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외환위기 비해 60배 올라 ‘실적+주주환원’ 호재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주식에서 황제주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비싼 주식, 개인이 투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주식을 말한다. 보통 100만 원 이상의 주식을 황제주라 한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23분 삼성전자 주가가 200만 원을 넘어섰다. 슈퍼 황제주가 탄생한 것이다.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최순실 게이트 등 여러 악재에도 삼성전자는 장중 최고가를 갈아치우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황제주’에 등극했다.

75년 6월 1050원에 첫 상장…42년 만의 쾌거
장중 200만 원 돌파에 액면 분할 요구 재주목

삼성전자 주가 상승세는 작년 4/4분기 호실적과 4조 원대에 육박하는 현금 배당 결정 등이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불러온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뉴욕 증시 다우지수가 사상 처음 2만을 넘어서면서 코스피에 불어닥친 투자 열기도 한몫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4일부터 12일 사이 삼성전자 주식 2780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지난달 16일부터는 순매도로 돌아서며 25일까지 1730억 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은 지난달 4일부터 25일까지 줄곧 삼성전자를 사들였다. 누적 순매수 규모는 2600억 원가량에 달한다. 지난해 2/4분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주가는 130만 원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7개월간 무려 49% 넘게 상승하면서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삼성전자가 1975년 6월11일 상장 첫날(1050원) 이후 200만 원대 주가를 기록한 것은 42년 만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60배가 올랐다.

증권업계는 삼성전자가 주가를 이처럼 끌어올린 배경은 실적과 강력한 주주환원정책이 반영된 데 따른 것이다. 갤럭시노트7, 이재용 부회장의 특검 조사 등 악재 성격의 요소들이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실적과 주주환원 정책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박정준 JP모간 전무는 “몇 년간 계속될 3D 낸드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의 성장, 강화된 주주환원 정책이 주가 상승을 견인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액면 분할 가능성 열려 있어

주가 200만 원 시대가 열리면서 액면 분할에 관심이 모인다. 500만 원 가까이 육박했던 SK텔레콤과 역대 두 번째로 300만 원 고지를 밟았던 아모레퍼시픽 등 ‘슈퍼황제주’들이 액면 분할을 시도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롯데제과가 주가 200만 원대에서 지난 3월 액면 분할을 했다.

또 외국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액면 분할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어 액면 분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한다.
액면 분할을 하면 주식의 액면가를 일정한 비율로 나눠 주식 수를 늘릴 수 있다. 주식 수가 늘어나는 만큼 1주당 가격이 낮아진다.

특히 100만 원이 넘는 소위 고가 황제주를 액면 분할하면 그동안 해당 주식을 사고 싶어도 비싸 엄두를 못 냈던 일반 개인투자자들까지 살 수 있게 된다. 거래 활성화로 주가도 상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주가 100만 원 이상의 소위 황제주들이 여럿 액면 분할을 했고 실제로도 거래 증가와 주가 상승효과를 누렸다.

실제로 SK텔레콤은 2000년 3월 6일 종가 기준 481만 원까지 올랐다가 1개월 후 액면가를 5000원에서 500원으로 쪼갰고 SK텔레콤에 이어 300만 원 고지를 밟았던 아모레퍼시픽도 2015년 3월 역시 주당 액면가를 5000원에서 500원으로 나눴다.
가장 최근에는 200만 원대 황제주였던 롯데제과가 지난해 3월 주당 액면가를 5000원에서 500원으로 바꾸는 분할을 결정했다.

다만 이경민 대신증권 선임연구원은 “황제주라고 모두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라며 “음식료주들은 성장주로 분류돼 있고 밸류에이션도 높았던 경우가 많은데 중국 사드 이슈와 미국 금리 인상 등이 부담으로 작용, 최근 주가가 많이 내렸다. 그렇다고 바닥을 찍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혹평했다.

실제 오뚜기, 오리온 등 과거 황제주 자리를 차지한 바 있는 음식료주는 주가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리온은 이달 들어 60만8000원까지 내리며 신저가를 기록했다. 지난 23일 신한금융투자는 오리온의 목표가를 기존 100만 원에서 85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하이투자증권도 목표가를 105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내렸다. 

지난해 2월까지만 해도 140만 원선에서 거래되던 오뚜기는 올 들어 60만 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IBK투자증권은 올해 소스류와 유지류 경쟁강도 심화 및 내수 소비침체 분위기를 반영해 목표가를 110만 원에서 88만 원으로 내렸다. 

롯데칠성도 아직 황제주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최근 하락세가 뚜렷하다. 롯데칠성은 최근 1년간 고점 223만1000원에서 142만 원대까지 주저앉았다.
한편 삼성전자가 장중 200만 원 고지를 뚫으면서 이건희 회장 등 오너일가에 대박을 안겼다.

이건희 회장, 주식 가치 15조 돌파

지난달 2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이 회장의 상장사 주식자산 가치는 26일 종가 기준 15조220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10조4973억 원보다 4조7235억 원(45.0%)이나 급증한 것이다.
지분 3.52%를 보유한 삼성전자가 26일 장중 사상 처음으로 200만 원을 넘어서는 초강세를 보인 덕분에 2년째 와병 중인 이 회장의 주식자산 평가액도 덩달아 급증했다.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도 1년 새 9292억 원(75.5%) 늘어나 2조1000억 원을 넘었다.

다만 이 회장 부부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주식자산 가치는 삼성물산 주가 하락으로 8650억 원(11.3%) 줄어든 6조7714억 원으로 추산됐다.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의 주식자산 가치도 5440억 원(24.2%)씩 증발해 각각 1조7046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부담을 지적한다. 이 부회장이 승계받을 수 있는 지분을 물려받자니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삼성그룹 지배력도 취약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부회장의 딜레마인 셈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