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해 달라”며 지갑 ‘만지작’…덫에 걸리면 책상 치워야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르노삼성차는 지난 2000년 9월 회사 출범과 동시에 ‘원 프라이스’ 정책을 내놨다. ‘어느 매장을 가나 르노삼성의 차 값은 동일하다’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르노삼성은 현재까지 이 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한 덕분에 자동차 시장에 자연스레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곧 고객의 신뢰가 높아졌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영업맨들은 영업 활동 과정에서 ‘남모를 고충’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고객으로 가장해 부적절한 영업 행태를 적발하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때문이다. 한 영업사원의 말을 인용하면 ‘미스터리 쇼퍼가 마음먹고 작전을 펼치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한다.

르노삼성차는 신차를 출고할 때 회사 차원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외에, 영업사원 간 무분별한 할인판매 및 차량용품 제공을 엄격히 금지한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건 자동차의 측·후면 유리 썬팅 뿐이다. 영업사원이 차량 판매 계약을 하면서 전면유리 썬팅이나, 내비게이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할 경우 심하면 해촉 사유가 된다. 르노삼성차가 국내 자동차시장의 후발주자로서 엄격하게 정도(正道)영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업 인력 간 무분별한 할인 경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정책의 장점 중 하나다. 지나친 가격할인 경쟁이 판매력의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고객들도 여기저기 발품을 팔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구매 후 더 싼 곳을 찾아내 후회하는 일도 차단할 수 있다.

업계에선 르노삼성차의 이 같은 전략이 자동차 시장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일부 고객들 사이에선 ‘르노삼성차는 차량 자체만 보고 산다’는 인식이 심어졌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기엔 착오를 거듭했다. 정책 시행 초반에는 소비자들이 과도한 경쟁에 익숙해 있어, 아무리 정책을 설명해도 불쾌감을 드러내며 다른 경쟁사로 발길을 돌렸다고 전해진다.

이 제도가 시장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미스터리 쇼퍼’의 역할이 컸다. 미스터리 쇼퍼는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채용한 조사 면접원들이다. 이들은 손님으로 가장해 차량을 구입할 것처럼 영업사원에게 접근, 금지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정도 영업에 벗어난 행위를 적발한다. 회사가 영업조직 깊숙이 침투해 영업사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완하는 ‘신의 한 수’인 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객들의 신뢰가 견고해져 자동차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지난달 내수 판매 실적은 7440대로 전년 동기(2101대) 대비 254.1%나 늘었다. 올해 판매 목표는 지난해보다 7.6% 상향한 19만4000대로, 내수 시장에서 한국지엠을 넘어 3위를 차지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일부 영업사원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특히 ‘함정수사’에 가까운 미스터리 쇼퍼의 행태에 불만을 표출하는 영업사원들도 있다.
복수의 르노삼성차 영업사원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스터리 쇼퍼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고객처럼 행동한다. 이 과정에서 규정에 벗어나는 부분이 있으면 스마트폰 등으로 녹음이나 촬영을 해 적발하는 식이다. 

이들은 회사에서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되는데, 제도를 도입한 시기가 오래된 만큼 정형화된 조사 면접원의 말과 행동이 튀어나올 경우 영업사원이 눈치챌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과거엔 매장을 방문하거나 영업사원이 있는 지역으로 찾아와 이른바 ‘뜨내기 고객’ 행세를 했다면, 최근에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시승차를 끌고 오게 하거나 타 영업소에서 견적을 뽑아오는 등 다양한 고객들의 유형과 패턴을 연구해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르노삼성차 영업사원 A씨는 “(고객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만나서 얘기 나누는 과정에서는 절대 모르고 나중에 적발되고 나서야 알 정도”라며 “문제는 할인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영업 과정의 문제점을 캐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할인이나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가도, ‘조금만 할인해주면 바로 구매하겠다’는 식으로 영업사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는 게 해당 영업사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차량 판매가 없으면 수입도 전혀 생기지 않는 이들에게는 생계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에 이를 뿌리치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해당 월에 실적이 전혀 없었다면 더욱 그렇다.

A씨는 “부당영업 적발 건수에 따라 (미스터리 쇼퍼의) 급여가 책정되는 걸로 안다”면서 “그러다 보니 더 그렇게(할인 유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매장 방문 횟수로만 수당이 지급되며 적발을 통한 인센티브나 수당은 일체 없다”며 “매장방문 시 통상 일반 고객들과 같이 구입상담을 하도록 교육하고 있으며,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지 않도록 강조되고 있다”고 일축했다.

최근 서울의 한 지점 소속의 영업사원은 미스터리 쇼퍼에 적발돼 회사를 떠나야 했다. 영업사원 B씨는 “최근 같은 지점 소속 영업사원이 퇴사했다”며 “정식 판매사원 격인 SCA로 승격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어서 해촉된 게 아닌가 추측된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고객의 신뢰가 판매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 대해 회사 측과 다소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판매량이 꾸준히 상승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건 SM6와 QM6의 인기 덕분이지, 어디서든 같은 가격으로 살 수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진짜 고객’을 불신하게 되는 부작용마저 우려된다. 일각에선 미스터리 쇼퍼와 고객을 구분하기 어려워 암암리에 ‘구분하는 방법’이 전파되기도 한다.

B씨는 “물론 정도영업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고객이 인터넷에 감사의 글을 올려도 과실이 된다. 이 경우 사업소가 패널티를 받는다. 아무런 서비스를 할 수 없다면 ‘영업사원이 과연 왜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영업사원들은 고객과 계약이 성사되면 고객에게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더라도 온라인에 관련 글을 게재하지 말아달라는 웃지 못 할 ‘읍소’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한 불특정다수를 향한 영업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인정한 뒤 “온라인의 특성상, 실제 고객의 작성글과 실제 고객이 작성하지 않은 홍보글과 구분이 불가하다. 당사의 영업담당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고객께 ‘영업담당 본인에 대한 홍보글 작성’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있다”고 해명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