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재단은 서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과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 어쩌다 이런 관계를 맺게 됐을까. 기업은 재단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기업의 시커먼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 감면이라는 법의 허점을 이용, 재단은 기업의 지배·승계·상속은 물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치권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각종 꼼수가 판을 친다. 일요서울은 각 기업의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며 돕고 있는지 시리즈로 알아봤다. 

롯데그룹의 재단은 롯데장학재단, 롯데복지재단, 롯데삼동복지재단, 롯데문화재단 등 총 4곳이 있다. 재단은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할 수 없고 이사장 및 이사회 구성원이 재단의 ‘운영권’을 갖는다. 이사장은 이사회 구성원에 자신의 자녀나 측근을 앉혀 운영권을 행사하거나 이사장직을 물려주는 게 보통이다.

롯데장학·복지·삼동복지재단 3곳의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 신영자 씨다. 롯데문화재단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롯데장학재단은 신 총괄회장이 1983년 개인재산 5억 원을 출연해 ‘삼남장학회’로 설립했다가 1996년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신 총괄회장은 “자질은 우수하나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업에 전념하도록 장학사업을 설립하겠다”며 당시 이 재단을 만들었다.

롯데복지·삼동복지재단은 각각 외국인 근로자 지원, 울산지역(신 총괄회장 고향)의 발전 등을 이유로 1994년, 2009년 설립됐다. 롯데문화재단은 신동빈 회장이 문화예술지원사업을 위해 2015년 설립해 역사가 가장 짧다.

장학재단, 그룹 영향력↑

이 가운데 장학사업이 주 목적인 롯데장학재단은 최근 사업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는 분위기다. 2014년 147억 원의 목적사업비는 2015년 58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신영자 이사장이 금품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되면서 더욱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롯데장학재단은 롯데그룹 주요계열사의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재단은 ▲롯데제과 8.69% ▲롯데칠성음료 6.28%(의결권 없는 주식 4.83% 제외) ▲롯데푸드 4.1% ▲대홍기획 21% ▲롯데캐피탈 0.48% ▲롯데정보통신 0.63% ▲롯데역사 5.33%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롯데제과의 3대 주주, 광고 계열사 대홍기획의 2대 주주, BNK금융지주의 3대 주주다.

롯데장학재단이 그룹에서 ‘미니 지주사’로 불리는 이유다. 계열사는 아니지만 BNK금융지주 지분 1.77%, 삼광글라스 0.36% 등도 갖고 있다. 총 지분 가치는 수천억 원에 달한다.

롯데제과는 그룹의 모태이자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핵심계열사다. 이 회사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신동빈 회장이 이 회사 주식 4만180주를 사들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신 회장은 롯데제과 지분율을 8.78%→9.07%로 늘렸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는 현재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주요 상장 기업의 분할·합병으로 지주사체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롯데장학재단은 이 계열사들의 지분을 모두 상당부분 가지고 있다. 오너가와 재단의 지분을 더하면 지배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단의 특징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공익재단은 5% 미만의 계열사 지분에 대해서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상속·증여세 면제 범위가 10%까지 늘어난다.

개인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하면 막대한 세금이 붙지만, 재단을 만들어 주식을 기부하고 이사장 자리를 차지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롯데장학재단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2007년 기부한 공시지가 500억 원가량의 토지를 하루 만에 롯데쇼핑에 700억 원에 팔기로 하고, 두 달 뒤 다시 가격을 올려 1030억 원에 매각한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롯데장학재단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 바 있다.

결과적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한 재단이 본래 목적은 축소하고 총수일가의 그룹 장악력이나 이익만 높인 셈이다.

새 이사장 누가 될까

롯데에서 재단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재단을 활용할 수 있다. 신 회장은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롯데제과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인 바 있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1년간 12차례에 걸쳐 지분을 사들여 3.48%에서 3.96%로 늘렸다.

신 회장은 같은 해 5월 지분 4.88%에서 9.07%까지 늘렸다. 당시 1.4% 포인트에 불과했던 지분 차이는 현재 5%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다. 여기에 롯데장학재단의 지분까지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인다면 차이는 더 커진다.

현재 신 이사장은 롯데재단 3곳의 이사장 직 해임 위기에 처한 상태다. 앞서 재계 관계자는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임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에 실형(징역3년)을 선고받은 신영자의 이사장직 박탈은 시간문제”라며 “공익사업을 하는 만큼 도덕성 결여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이 경영권 분쟁 초기 신동주 전 부회장 편에 섰다가 돌아선 건 신 회장에겐 다행이다. 신 이사장은 지난해 구속 기소된 후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사임했지만 여전히 여러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이사장에 신동빈 회장이나 측근이 앉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바로 재단이 그룹 지배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공익사업이 목적이라면 오너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인사가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