨다. 관객은 인터미션과 공연 직후에 실소를 자아낸 장면을 가지고 서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극적 감정은 어떤 인물과도 남겨진 자신의 고통을 공유하지 못했던 주인공 정영처럼 관객 역시 혼자 간직하게 된다. 그러나 권선징악의 통쾌함은 연극 속 유머처럼 밖으로 꺼내도 별다른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선택을 해도 된다. 이것은 연출의 주문일 것이다. 이야기 안에서는 너무 진지한 것도 너무 가벼운 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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