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다시 ‘꿈틀’ 아파트 2600여 가구 탈바꿈

1990년대부터 개발 바람…지난해까지 사업 표류
거주민 불만 여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문제’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 567-2번지에 있는 구룡마을은 화려한 도심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이다.

화재에 취약하고 쓰레기·폐수 등에 노출된 열악한 환경이라 계속해서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곳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개발 움직임이 있었으나 서울시·강남구·토지주·거주민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지난해까지 개발은 표류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이곳의 개발구역지정 및 계획안이 통과되고, 지난 3일 강남구청이 일부 토지주들이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며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일요서울은 서울 부촌의 상징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1.8km 떨어진 곳에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을 찾아 보았다.

구룡마을입구엔 버스차고지와 공영주차장이 있고 이 시설들 뒤쪽으로 1000여 가구가 집을 지어 생활하고 있다.

주민 대다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서울시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개발되며 거주지를 잃어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집들은 대부분 나무나 판넬에 천막을 씌운 형태고 난방이나 화재에 취약해 보였다. 마을 안에 공용화장실과 쓰레기 더미에서 나는 악취와 폐수는 열악한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수차례 시도됐던 개발 사업으로 버려진 집들이 많았다. 곳곳에 이주 신청 접수 공고가 붙어 있고 교회며 가게는 문을 걸어 닫은 곳이 많았다.

고철과 폐지를 정리하고 있던 한 거주민은 도시개발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늙고 돈 없는 사람만 남아

이곳에 들어 온 지 20년 정도 됐다는 그는 “개발 사업이 진행된다는 말은 이미 10년 전부터 나왔던 말이다”며 “그러다가 또 미뤄지고 안 되고 해서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나같이 늙고, 돈 없는 사람들은 남았지만 그래도 형편이 좀 되던 이들은 개발 기다리다 다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엔 진짜로 개발이 되는 거냐”며 “그럼 우리 같은 사람들 어디 살 곳이라도 주는 건지, 내쫓는 건지”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룡마을 개발 사업은 거주민들과 토지주·서울시·강남구청 등이 요구하는 개발 방식에 차이가 있어 10년을 넘게 진행됐다 무산되길 반복했다.

구룡마을은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 예정지로 손꼽히면서 2000년 초반, 부동산 경기 호조로 자주 투자자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2000년대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마을에도 전입이 가능해지자 재개발을 노린 부동산 보상꾼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 가구수는 3000여 가구에 달했다. 그러던 중 2006년 개인 사업가 정모씨가 민간 개발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정씨는 ‘마을 가구수가 1000가구까지 줄면 모두에게 25평 아파트를 제공할 자금이 확보 된다’ 했고, 이는 ‘내 집 마련’을 꿈꾸던 기존 주민들에 의한 거주정리로 번졌다.

이 밖에 개인특혜 논란, 거주민 단체 간의 갈등 등으로 서울시가 이 계획안에 반대하며 나섰다. 당시 서울시는 “민간 개발을 하게 되면 개발업체와 구룡마을 주민에게만 특혜를 주게 될 수도 있다”면서 서울시가 공영개발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2011년이 돼서야 서울도시주택공사(이하 SH)가 주도하며 개발 방식에 대한 가닥이 잡혔고 2012년 6월 도시개발구역 지정안이 처음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강남구청 측이 서울시의 개발 사업 방식인 미분할 혼용방식을 두고 반대하기 시작했다. 강남구는 100% 수용사용방식일 경우 토지보상액만 지급하면 되는데 혼용일 경우 일부 토지주들에게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구는 이 같은 이유로 서울시와 끝까지 개발 방식을 타협하지 않았고 결국 개발사업은 무산됐다. 하지만 2014년 11월 구룡마을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화재는 63세대를 잿더미로 만들고 100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이 사고 후 강남구와 서울시의 갈등으로 해당 지역은 방치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서울시는 강남구의 의견을 수용했고 2014년 12월 SH가 주도하는 100%수용사용방식으로 개발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토지주 임모씨 외 118인이 이에 또 다시 반발하며 미분할 혼용방식 개발을 진행하자는 신청서를 강남구에 제출했고 이를 반려한 강남구와 행정소송을 벌였다.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게 돼 지난 3일 강남구가 최종 승소하며 마무리됐다.

새로 탈바꿈할 구룡마을

소송에서의 승소와 지난해 1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된 개발구역지정 및 계획안으로 개발 사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은 SH가 주도하는 100% 수용사용방식의 공영개발로, 2017년 실시계획 인가 및 2018년 착공해 2020년 말까지 완료된다.

이에 개포동 567-1 일대 26만6304㎡ 규모 부지는 임대 1107가구를 포함해 아파트 등 2692가구가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거주민들과의 의견 타협은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다. 이강일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대표는 “주민들을 위한 개발을 하겠다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개발 방식은 안 된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임대주택을 지어줄 테니 들어가라는데 여기 주민들이 임대아파트를 갈 수 있는 형편이면 여기에 살겠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표와 다른 주민자치회 회원들은 “민간이 개발하면 내 집 마련이 된다고 해 과거에 투기꾼들과 싸워 범법자가 되기까지 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은 “SH가 들어와 거주민 이주방법을 연구한다는데 우리의 살 길을 찾아 줄지는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한 마을주민은 눈물을 보이며 “내 집 하나 가져보겠다고 그때 한 노력들을 지금 돌이켜보면 부질없었던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강남구청 도시선진화과 관계자는 “SH가 그 지역은 저소득층이 많은 것을 고려해 임대료를 싸게 해주는 방안까지 연구 중이다”라며 “구룡마을 주민들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다른 곳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사시는 저소득층과 비교하면 특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의 편익을 위해 구룡마을은 하루빨리 탈바꿈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구도 조율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활성화과 관계자는 “서울시도 거주민들과 분쟁을 만들고 싶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토지주·거주민 간 입장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부 토지주들은 무단으로 거주한 이들에게 분양주택을 줄 수 있느냐며 민원을 내는데 그들의 말대로 거주민들 말만 들어주면 이게 또 다른 이들의 권리도 침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계속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대화밖에 없다”며 “서울시도 주민들과의 의견 조율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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