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9일부터 매 주말마다 열리기 시작한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촛불 시위가 “다수의 폭거”로 일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정권 쟁취의 도구로 변질되어가는 감을 금할 수 없다. 일부 국민들은 최순실 씨 구속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친 촛불 시위 구호와 함성을 ‘촛불 민심’이라고 한다. 촛불 시위 지지자들은 ‘촛불 민심’을 ‘절대 선(善)’이고 ‘정의’이라고 과신한다. 어느 일간지는 촛불 시위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역사적인 명예혁명의 첫 걸음’이라고 터무니없이 침소봉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 시위 참가자들은 거창하게 국가체제를 뒤집는 ‘혁명’을 위해 나선 건 결코 아니다. 어느 시위참가자의 말 대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에 정말 화가 나서 나왔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촛불 민심”을 들먹이며 대통령 즉각 하야, 재벌 구속, 혁명 등을 계속 외쳐대는 건 ‘촛불 민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며 촛불 시위를 계기로 정권을 뒤엎겠다는 의도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촛불 민심’이 일부 정치권과 국민들에 의해 절대선이고 정의로 과신된다는 것은 위험하다. ‘촛불 민심’이 자칫 ‘다수의 폭거’로 변질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권력쟁취 도구로 악용된다는 데서 그렇다.     

그러한 ‘다수의 폭거’ 조짐은 1월19일에도 드러났다. 이 날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별수사팀의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그러자 야당과 네티즌들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조 판사를 향해 악의에 찬 폭언들을 쏟아냈다. 어느 네티즌은 조 판사가 “삼성 그룹 법무실장으로 취업해 돈 방석에 앉을 것” 등 전혀 근거 없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측은 “사법부가 미쳤다”며 미친 듯 막갔다. “촛불 민심”을 절대 선으로 맹신하는 사람들과 정권 쟁탈의 기회로 잡아채려는 사람들이 촛불 시위를 ‘군중의 폭거’로 폭발토록 선동함을 반영한다. 

1835년 ‘미국 민주주의’를 저술한 프랑스 지성인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심’에 편승한 ‘다수의 폭거’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미국 볼티모어의 한 신문기자가 1812년 영·미전쟁을 반대했다가 폭도로 변한 시위 군중에 의해 무참히 참살되었다고 소개했다. 당시 시위 군중은 미국의 대영(對英)전쟁이 절대선이고 정의라고 맹신했다. 그러나 용기 있는 볼티모어의 한 신문기자는 대영전쟁을 반대했다가 시위대에 잡혀 살해되었다. 토크빌은 이 신문기자 살해사건을 ‘다수의 폭거’라며 민주주의에선 ‘다수의 폭거’를 경계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경고했다. 

마이클 브린 전 주한외신클럽 회장은 지난해   12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촛불 시위와 관련된 논문을 실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군중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해 법치를 붕괴시킨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민심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밖에도 그는 “한국에서 민심은 법 위에 있다”고 꼬집었다.

토크빌과 브린의 경고대로 ‘군중의 감정’은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해 ‘다수의 폭거’로 이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일정한 선을 넘어서’ 헌재의 탄핵 기각도 ‘혁명’으로 뒤엎겠다고 협박하였다. 우리 국민은 ‘촛불 민심’을 권력 쟁취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 경계의 대상은 오랏줄에 묶여 징역형을 기다리는 초췌한 최순실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분노와 대통령 탄핵 함성 뒤에 숨어서 권력을 잡아채려는 정치권의 야비한 ‘정권농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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