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우외환으로 풍전등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보호무역주의 강조로 글로벌 수요 감소에 따른 수출 악재 
반(反)기업정서, 잘못한 것은 꼬집되 순기능도 잊어선 안돼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장기소비침체, 세계보호무역주의 강조 추세, 국내 정치 불안 등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요소들이 증가하며 한국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이에 일요서울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2017년 대한민국에 경제에 몰려온 불안 요소를 검토하고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윤 전 장관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까지 지낸 행시 출신 정통 경제 관료다. 그는 평소 대쪽같은 성향과 추진력으로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로 유명하다.

- 2018년 경제위기설 등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원로로서 현재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는가?

▲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일기예보에 쓰는 말로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재해와 동시에 발생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닌 대형 악재가 되는 현상이다.

경제학 용어로는 단선적인 요인 두세 개가 하나의 큰 폭풍이 돼 경제 전반을 흔들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2018년 경제위기설 같은 예측도 현재 퍼펙트 스톰이 한국경제를 강타하기 때문이다.

퍼펙트 스톰을 만든 단선적인 요인들을 하나씩 살펴보자면 먼저 수출 침체가 있다.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은 수출인데 지난해 11월까지 수출이 26개월간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11월부터 회복세를 보이지만 원천적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글로벌 수요가 부족한 마당에 수출이 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부터 트럼프의 등장까지 세계 경제는 점차 보호무역을 중시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글로벌 수요를 점차 낮추게 만들고 수출에 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두 번째로는 불안한 정치상황으로 국내 투자가 죽었다. 본디 정치가 안정돼 뒷받침 하지 않으면 경제가 바로 설 수가 없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국내 정세 불안과 탄핵 정국으로 국내 투자는 다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이 투자하는 것 외에 가계도 소비를 해야 시장이 돌아가는데 일자리 찾기는 갈수록 힘들고 정치는 불안정하니 돈 쓸 마음이 생길 수 없다.

이처럼 각종 요인들로 한국 경제는 3가지 축인 수출·투자·소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온 것이다.

동양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라 안팎이 복잡한 현 시국을 내우외환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한국 경제는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풍전등화라 할 수 있겠다.

- 해결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각에선 올해 경제성장률이 2.5% 이하가 될 것이라는 추정한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어떨 것 같나.

▲ 지금 당면한 문제들이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해 정확히 해결 방안이 하나 일 순 없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컨트롤 타워의 복구다.

정부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갈 리 없다. 지금 임시정부 비슷한데 무슨 힘이 있겠나. 일단 이 정국이 빨리 정리가 되고 정부와 사회가 빨리 바로서야 한다.

경제성장률은 2.5%만 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근본적인 투자의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이 투자를 하고 이것이 확대 재생산돼 고용이 창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의 상황으로 보면 회장이 국회에 갔다가 특검에 불려갔다가 헌법재판소에 갔다가 기업을 돌볼 시간도 없다.

기업이 투자할 환경이 안 되고 투자를 한다고 해도 국내에는 노동의 경직성 때문에 투자를 잘 안하려 한다. 이것 또한 문제다. 비이성적인 노조의 파업으로 기업들이 전부 국외에 공장을 짓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 불황에 기업이 문을 닫을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제 밥그릇만 챙기자는 식의 일부 노조들의 파업은 위험하다. 이런 식으로 내년까지 이어지면 2% 성장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국내 대기업들이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부정청탁 논란이 일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또 이는 반(反)기업 정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지?

▲ 먼저 이런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게 된 데는 일단 기업의 책임이 크다. 기업이 불공정 행위를 하거나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를 실천하지 않거나 또 이번 경우처럼 권력의 농단에 놀아난 것들은 분명 지탄받아야 할 일들이다.

하지만 국민들도 기업의 순기능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기업은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기업이 국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주주에게 배당 주고 정부에 세금 내고 직원들에게 임금 주고 사회 공헌도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같이 작은 나라에서는 기업이 국외에서 물건을 팔아 벌어온 돈을 나눠 갖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재벌은 때려 죽여야 한다’ ‘국외 헤지펀드 같은 곳이 인수해야 한다’식의 사고는 위험하다. 결국 이것은 내 먹거리를 내가 발로 차는 것과 같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걸 혼내고 고치면 된다.

- 반기업 정서와 맞물려 완화되고 있던 금산분리법도도 다시금 강화하자는 의견이 정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금산분리를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재벌이 금융 산업까지 혼용하다 보면 이를 사금고화 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부작용이다. 그리고 부작용은 조치를 취해서 억제하면 되는 것이지 이 때문에 흐름을 아예 막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하고 이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국제 무대로 자꾸 내보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국내에서 재벌이라 말하는 삼성, 현대 등 기업은 국제 시장에서는 보잘것없는 규모다.

금융기업은 더하다. 국내 금융기업들의 자본금을 다 합해도 UBS(스위스 금융기업)나 시티뱅크 하나만도 못하다. 그런데 이에 산업자본 금융자본까지 나누라 하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 자체가 안 된다.

예를 들면 1억 달러짜리 사업에 자본금이 10억 달러 있고 1억 달러가 있는 기업이 도전했다고 치자. 어느 기업을 선택하겠는가?

한국은 아직 금융 자본 자체가 발달이 덜 됐다. 하지만 실물 자본의 경우는 다르다. 현재 국내 대기업들은 백 몇조원씩 가지고 있다. 그 자금을 투자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한국이 핀테크를 시작도 못하고 있는 이유도 금산분리로 이런 걸 다 막아서 그런 것이다.

- 청탁금지법 소위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정계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취지는 옳다. 하지만 처음에 준비를 너무 하지 못하고 도입됐던 건 사실이다. 장기 내수 침체에 김영란법 도입이 한몫하고 있는 것은 맞다. 이 법이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어떻게 해야 처벌을 받는가 등의 정보가 너무 없는 상태로 자리잡아 버렸다. 그렇다 보니 소비는 자연히 더 침체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축산업자, 화훼업자들을 보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소상공인을 빼놓고 경제 성장을 논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 미국 경제를 빼놓고 한국 경제를 논할 수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새 판도에서 한국은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 가?

▲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 소위 아메리카 퍼스트(Americ a first)에 바탕한 보호무역주의를 심화하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러면 우리 수출전선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겠다고 한 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아직 이렇다 할 정확한 언급은 없었기에 이 시기에 우리 정부는 철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준비밖에는 답이 없다. 정부가 각종 위험성을 놓고 예측해보며 FTA 수정 요구, 방위비 추가 부담 요구에 까지도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 2017년 비교적 전망이 밝은 업계는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전망이 밝은 업계가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꼽자면 지난해 수출이 잠시 살아난 게 반도체, 철강 제품, 석유 관련 제품 덕택이었다. 이 분야에 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 마지막으로 본지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현 시국이 빠른 시일 내로 정리돼 정부, 사회가 어서 안정되길 바라고 있다. 모두가 힘들겠지만 이 상황을 잘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전하고 싶다. 

윤중현 전 기재부 장관 이력
▲경상남도 마산 출신 (70) ▲서울대 법대 ▲미국 위스콘신 대학원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세제실 심의관, 증권국장, 금융국장 ▲재경경제원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겸 금융감독원장 ▲제2대 기획재정부 장관 ▲현 윤경제연구소 소장·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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