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문장은 어쩌면 이란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란에서 내내 느꼈던 나의 감정들은 오로지 이란이잖아, 이란이니까 그리고 이란이기 때문이었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어설픈 은유도 불필요하며 현실적인 수사가 필요치 않은 곳. 표현을 허락한다면, 단 한 마디. 그 이름, 이란이다.

세상의 반, 에스파한
 
페르시아인들은 25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 에스파한을 ‘세상의 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3~14세기 몽골과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지만 16세기 말부터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했고 옛 페르시아 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는 에스파한은 한때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중심에서 이끌었던 수도였기에 사람들의 지역적인 자부심이 대단하다.
밤에 피는 꽃, 시오세 다리


남북으로 이란을 가로지르는 65번 도로를 따라 에스파한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충분히 어둠이 내린 때였다. 시라즈를 일고여덟 시간이나 지나쳐 왔지만 아직도 내 뒤에는 시라즈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라도 빨리 에스파한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숙소 앞의 시오세 다리를 보러 나갔다.

‘생명을 주는 강’이라 불리는 자얀데강 위로 마치 수십 개의 작은 전구가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33’이라는 뜻의 시오세 다리. 검게 흘러가는 강 위로 단정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조명은 마치 성화처럼 화사하게 피어있다.

에스파한 사람들은 단순히 이 길을 오가며 하루를 정리하고 또 내일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고작 다리 위라는 공간을 삶 속의 ‘길’로 끌어온다. 시를 사랑하는 이란 사람들은 절대 큰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며 아무도 이 ‘길’을 뛰어 다니지 않는다. 그들의 그 작은 소리는 다리 위 33개의 아치를 절대 넘지 않는다. 겨우 달빛 어린 자얀데강 위에 조용히 내려앉을 뿐.

<info> 허주 다리
자얀데 강에는 총 11개의 다리가 있다. 1650년에 지어진 허주 다리(이란에서 kh는 ‘ㅎ’ 로 발음한다)는 시오세 다리와 함께 에스파한 야경의 명물로 꼽히며 건축학적으로는 좀 더 세련되고 복합적인 구조물로 평가받는다.
기독교인들의 성지, 아르메니안 교회 반크

 
중동지역 무슬림들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 이슬람 율법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이란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새로움을 넘어 의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란은 의외로 예수의 12사도인 유다와 시몬이 묻힌 곳일 정도로 기독교의 무수한 자료와 실제 역사가 현존하는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란 바로 위에 위치한 아르메니아는 역사상 기독교를 국교로 처음 받아들인 나라로 예전부터 에스파한 남서쪽 아르메니아 타운에 기독교 정교회인 반크교회를 세워 자신들의 종교를 꿋꿋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사파비 왕조의 압바스 1세는 이재와 무역에 능한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이란에 이주토록 허용했고 기독교를 인정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자치권을 주어 에스파한의 융성에 공헌토록 했다.

1660년 수도원에서 교회로 개조된 반크교회는 이 지역에 있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13개 중 가장 크며 역사적으로도 무척 성스러운 장소이다. 시라즈에도 기독교 성지인 시몬교회가 있었지만 내부로는 들어가 볼 수 없었기에 반크를 방문하는 것은 무척 설레고 특이한 경험이었다.

특히 반크의 예배당에는 화려함을 넘어 현란하기까지 한 예수의 일생과 최후의 만찬 등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어 세계의 그 어떤 유수한 성당과 교회보다도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다. 성화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 의자와 탁자 그리고 기둥과 천장, 바닥 구석구석까지 빼곡하게 그려져 있어 이들의 깊은 신앙심을 느끼게 한다. 살면서 만일 ‘눈이 부시고 싶다’는 드문 바람이 생길 때, 반크에서라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지도 모르고 그것은 ‘구원’이라는 이름과 가까워진다

20개의 기둥 그리고 20개의 물속 기둥,
체헬소툰 궁전

 
사파비 왕조 때 압바스 1세의 별궁으로 지어졌다는 체헬소툰 궁전으로 향했다. 페르시아 건축물의 건축학적 중심과 미적인 균형은 대부분 직사각형의 연못이 잡아주고 있는데 역시 체헬소툰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0개의 기둥이 있는 궁전’이라는 뜻의 체헬소툰은 원래의 스무 개의 기둥에 더해 스무 개의 연못에 비친 기둥을 합쳐 부르는 것이다. 낭만적이라거나 로맨틱하다는 말은 이럴 때 붙여 마땅하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 입구의 천장 문양은 다른 색들로 칠한 것이 아닌, 각각 다른 색의 나무 조각들로 짜 맞춘 것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왕의 연회 장면과 당시의 전쟁을 묘사한 여섯 개의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은은한 빛에 감겨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오스만투르크와의 전투를 그린 그림과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이라든가 동성애를 나타내는 남성들의 그림이 대담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인도 델리에서 보았던 ‘후마윤 무덤’의 바로 그 주인공인 후마윤이 이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후마윤은 당시 페르시아가 전투에서 밀리고 있을 때 이곳까지 원정을 와서 압바스 1세를 도와줬다고 전해진다.

각각의 그림은 놀랄 만큼 사실적이며 그림에 엄청난 수고와 열정을 아끼지 않았음이 한눈에 보인다. 예술을 위해 노동과 헌신을 쏟아 부은 페르시아인들. 그들에 대한 감탄은 이미 존경의 영역으로 일찌감치 넘어간 지 오래다.
 
페르시아 건축의 교과서, 저메 모스크

에스파한의 저메 모스크는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기도 하며 18세기 이전에 지어진 모스크 중에선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금요일’과 ‘집회’라는 뜻을 지닌 저메는 마치 이탈리아의 두오모 성당처럼 여느 도시마다 하나씩 있어 오랫동안 지역 무슬림들의 종교적인 회합 장소 기능을 해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저메가 1300년 동안 이곳을 통치했던 여러 왕조들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개축과 보수를 해왔다는 점인데, 그래서 이곳은 오랜 기간에 걸쳐 페르시아 건축을 집대성한 박물관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다. 모스크 내부는 아무런 색을 입지 않고 단정한 무명 저고리를 입은 것처럼 무척이나 수수하고 절제돼 있다.

작은 돔과 기둥들은 회랑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 저메 모스크 자체가 하나의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느껴진다. 이곳의 크고 작은 돔의 개수는 무려 470개라고 한다. 내부는 조명 하나 밝힌 것이 없지만 자연 채광을 최대한도로 활용해 결코 어둡지 않고 은은하게 빛이 퍼진다.

커다란 공간인 예배당으로 나가면 높다란 천장 끝에 돔의 안쪽이 보인다. 오로지 벽돌과 접합 물질만을 가지고 1300년 동안 결코 쓰러지지 않는 이런 구조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의아함을 넘어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의도적인 치장을 하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 는 무엇보다 맑게 퍼진다.

그것은 벽돌과 1300년을 함께해 온 틈사이의 흙이 내뱉어주는 페르시아의 소리였을 것이다. 그 오랜 함께함에 벽에 손조차 대기 주저하게 되는 저메 모스크. 그 압도감에 눌리고 압도감은 위압감으로 전이되지만 결국 존재감으로 마감되는 저메.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장면에 이상한 한숨이 나오는 곳.

에스파한의 모든 것, 이맘 광장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이맘 광장은 중국의 천안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며 건물로 둘러싸여진 형태로는 제일 크다고 한다. 만일 에스파한에 단 하루만 머무른다면, 이곳에서 모든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광장은 에스파한을 넘어 이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쪽의 이맘 모스크와 동쪽의 셰이크 로트폴라 모스크 그리고 서쪽의 알리카푸 궁전으로 구성돼 있으며 다소 현대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에스파한에서 가장 크다는 바자르가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맘 모스크

며칠 동안 많은 모스크를 보았음에도 이맘 모스크의 비취 색 돔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던 이유는 이맘 광장의 길고 긴 직선들 속에서 유독 돔의 곡선이 도드라졌기 때문이었다.

1800만여 개의 벽돌과 47만2500개의 파란색 타일로 장식된 이맘 모스크는 종종 이란 건축 예술의 정수로 여겨지며 이란의 ‘블루 모스크’로 불린다. 외부에서 보았던 비취색의 모스크는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이미 푸른색이 어려 있다.

애초부터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타일의 색깔이 변하며 모스크 전체의 색이 달라 보이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색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는 사막의 나라 이란에서 유독 푸른색을 쓴 이유는 이슬람에서는 푸른색을 천국의 색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강렬하게 파란 세상, 하나의 물음을 던져보다가 황급히 지워본다. 이란이라는 나라가 사막에 있지 않고 만약 지중해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알리카푸 궁전

‘숭고한 문’이라는 뜻의 알리카푸는 압바스 1세가 이맘 광장의 원래 용도였던 폴로 경기를 관람하고 음악을 듣기 위해 따로 조성한 비밀 별궁이다.

알리카푸의 특이점은 각각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건물의 높이가 달라 보인다는 점인데 앞에서 보면 2층, 옆에서 보면 4층으로 보이는 총 6층짜리 건물이다. 음악당 내부의 외벽은 항아리와 꽃병, 악기 등과 같은 무척 특이한 문양으로 꾸며졌는데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고 내부에서 공명이 극대화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서쪽 하늘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마감하는 압바스의 하루. 그래서 알리카푸 내부의 색은 그런 석양빛을 몹시도 닮았다. 한편 동쪽의 로트폴라에서 서쪽에 있는 알리카푸까지 연결되는 지하통로가 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일반인에게는 개방되고 있지 않다.

이란의 영혼, 테헤란

에스파한이 ‘이란의 심장’이라면 수도인 테헤란은 ‘이란의 영혼’이다. 이란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테헤란을 뒤에서 감싸고 있는 알보르즈 산맥은 테헤란보고 말한다. 내가 뒤에 있으니 무엇이든 하라고. 이란의 영혼은 그곳에서 나온다.

테헤란의 팔레트, 골레스탄 궁전

17세기 이란 정원과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골레스탄 궁전. 근세의 팔레비 왕조까지 오랜 역사동안 왕들의 즉위식이 열렸던 골레스탄은 테헤란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골’은 꽃을 의미하고 ‘스탄’은 땅을 뜻한다는 골레스탄은 연못과 정원 그리고 큰 홀과 몇몇의 방으로 구성돼 있는데 유럽의 성이나 아랍 지역의 모스크 같은 건축물들과는 모양이 다른 다소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궁전 내부에 장식돼 있는 거울 타일의 아름다움이 유명하다고 들었지만 공사 중인 관계로 내부 시설들을 둘러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궁전 외벽에 채색된 이란 특유의 화려한 타일은 벽에 마치 색색의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이 골레스탄을 충분히 가꾸고도 남는다. 적당한 세월을 입고 바랜 문양 그리고 조금은 멋스럽게 퇴색된 색들.

이란 을 여행하는 내내 느꼈던, 하늘을 쳐다보면 그 끝에 속눈썹이 비칠 정도로 맑은 하늘 아래라면 이곳이 비록 매연으로 자욱하다는 테헤란이라도 제일 먼저 골레스탄 팔레트를 펼쳐야 한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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