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가 야심작으로 세계시장에 내놓은 갤럭시7이 연이은 발화·폭발로 생산 및 판매를 영구적으로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일로 삼성은 엄청난 금전손실을 보았고 수십년간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라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경쟁업체인 애플사를 지나치게 의식해 ‘속도전의 함정’, 즉 ‘빨리빨리 문화’에 빠진 결과였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진위 논란을 비롯해 500 여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32명이 숨진 성수대교 붕괴사고 역시 우리 한국인의 DNA에 뿌리박힌 성과 위주의 “빨리빨리” 문화가 원인이었다. 무슨 일이든 빨리 하는 것을 훌륭한 가치로 삼다가 당한 참사였다.

그랬던 ‘빨리빨리’ 정신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태에서도 여지없이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촛불시위와 이에 편승한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무조건 ‘빨리빨리’ 처리하려고 안간힘이다. 일터지자 국회는 분위기에 사로잡혀 일사천리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탄핵 사유들을 헌법재판소에 보내놓고 ‘빨리빨리’ 탄핵안을 인용하라고 밀어붙이고 있다.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고 으름장이다. 박근혜 대통령더러는 ‘빨리빨리’ 하야하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박 대통령을 내쫓은 뒤 ‘빨리빨리’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난리다.

우리 한국인은 벌써 삼성 갤럭시 사태를 잊어버린 듯하다.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건도 다 뇌리에서 사라진 것 같다.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면 그것으로 끝인 미국의 경우 정황만으로 탄핵하지 않는다.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증거를 찾기 위해 무려 2년 동안 조사했다. 특별검사와 의회가 이 기간 끈기 있고 차분하게 적법절차를 거쳐 증거를 수집했다.

반면 박 대통령 탄핵소추 과정은 글자 그대로 속전속결(速戰速決)로 처리됐다. 최순실 사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게 2016년 10월 말이었다. 국회가 2016년 12월9일 朴 대통령을 탄핵했으니 두 달도 채 안 걸린 선출 대통령의 탄핵과정이었다. 탄핵소추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3월13일 이전에 판결하겠다고 한다. 5개월 만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막중한 재판이 어떤 특정 시점의 일정을 목표로 두고 그 범위 안에서 진행돼서는 안 될 일이다. 탄핵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재판이 어떤 결론으로 귀결되어도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복 투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헌재의 결정이 갈등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결코 급하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 또한 옳게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빨리빨리’ 뽑으면 또한 ‘빨리빨리’ 그만두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논어에 ‘욕속부달(欲速不達) 욕교반졸(欲巧反拙)’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서두르면 도리어 일이 진척되지 않고 너무 좋게 만들려다가 도리어 그대로 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뜻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마음이 조급하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에겐 서두르다가 낭패 본 역사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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