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상승하지 않는 지지율로 딜레마에 빠졌다. 촛불정국에서 어정쩡했던 행보가 촛불 세력의 외면을 받으면서 지지율 반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40세대로부터 멀어진 민심은 다시 호남지역에 부메랑이 돼 문재인 쏠림현상으로 반영됐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자강론’을 내세워 문재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경우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반문재인 구도로 선거판을 짜 중도.보수표를 통해 문 전 대표와 일합을 겨루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과거 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이 ‘호랑이굴론’을 내세운 3당합당으로 대권을 거머쥔 전례를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다. 안철수 발 YS정치 실험을 알아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2017년 신4당체제 문재인 빼고 범여권 세력 ‘포위론’
- 92년 대선 YS,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3당 합당


YS가 대권을 거머쥔 9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의 정치지형은 닮은 꼴이 많다. 안철수 전 대표가 YS식 대권 도전을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은 충족돼 있다는 게 국민의당 내 시각이다.

요건을 보면 첫째로 직선제-총선 소선거구제에서의 4당 체제를 꼽고 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이 125석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야당 1당이던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이 70석을 가져갔다. 다음으로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이 35석 순이었다. 확연하게 지역주의에 기댄 결과로 대구·경북의 민정당, 충청의 신민주공화당, 부산·경남의 통일민주당, 호남의 평민당으로 나뉘었다.

92년-2017년 대선 4당체제-3자구도 ‘흡사’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둔 현 정치지형 역시 신4당체제다. 작년 치러진 20대 총선 결과 원내교섭단체 이상을 기준(20석 이상)으로 3당 체제를 만들었지만 조기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분열하면서 신4당체제가 됐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있는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121석, 박근혜 대통령의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이 94석으로 여당이지만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다음으로 제2야당인 국민의당 38석, 구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바른정당이 32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구도는 다소 약화됐다. 민주당이 호남을 국민의당에 빼앗기면서 중부권(수도권+충청권) 정당으로 바뀌었지만 호남 국민의당, 대구/경북 한국당, 부산/경남 바른정당으로 13대 총선과 지역 분포의  유사성을 띠고 있다.

잠룡군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은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유력한 대선후보가 즐비했다. 게다가 제3 지대에서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여당보다는 신당 창당을 통해 독자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도 야권에서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손학규 등 강력한 후보가 존재하지만 여권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한 이후 대항마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나마 갈 곳 없는 보수층이 박근혜 수호천사 역할을 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몰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대표측이 제2야당 후보였던 YS가 대권을 거머쥔 결정적인 계기가 된 YS의 3당 합당에 주목하고 있다. YS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일성을 날리면서 1990년 민정+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을 만들어 여소야대와 4당체제를 깨버렸다. 3당 합당의 정치적 딜은 차기 대선에서 의원내각제 합의를 통한 권력분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YS는 대선전 폐기처분했다. 사실상 92년 3당합당으로 태어난 민자당은 거대 지역연합 여당으로 호남고립 구도를 만들었다.

호남 포위전략은 YS가 대통령이 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2년 뒤 치러진 대선에서 YS-DJ-정주영(국민당) 3자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지지층이 비슷한 정주영 후보가 16%를 획득해 YS표를 가져갔지만 YS는 DJ를 8%(200만표) 차이로 따돌리면서 승리했다.

현재는 지역구도가 그때처럼 견고하지 않다. 안 전 대표측은 지역보다는 인물에 집중해 ‘문재인 포위론’을 내세우고 있다. 현재 안 전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문재인, 안희정, 황교안 다음으로 4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문재인, 안철수, 범여권 후보(한국당+바른정당) 3자 대결로 흐를 공산이 높은 상황이다.

이럴 경우 범여권 후보와 연대 내지 단일화를 통해 ‘반문재인 정서’를 강화시켜 중도·보수 대 진보 양자대결로 몰고 가겠다는 복안이다. 설령 진보, 중도, 보수 3자구도로 흐를지라도 외연 확장성과 경쟁력이 있는 자신으로 중도·보수표가 몰려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YS는 3당 합당 과정에서 의원내각제를 고리로 삼았다면 안 전 대표 역시 개헌이나 연합정부를 통한 권력분점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38석이라는 제2야당의 대통령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하기는 힘든 게 정치 현실이다.

이는 문 전 대표가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반면 안 전 대표는 자강론을 내세워 문 전 대표와 야권연대나 단일화는 없다는 분명한 입장이다. 결국 안 전 대표가 양강 구도를 만들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선 범여권 세력과 연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국민의당 관계자들의 솔직한 심경이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2월1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강론이 맞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선거는 세력의 싸움 아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의원은 그 예로 “1996년 총선 때 JP의 자민련이 50석을 차지했다”며 “당내에서 ‘파워JP플랜’ 등 일종의 자강론을 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결국 JP는 DJP연합으로 정권교체 쪽에 가담한 적이 있다”며 자강론이 대두되고 있지만 향후 연합·연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의원은  제3지대의 바른정당과 연대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安, 범여권 연대 승부수 명분 찾기 ‘골몰’

한편 안 전 대표가 범여권 세력과 손을 잡을 경우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일단 정치적 명분이 필요하다. YS의 ‘호랑이굴론’처럼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명분에서 밀릴 경우 대선 승리는 둘째치고 정치적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내 호남 세력의 이탈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자칫 본게임도 하기 전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한 핵심 인사는 “어차피 이번 대선에서 문 전 대표에게 패할 경우 당내 호남 출신 정치인들 상당수가 탈당해 민주당행을 선택할 공산이 높다”며 “호남 민심 역시 불안한 상황에서 ‘차기는 없다’는 자세로 세게 붙어야 한다. 양강 구도만 형성되면 문재인을 비토하는 보수 세력이 어쩔 수 없이 안 전 대표에 몰릴 것”이라고 승리를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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